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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자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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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순호 Jul 18. 2023

Episode 25

조나단과 클라리스 03

“혹시 여기에 순호라는 코레아노(한국인)가 있을까?”


걸걸한 여자 목소리는 익숙한 클라리스의 목소리였다. 

클라리스는 리셉션에 앉아있던 테레사에게 내가 여기 머물고 있는지 묻고 있었다. 난 비몽사몽 한 상태여서 어렴풋이 들리는 목소리에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순호? 코레아노? 응! 있지. 아마 안에서 쉬고 있을 거야. 들어가 봐!”


스르륵 방문이 열리고, 클라리스가 들어왔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누워있던 날 발견했고 반가웠는지 


“스노우!!!!” 라며 소리쳤다.


클라리스가 날 부르는 소리에 그제야 난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과 클라리스가 진짜 내 앞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 진짜 클라리스네?” 


 난 깜짝 놀라 일어났고, 클라리스는 날 격하게 껴안으며 연신 반갑다는 말과 함께 잘 지냈는지 물었다. 그녀가 날 격하게 흔드는 바람에, 솔솔 오던 잠은 나보다 더 놀랐는지 어느새 달아나 사라졌다. 며칠 만에 다시 만난 친구는 너무 반가웠다. 그녀는 조나단과 자기 배낭이 너무 무거워 그는 근처 펍에 자리 잡고 기다리고 있어, 자기 혼자 왔다고 했다. 널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가자는 말에 난 서둘러 핸드폰과 항상 들고 다니던 노트를 찾아, 그 안에 있던 두 친구의 초상화를 꺼냈다. 요 며칠 동안 걷고 난 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그동안 만났던 친구들의 얼굴을 그려왔다. 하지만 가지고 있던 도구가 펜 하나뿐이어서 그다지 내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핸드폰과 노트를 손에 쥔 채,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조나단이 기다리고 있는 숙소 앞 펍으로 갔다. 미술관에서 숙소로 돌아올 때는 구름이 또다시 잔뜩 끼어 흐리던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나 화창하고 맑은 하늘로 변해있었다. 눈부시게 밝은 하늘을 만끽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헤이! 순호!”


난 햇빛이 너무 강해서 눈을 찡그린 채 날 부르는 쪽을 보니 희미했지만, 머리가 산발인 익숙한 실루엣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요! 브로! 잘 지냈어?”

“오 마이 퍼킹 브로!! 물론이지!”


 조나단은 날 기다리는 동안 언제나 그랬듯이 담배를 만들고 있었다. 테이블엔 담뱃잎과 담배 페이퍼가 널브러져 있었다. 클라리스도 테이블에 앉아 조나단이 만들던 담배를 마저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맥주와 와인을 시키고 나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 만큼이나 조나단과 클라리스 역시 재밌고 인상적인 하루하루를 지내온 거 같았다. 한 번은 두 친구가 마을을 지나다가 우연히 만나 친해진 스페인 사람에게 초대받아 그 집에서 이틀을 보내기도 하고, 숲에서 텐트 치고 잘 때에 코 앞에서 여우를 본 적도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는 친구들일수도 있지만, 난 주어지는 상황에 맞춰 지내는 두 친구의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였다.

 둘의 얘기를 들으면서 다음에 다시 한번 이곳을 걸으러 오게 된다면, 그땐 꼭 텐트를 들고 와야지 싶었다. 뭔가 텐트가 있다면 이 길을 걷는 데에 있어서 조금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겐 그들의 모습이 무모하고 위험하다 느껴지기보다는 낭만적이게 느껴졌다. 따스한 햇살아래서 한참을 먹고 마시며 이야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챙겨 온 노트를 꺼내 그 안에 그려놓았던 두 친구의 초상화를 건네주었다. 


“이거 내 선물이야.”

“오! 이게 뭐야? 와.. 감동이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게 펜 하나밖에 없어서 잘 그리진 못했어..”

“무슨 소리야.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 너무 멋져! 고마워!!”


 내가 준 선물의 퀄리티에 비해서 너무나 격한 반응을 해주는 걸 보니 오히려 더 잘 그려주지 못해 미안해졌다. 조나단과 클라리스는 내가 그려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한참을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두 친구를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을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클라리스가 갑자기 자기 배낭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이게 뭐야?”

“아, 이거 별건 아닌데, 프랑스에 있는 가톨릭 성지에서 가지고 온 성모 마리아 펜던트야.”

“마리아?”

“응, 저번에 갔을 때 몇 개 얻었었는데, 그동안 걸으면서 만났던 고마운 사람들한테 줬었어. 하나씩 주다 보니 이게 마지막 남은 하나야. 이제 딱 하나 남은 건데, 스노우 너한테 주고 싶어.”

“응? 이거 너한테 특별한 거 아니야?”

“응 맞아. 그래서 너한테 주는 거야 친구야. 근데 이게 너무 작아서 미안하지만..”

“에이 작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무 고마워!!!”


 그녀는 크기가 작아서 미안하다며 머뭇거렸지만, 전혀 작은 의미가 아니었다. 물리적인 크기가 뭐가 중요한가 싶을 정도로 내게 그 마음의 크기는 이미 거대했다.


“너무 고마워. 목걸이에 달아두면 절대 잃어버리지 않겠다!”


 의도치 않게 우린 선물 교환식을 하게 된 셈이었다. 산토도밍고를 가던 길에 우연히 만났던 두 번째 만남에서 조나단이 준 염주 목걸이는 지금 내 방 벽 한가운데 걸려있고,  레온 숙소에서 산 목걸이와 클라리스가 선물해 준 성모 마리아 펜던트는 지금까지도 매일 나와 함께 하고 있다. 

 다시 만난 레온에서 우린 여유 있으면서도 아주 알찬 하루를 함께 했고, 함께한 이날 하루 이후 우린 산티아고에서 펩이 집으로 떠나는 날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 자리엔 이네스와 리사, 미하우도 함께 있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아직은 일정이 남아있는 사람들로 그룹을 나눌 수 있었다 그래도 친구들과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헤어짐의 슬픈 감정은 어찌할 수는 없었다. 펩은 그렇게 기차를 타고 산티아고를 떠났고, 조나단과 클라리스는 다음날 포르투갈에 있는 ‘파티마’라는 목적지를 향해 길을 떠났다. 

 이날 이후 난 조나단과 클라리스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이후 길을 걸으며, 지칠 때마다 난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꺼내 한 번씩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렇게 하면 조금은 더 참고 걸을 수 있었고, 왠지 모르게 두 친구가 뒤에서 힘내라며 응원해 주는 것 같은 상상이 들곤 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난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목걸이를 항상 하고 다닌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에 대해 그리워하는 마음이 조금 더 깊게 변해버린 만큼, 클라리스가 주었던 펜던트의 색도 점점 변해갔다. 지금은 그 색이 클라리스가 내게 주었던 그때와는 전혀 다른 빛바랜 색으로 변해버렸다.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더 애틋해지고 깊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과정들과 요소들이 필요하겠지만, 그중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비록 '시간'이라는 요소가 사람이 정할 수 없고, 별것 아닌 거 같아도 관계에 있어서 꽤나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긴 여행을 다녀온 두 친구는 지금 현재 프랑스 남부 도시인 보르도에서 함께 살고 있다. 클라리스는 그림을 그리며 파트타임 잡을 하고 있고, 조나단은 보르도에 있는 와인농장 포도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내게 비움의 시간이 필요하게 되는 때가 온다면, 그때에 두 친구를 만나러 그곳 와인농장으로 가지 않을까. 그러다 같이 또 한 번 길을 걸으러 가게 되지 않을까란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성모마리아 팬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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