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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자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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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순호 Jul 28. 2023

Episode 29

피스떼라

오늘로 산티아고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도착했던 날, 이네스가 성당 앞에서 미리 나와 기다리다 나를 발견하고는 격하게 반겨주었다. 이네스는 내가 도착하기 이틀 정도 전에 산티아고에 도착했었다. 날 반겨주던 이네스 뒤로 미하우와 하연 씨가 차례로 도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삼 형제도 도착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곤 했는데, 그동안 길을 걸으며 인연을 쌓을 수 있었던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꽤나 많이 볼 수 있었기에,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야 했다.

 이곳에 삼일 동안 있으면서 이네스, 미하우와 함께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과의 이별을 맞이하며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이곳에 있으면서 한 가지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산티아고로 오는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났던 재연 씨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을 수 있었다. 재연 씨는 산티아고에서 거주한 지 몇 년 된 한국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작은 체구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그녀의 말투에서 그 사람의 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은 산티아고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내가 머물고 있던 숙소 앞 대성당 광장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집에 초대받은 날, 부르고스에서 만났던 하연 씨와 일정이 맞아 우린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갔다. 하연 씨는 여행 중반쯤에 부르고스라는 도시에서 만났던 대학생이었는데, 이 당시에는 교환학생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1년가량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왔다고 했었다. 우린 약속한 시간에 광장 앞에서 만나, 재연씨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던 한인마트에 들러 양손 가득 한국음식들을 사 갔다. 그날 재연 씨가 초대해해 주었던 찜닭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로 맛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한식을 안 먹어서 그런지 매콤 달콤했던 찜닭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산티아고에서의 특별하면서도 평온하던 일상을 보내던 와중, 여행을 떠나 오기 전 한국에서 세웠던 계획이 문득 떠올랐다. 이 당시에는 포르투가 최종 목적지였지만, 애당초 계획상으로는 '피스떼라'라는 곳이 나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물론 여행을 하던 중에 목적지가 포르투로 바뀌긴 했지만, 옛날 유럽인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던 '피스떼라'라는 곳이 궁금했다. 게다가 무시아도 피스떼라 만큼 멋진 곳이라는 친구들의 말에 산티아고에서 함께 지내고 있던 이네스와 미하우를 꼬셔 우린 피스떼라 옆 마을인 무시아를 거쳐 피스떼라까지 가보기로 했다. (산티아고에서 무시아와 피스떼라까지는 버스로 3-4시간 정도 되는 거리였다.) 

 처음에 이네스와 미하우를 꼬실 때엔 걸어가자고 제안했지만, 결국 우린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합의를 했다. 아무래도 둘은 산티아고를 마지막 목적지로 설정해 놓고 길을 걸어서 그런지 더 이상 걸을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무시아란 곳에 도착했을 때, 오랜만에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무시아는 피스떼라 근처에 있는 마을이었는데, 그곳에 도착하여 바라보는 바다는 절경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이라 그랬는지, 이곳에 오는 사람들도 많이 없었을뿐더러 애당초 마을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무시아에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 뒤, 다음 날 바닷가 근처에서 한가로운 오전시간을 보냈다. 우린 점심을 먹은 뒤 피스떼라 행 버스를 타고 오후가 다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항상 이네스가 하는 말이던 슈퍼콤비네이션이라는 말처럼 우리 셋은 어떠한 트러블도 없이 피스떼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잘 통하지 않던 셋 사이의 언어장벽이 오히려 서로를 더 배려해 주게끔 만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세대는 너무나 달랐지만, 서로 성향이 비슷한 부분들도 많아서인지 이해의 폭이 넓었던 것도 같다.

 우린 전날 예약한 마을 중심에 있던 숙소에 도착한 뒤, 옛 유럽인들이 '세상의 끝'이라 불렀던 곳에 가기 위해  서둘러 짐을 풀고 나왔다. 숙소에서 목적지까지는 4km 거리로 약 한 시간가량 걸으면 되는 거리였다. 피스떼라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노란 화살표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4km를 걷는 일이 아무런 일도 아니었는데, 이날 걸을 때엔 왜 그리 힘들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게다가 우린 짐도 없는 상태였는데 말이다. 1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2시간쯤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대서양의 석양을 마주하는 피스떼라 절벽 위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던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곳을 마지막 장소로 정해놓은 때가 떠올라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만감이 교차한다라는 말을 이때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곳의 바다 바람은 굉장했고, 석양이 드리운 대서양의 모습은 더더욱 굉장했다. 바다는 끝이 없었다. 흔히 바닷가에 떠있는 배들 조차 하나도 없었다. 오직 바다와 주황빛 하늘만이 존재했다. 지구가 네모나다고 생각했다던 옛 유럽인들이 어느 정도는 납득될 정도의 풍경이었다. 정말이지 라틴어 이름 그대로 <Finis(끝) + Terrae(땅)> '피스떼라'였다.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며, 만약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걸으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그런 채 이곳에 서있었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광경을 난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래도 내가 그럴 수 있었을까 싶었다. 더 이상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때쯤, 고개를 돌려 내 옆에 함께 앉아있던 이네스와 미하우를 봤을 때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었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마냥 고마웠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광경만큼이나 사람의 존재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석양 앞 사람들




피스떼라 앞 대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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