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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심자 Oct 21. 2021

힘내라 마마, 우리가 왔다!

꽃이 필 계절이 아니건만,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함, 간밤에 굳어있던 육체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고요함, 따스함, 창문을 살짝만 열더라도 미친 듯이 돌던 공기 청정기조차 조용하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움인지? 살며시 자리에 눕고, 얼굴로 내리쬐는 빛에 눈을 슬며시 감는다. 

 “아빠 아직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해? 빨리 준비해야지! 삼촌 왔단 말이야!”

 ‘평화’라는 단어를 갖는 것이 나에게는 사치인 듯하다. 따스한 공기와 빛에 취해 푸근함을 느끼던 나는 산통을 깬 아들을 쳐다본다. ‘움찔’ 아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깨를 움츠리며, 시선을 피한다. 평소에도 작은 눈 때문에 날카로운 인상이 오늘따라 더 무서웠나 보다. 무의식 중에 올라간 손에 안경이 잡히지 않는다. ‘역시 안경이 없구나’ 10년을 같이 산 아이들도 이렇게 느낄 텐데 처음 보는 사람이 ‘인상 한번 더럽네’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아빠 안 잤어. 명상했어. 명상” 

 피곤해서 졸거나 잠이 들었을 때 흔히 쓰던 말인데, 이제는 버릇이 됐다.     

 방문이 열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의 옷을 입고 심지어 피부까지 까무잡잡한 사내가 들어왔다. 

 “형 안녕하세요”

 아내에 사촌 동생 준이 말했다.

 “어 그래 왔냐? 거참 너도 대단하다. 야간 뛰고 그 먼 곳에서 오고”

 멋쩍어하는 준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야간 근무하고 잠도 못 잤을 텐데, 음... 아직 20대라 그런가? 멀쩡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녀석 누나를 위해서 3시간씩 운전하고 기특하네, 기특해’

 “덕분에 말썽꾸러기들 데리고 병문안도 가고 다행이다. 아직 애들이라 며칠 떨어져 있다고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나 보더라. 나도 솔직히 걱정도 되고 하여간 고맙다.”

 역시나 수줍어하는 준을 뒤로한 채 욕실로 발을 돌렸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준이 올 때마다 참 편하다.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시로 실어 날랐는데, 준에게 자동차가 생긴 후로는 운전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20분가량 운전을 하자 아내가 입원한 병원이 보였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착용시키고 막내는 모자로 덮어씌워 패딩점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꼼지락거리는 손이 가슴을 간지럽혀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당연하구나.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끝날지. 점점 세상이 삭막해지는 것 같네’

 하얀색, 검은색의 특색 없는 마스크로 입, 코를 가리며 눈만 내놓고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보자 ‘망할 놈의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가늠해보지만, 어둠 속 깊이 묻힌 답은 보이지 않고 애꿎은 손만 허공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코로나 예방 절차를 거치고 면회실로 향했다.

 ‘호들갑 떨겠지? 눈물을 흘릴까? 껴안고 난리 나겠지’

 [철컥]

 조심히 문을 열었다. 

 ‘무안하네’

 앞에 상상한 것과 달리 그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10분 정도 기다리자 문이 열렸다. 빼꼼 내미는 얼굴, 마스크에 가려 눈만 보이지만 말썽꾸러기들의 엄마, 나의 아내이다.

 “엄마다”

 “내 새끼들 잘 있었어? 엄마 많이 보고 싶었지? 이쁜 내 새끼들”

 한치에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진 예상에 미소를 지었다. ‘로또를 사야 하나?’

 일주일뿐인데 10년을 못 본 사람들처럼 안고 뽀뽀하는 가족들, 아내의 눈가에 살짝 맺힌 물방울, 마치 어렸을 때 보았던 이산가족을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을 연상케 했다. 저 마음이 계속 간직되기를 바란다. 

 가족이란 하루만 떨어져 있어도 보고 싶고, 안고 싶고, 옆에 있는 것만으로 든든하고, 안심되니까.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큰아들이 말한다.

 “엄마 나 건담 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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