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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자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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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순호 Jul 24. 2023

Episode 27

충형과 박하 04

박하는 세계여행을 하며 다니는 여행자이기도 했고, 여행을 다니며 사진도 찍고 글을 쓰는 작가였다. 그는 이미 한 권의 에세이를 출판을 한 경험이 있는 작가이기도 했다. 박하는 이번이 두 번째 까미노라고 했다. 첫 번째에 이곳을 걸으러 왔을 때에는 지금 걷고 있는 프랑스길이 아닌,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까지 연결돼있는 포르투갈 길을 걸었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곳 프랑스길보다 포르투갈길이 걷는 데에 있어 차도로 걷는 길이 은근히 많아 생각보다 위험하다고 했는데,  스페인을 지나 포르투까지 오는 길을 걸을 때에 그의 말처럼 포르투갈 순례길에는 차도가 은근히 많이 있어 항상 앞뒤를 살피며 길을 걷곤 했었다.

 어릴 적 내게 있어 세계여행은 막연한 동경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한두 살 나이를 먹고 이런저런 나라들을 여행하게 되면서 언젠가는 꼭 한 번은 해야 할 꿈으로 키우고 있었다. 그런 내게 별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걸 당연하다는 듯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굉장히 부러우면서도 박하라는 사람의 크기가 달리 보였다. 그가 느끼고 있을 자유에 대한 부러움과 스스로의 자유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멋져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난 나의 자유를 얼마나 존중해주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박하와는 서로의 나이에 대해서는 묻지 않아, 정확한 나이는 몰랐지만, 그가 입고 있는 옷들이나 대화를 할 때에 사용하는 단어들을 통해 나와 비슷한 나이대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언젠가 그의 나이와 본명을 들었던 거 같았는데, 술자리여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박하와는 이날 그리고 다음날까지 함께 했다. 원래 계획했던 일정상으로는 조나단과 클라리스와 함께 그들을 다시 만났던 다음날부터 함께 걸으려 했지만, 우연히 만난 박하의 발 상태가 걱정돼서 하루 더 머물며 함께했다. 하지만 내가 떠나기 전까지는 박하의 발 상태는 전혀 나아지진 않았었고, 그와 다시 만나게 되었던 스페인 까미노 길의 마지막 마을인 '폰테비드라'에서 다시 만났을 땐, 언제 아팠냐는 듯이 발 상태는 너무나도 좋아 보였다. 박하를 두 번째 만났던 날엔 박하와 나 그리고 이네스까지 함께였다. 우리 셋은 스페인 폰테비드라에서 이어지는 아주 긴 국경 다리를 건너 포르투갈 국경 마을인 발렌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국경을 넘어본 경험으로는 버스로 육로를 통해 네팔-인도 국경을 넘어본 적이 있었는데, 걸어서 국경을 넘어본 건 이 날이 두 번째였다. 도보로 국경을 넘어본 첫 번째 경험은 까미노 첫날이었다. 프랑스 생장에서 순례길 첫날 길을 걸을 때,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본 적이 있었다. 이날 처음 도보로 국경을 넘었을 때에는 아침부터 몸도 지쳐있었고, 여유가 전혀 없는 상태여서 그랬는지 여기가 프랑스인지 스페인인지 안중에 없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다리를 건너 국경을 넘을 때엔, 무언가 짜릿하면서도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이때에 길을 걸으면서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의 첫 숙소에 도착한 날 우린 앞서 언급했었던, 내 인생의 첫 포트와인과 함께 비가 꽤나 와서 힘들던 포르투갈 첫날을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음날 박하는 포르투갈길은 이미 걸어봤던 길이라는 이유로 버스를 타고 바로 포르투로 이동했다. 그는 내게 포르투에 오면 꼭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떠났다. 

 나는 그로부터 열흘정도 길을 더 걸은 후에야 이번 까미노의 최종 목적지로 정해놓은 포르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포르투가 포르투갈의 수도인 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도시의 이름 자체가 포르투였기에 자연스레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이곳에 도착하고 보니 포르투는 포르투갈의 수도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과도 같은 제2의 수도이자 큰 항구도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작 수도는 리스본이라는 곳이었다. 포르투에 도착한 둘째 날 오전 숙소를 옮기러 가던 길에 신호등건너편에 서 있던 충형과 박하를 알아봤고, 그렇게 우린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무래도 둘의 외모가 범상치 않았기에 그들을 알아보는 건 쉬웠다. 그들을 다시 만난 곳은 포르투 중심가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성 벤투역’이란 역 앞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충형과 박하는 내가 예약해 놓은 호텔까지 함께 걸어갔다. 침대에 짐을 놓고 나와 그 둘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4박 5일의 포르투 일정 중 이틀을 함께 보내다 보니, 금세 이번 여행의 마지막날이 되었다.

 내 일정 같은 경우에는 다음날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고, 충형 같은 경우에는 이날 오후에 포르투를 떠나 다른 곳에서 다시 길을 걸을 예정이었다. 어쨌든 포르투가 마지막이었던 우리와는 다르게 박하는 쓰고 있는 원고의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아, 여기 며칠 더 있으면서 마무리 지을 예정이라고 했다. 우린 이날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충형이 길을 떠나기 전까지 도루강 앞에 앉아 셋다 좋아하는 포트와인을 원 없이 마시기로 했다. 먹는 것과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셋이 모여있다 보니, 어디를 가던지 술이 함께였고 술과 함께 할 수 있는 맛있는 음식들이 함께했다. 우린 마지막을 핑계 삼아, 조금 좋은 포트와인을 마시며 이곳에서의 마지막을 추억하기로 했다. 여러 포트와인 양조장들 중, '샌드맨'이라는 양조장에서 만드는 '루비' 20년 산을 사서 도루강 앞에 대충 앉았다.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넓은 도루강을 바라보며, 거리 악사들의 버스킹을 안주삼아 함께 마시고 있으니, 난 속으로 이제 정말 끝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대로 괜찮은 마지막 날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하의 다리도 길을 걷다 염증이 생겼지만 다시 그 길 위에서 괜찮아진 것처럼, 나도 아픔을 갖고 길에 올랐지만, 걸으면서 만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통해, 어느 순간 내 마음도 괜찮다라고 말 할 수 있었다.







도루강 앞에서 박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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