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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종열
Sep 03. 2024
세 잎 클로버, 네 잎 클로버
저녁을 먹고 주방에 붙어 서서 혼자 설거지하는데 느닷없이 피식 웃음이 난다.
‘내가 설거지를 다 하다니...’
설거지하는 내 모습에서 웃음이 나고 이런 나를 예사로 보는 내가 우습다.
내가 어리고 젊었을 때는 상상도 하지 않은 일이다.
가부장적이셨던 생부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고 어쩌다 나와 남동생들이 부엌에서 나오는 것을 보셨을 때 생모가 잔소리 꽤나 들으셨다.
"머슴아 놈이 부엌으로 들어가려면 XX떼서 개한테 주고 들어가라"며 나무라셨고 남자 가족 중 누군가 부엌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문의 수치로 여기셨다.
4살 때부터 나를 키우신 나의 양모도 어쩌다 내가 부엌으로 들어갈라치면 '아서라, 사내가~'하시며 나를 밖으로 내몰았다.
남자는 모름지기 밭에서 힘을 써야 하고 아녀자는 그런 남자의 삼시 세 끼를 부엌에서 정성스레 만들어야 한다는 어쩌면 종교 같은 확신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 같았다.
그렇게 훈련받고 자란 내가 퇴직을 하고부터는 예사로 부엌으로 들락거린다.
** 실은 퇴직을 하기 훨씬 전부터 부엌 왕래는 하고 있었다. **
진작에 이렇게 할 걸이라 여기는 내가 대견스럽다.
얇은 티 하나에 반바지 하나가 내 몸 위를 받치고 가벼운 트레킹화가 몸 아래를 받친다.
귀에 쏙 들어가는 작은 이어폰이 귀 가장자리에 자리를 하고 내가 걷는 동안 내 마음을 힐링시켜 준다.
어떤 때는 7080 노래를
어떤 때는 역사학 강의를
또 어떤 때는 인문학 강의를 그날그날 내가 듣고 싶은 것을 골라 듣는다.
강의 메뉴를 고르는 맛도 제법 솔솔 하다.
자고 일어난 본 '오늘의 운세'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오늘은 아주 귀한 귀인을
만나게 될것이고 그 귀인이
당신에게 좋은 조언을 해 줄 터이니 귀담아 들어라.' 하였다.
그런데 저녁산책을 나가는 지금 시간까지 귀인은커녕 지나가는 사람들과 조차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아침에 본 오늘의 운세가 맞지 않았다.
'그래 운세는 그저 재미로 보는 것이 맞아'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 메뉴로 선택한 인문학 강의에서 무릎을 탁 칠 내용이 나온다.
'그래 귀인은 꼭 실제 형상을 한 사람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구나'
저녁산책의 묘미다.
그렇게 설거지를 마치고 이내 간편히 입고 집을 나섰다.
옷차림이 가벼워야 마음도 가벼우리라는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정말 몸이 가벼우니 마음도 가볍다.
마음이 가벼우면 삶도 가벼우리라.
오후
5시 30분을
막 지나는 시간~
한낮의 뜨거움이나 초저녁의 지금 뜨거움이나 뭐 하나 달라진 것 없이 태양의 열기는 온 대지를 녹일 듯 뜨겁다.
대구의 무더위가 괜히 대프리카가 아닌 듯하다.
매일
이른
저녁을 먹고 오늘처럼 산책길을 나선 것이 벌써 8년이 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산책을 하였다.
‘인자 퇴직도 했으이끼네 먹은 저녁은 혼자서 쫌 치우이소’라는 아내의 말에 설거지를 한 것이 8년이 되었다.
그리고 보니 내가 퇴직한 지도 8년이나 지났다.
먹은 그릇을 깨끗이 설거지하는 것도 소소한 행복인데 나의 생부와 양모는 왜 그렇게 부엌 출입을 말리셨을까?
저녁 산책길을
온갖
여름꽃들이 수놓고 있다.
노란색의 금계국 무리는 마치 자신들이 작은 해바라기 인양 해를 보고 섰고 붉은 개양귀비는 하늘거리며 바람이 부는 대로 제 자리에서 이리 일렁이고 저리 따라가며 섰다.
구절초도 하늘거리며 태양을 보고 서서 바람이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인다.
셋은 서로 다른 듯 같은 모습으로 아무도 봐주지 않는 야생화의 서러움을 말하지 않고 몸으로 태양의 뜨거움과 마주하고 섰다.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사는 장미나 백합에는 없는 야생화만의 독특한 향기가 느껴진다.
물가 개울에 아름다운 자태의 황새가 허공으로 무엇인가를 응시하며 시간을 낚으며 섰고 분주한 오리 가족들은 물속에 주둥이를 박고
한 여름을 나고 있다.
황새는 정(靜)으로
여름 속에 있고 오리는 동(動)으로 시간과 마주하고 있다.
금계국 무리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어느 여류화가가 파란색 물감으로 그림 한 폭을 그려 놓았다.
토끼풀이 가득하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춘 풀잎들은 어느 마음씨 고운 정원사가 머리를 깎은 듯 단정히 구절초보다 낮게 바람에 흔들리며 섰다.
파란 풀들 사이사이에 얇은 사(紗) 하얀 꽃들이 고이 접혀 나비춤을 춘다.
조지훈 시인님은 토끼풀에서 승무(僧舞)를 창작하셨을까?
토끼풀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어 섰다.
선채로
머리를 숙이고 잎들을
보았다.
잎 들 전부가 세 잎이다.
세 잎 클로버 천지다.
‘네 잎
클로버는
없을까?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가져 다 준다던데....’
걸음을 멈춘 김에 아예 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풀 속을 젖히고 눈으로 허위허위 찾아보았다.
눈을 부릅뜨고 손놀림을 빨리하며 풀 속을 헤집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네 잎 클로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풀 속 그 어디에도 없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하기사 60년 넘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귀하디 귀한 네 잎 클로버가 어찌 한
순간에 내 눈에 띌까?
무릎이 조금씩 아파 오더니 드디어 점점 다리가 저려온다.
이제는 일어나야겠다.
조금 전까지 서산에 몸을 기대어 있던
한 여름
의 태양이 어느새 산의 품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있지도 않은 네 잎 클로버를 한참이나 찾았나 보다.
희미하게 산책로 가로등이 하나씩 켜질 때쯤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린다.
어렸을 적 고향에서 같이 자란 60년 지기 고향 친구 전화다.
“지금 뭐하노?”
시답잖게 친구가 물었다.
“네 잎 클로버를 한번 찾아 볼라꼬 이리 머리 박고 열심히 찾고 있다.”
친구와의 대화는 심각하지 않은 것이 좋다고 해서 나도 시답잖게 대답하였다.
“
다 늙어가 무씬 그런 씰데없는 걸 다하노?
그래 네 잎 클로버는 찾았나?”
친구가 또 물었다.
“찾기는 뭘 찾아. 온통 세 잎 클로버뿐이다.
하기사 그 귀한 네 잎 클로버가 내 눈에 띄겠나?”
친구의 물음은 짓궂었고 내 대답은 허탈하였다.
“친구야,
지금
니가
찾고 있는 그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가져다주지만
지금
니
눈에 지천으로 보이는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준다 아이가.
그러이 눈에 비지도(보이지도) 않는 행운을 억지로 찾을라 카지 말고 니한테 지금 주어진
행복이나 만끽해라."
친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보니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이 세 잎 클로버처럼 내 앞에 지천에 깔려있다.
내가 모르고 지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아무 탈없이 눈을 떴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 두 다리로 갈 수 있고
어디 가서 구걸하지 않고 삼시세끼 해결할 수 있고
다 늦은 저녁에 지금처럼 내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가 있고 ㆍ
아이 셋 모두 건강하게 지들 자리에서 지들 일을 하는 것 행복거리다.
내가 나에게
주어진 많은 행복을 보지 못하고 내게 없는 행운을 찾아 무릎이 아프고 다리가 저리도록 여태 찾아 헤매었다.
씁쓸한 내 웃음이 희미한 가로등에 가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였으면.........
지천으로 보이는 세 잎 클로버 하나를 꺾어 책갈피에 넣었다.
행복을 책갈피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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