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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相對)와 절대(絶對)

by 이종열

매년 해가 바뀌고 1월이 되면 사람들은 바빠진다.


새로운 해~

사람들은 새해라고 하며 온갖 계획들을 세우고 그 계획들을 실천하기 위해 마음으로 다짐하고 그 마음을 다잡는다.


금수(禽獸)들은 어제와 오늘이 하나 다를 것이 없지만 우리 인간들은 12월 31일, 어제 서산으로 넘어간 태양을 지난 해라하고 1월 1일, 오늘 떠오른 태양을 새해라 명명하며 호들갑을 떤다.

어제와 같은 태양인데 말이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설사 자신들이 잘 지키지 못할 계획이라 하더라도 일단 계획하고 다짐한다.

오죽하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그즈음 은행도 마찬가지였다.

은행들은 거의 모든 영업활동들을 그 해 12월 31일까지로 종료하고 그 영업결과를 가지고 인사(人事)와 성과급을 결정하였다.

그해 성과가 좋았던 직원들은 승진을 하기도 하고 성과급도 많이 받았지만 그렇지 못하였던 직원들은 승진에서 누락되기도 하고 심지어 보따리를 싸기도 하였다.

성과급이 적은 것은 물론이었다.


매년 해가 바뀌어 1월이 되면 은행은 바빠졌다.

우선 전년도 영업실적을 가지고 인사부에서 임원과 지점장부터 인사발령을 내었다.

막 승진한 신임지점장과 점포를 다른 곳으로 옮긴 지점장은 물론 자신이 근무하였던 지점에서 그대로 유임된 지점장들 까지 모든 지점장들도 이때쯤 움직임이 민첩해지고 바빠졌다.


지점장들은 우선 그해 자신과 함께 일 할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일에 온갖 힘을 써야 했다.


영업점은 어쨌든 실적을 내야 하는 구조였고 그 실적을 잘 내는 직원을 데리고 와야 자신도 살고 지점이 살기 때문이었다.

또 관내에서 자타(自他)가 공인하는 유능한 직원을 스카우트해오는 것이 자신의 능력인양 여기는 지점장들도 더러 있었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였다.


그리고 또 지점장들을 바쁘게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1년간 해내야 할 영업목표를 배정받는 것이었다.

-> 1년간 은행이 이루어야 할 목표는 은행이 그해 역점을 두고 나아갈 방향을 의미하였는데 그 목표를 핵심성과지표 즉, KPI( Key Performance Indicator)라 하였다.


어쩌면 인사도 이 영업목표에 기인한 것이리라.


지점장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속한 지점의 영업목표를 적게 받으려 애썼고 목표를 배정하는 관할 본부에서는 어떻게든 목표배정에 쏠림이 없이 공정하게 하려 애를 썼다.


지점장들의 입장에서는 한 해를 시작하는 마당에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고 영업목표를 적게 받아오는 것이 한 해 농사의 절반을 성공한 셈이 된다.

그렇게 저렇게 인사가 끝이 나고 목표배정 작업이 끝나면 그때부터 전국의 영업점들은 출발점에서 결승점을 향해 동시에 앞으로 뛰어간다.


출발점은 1월 1일이고 결승점은 그해 12월 31일이다.


영업점의 직원들은 주어진 인재(人材)와 목표를 가지고 1년이라는 유한(有限)의 기간 동안 자신들의 생사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


그때 영업점의 책임자(지점장, 팀장)들은 목표가 주어지면 우선 그 주어진 목표의 양(量)을 가장 먼저 보고 두 번째로 그 목표의 배점을 본다.

그 목표를 달성하였을 때 얻어지는 점수를 보고 배점이 높은 것부터 선택하고 그곳에 집중한다.

즉 선택과 집중을 한다.


그다음 그 목표가 상대평가인지, 절대평가인지를 살펴본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절대평가는 어쩌면 간단하고 편한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1년간 신용카드 증가목표를 1,000좌로 받았다고 가정하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신용카드를 1,000좌만 증가시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우리 지점 증가실적에만 신경 쓰고 우리 지점 실적만 잘 체크하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평가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어쩌면 복잡하고 잔인하였다.


이 방식은 우리 지점이 전 직원이 피땀으로 1년간 신용카드 1,000좌를 증가시켰다 하더라도 우리 지점과 군(群)이 같은 경쟁지점이 1,200좌를 증가시켜 버리면 우리 지점은 목표의 100%를 달성하고도 순위에서 밀리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상대지점과의 비교에서 앞서야 하는 평가방식이었다.


생각난다.

어느 때 나는 그 지점의 KPI를 총괄하는 성과총괄팀장이었다.


그때 내가 모셨던 한 분의 지점장님은 굉장히 다혈적이셨고 어쩌면 파쇼적인 성품을 가진 분이셨다.

(지금도 가끔 그때 그 지점장님이 내게 야단을 치시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이 분은 늘 본부회의를 다녀오시는 날

나를 포함한 팀장들을 지점장실로 불러놓고 KPI 항목 중 상대평가 항목을 가지고 내게 역정을 내셨다.

-이 팀장!

우리 지점은 카드목표 1,000좌를 달성하였다고 그냥 손 놓고 세월 가기만 기다릴 거야?

우리 군(群)의 ㅇㅇ지점은 우리가 손 놓고 있는 사이 1,200좌를 증가했어.

실적표를 좀 보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매일 지점 팀원들과 지척에서 그들의 업무를 눈으로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귀로 듣고 있었다.

-팀장님!

저희 너무 힘들어요.

요즘 고객분들한테 신용카드를 권유하기가 정말 하늘에 별따기 보다 힘듭니다.

고객님들 전부 이미 카드 한 두 좌씩은 전부 사용하고 계세요.

그리고 어쩌다 저희의 권유로 카드신규를 허락하셔도 그분 입장에서는 연회비도 부담되고요.-

하였다.

가끔 나는 팀장회의 때 더 많은 카드실적을 채근하시는 지점장님께 직원들의 이런 어려움을 대변하였다.


그럴 때면 지점장님은

- 아!

이팀장

그럼 1,200좌를 증가한 ㅇㅇ지점 고객분들은 아직 전부 신용카드를 갖지 않으셨구나.

우리 지점 고객분들만 이미 신용카드 한두 좌씩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리 말씀하셨다.


-이제는 죽어도 더는 못하겠다- 하는 직원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는 지점장님 틈바구니에 낀 팀장 때의 나는 죽을 맛이었다.


그때 나는 상대평가가 원망스러웠다.

내 가족과 같았던 직원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 모는 구조의 상대평가제도가 몹시도 못마땅하였다.

경쟁지점보다 단 한 좌라도 더 해야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대평가제도를 잔인하다 여겼다.


그런데 퇴직한 후 지금 생각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싶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1960 ~ 1970년대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그때의 현실은 몹시도 가난하였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모든 것이 낡고 남루하였다.


시골에서 살았던 어렸을 적 나는 마을길에서 어른들을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어른 앞으로 달려가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아 인사하였다.

- 아재요, 아침은 드셨습니까?-


그 어른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 오냐, 니도 아침 묵었제? -


그때는 내가 만나는 사람이 끼니를 거르지 않고 식사는 잘하였는지를 묻는 것이 인사였다.

실제 양식이 부족해서 끼니를 건너뛰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우리는 그렇게 우울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행하다 여기며 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두가 가난하였기 때문이었다.


밥을 굶고

가난으로 공책과 연필을 사지 못하고

학교에 내야 할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선생님께 혼이 나도 그때의 아이들은 전부 그랬기 때문에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기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비교하여도 나만 가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때 한 아이집만 가난해서 끼니를 걱정하고 학용품을 사지 못하는데 이웃 아이들 전부는 호화로운 식사에 고급 학용품을 쓰고 있다면 그 아이는 스스로를 얼마나 불행하다 여기며 살아갈까?

상대적 박탈감이 얼마나 클까?


퇴직을 하고도 9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가끔 나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였던 상대평가를 나 스스로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내 친구 누구는 아직 직장에 다니면서 한 달 월급이 얼마나 받는다더라.

내 지인 누구 자식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이번에 대기업 어디에 입사했다더라.

내 고등학교 친구 누구는 학교 다닐 때 나보다 공부도 못하였는데 이번에 외제차 얼마짜리를 현금으로 샀다더라에 살짝씩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그렇다.


아직 철이 덜든 초등학생들 조차 싫어한다는 엄친아를 나 스스로 내 마음속에 키우는 듯하여 어째 조금은 씁쓸하다.


생각해 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그릇이 다르고 타고난 자질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데 그 간단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 어쩌면 애써 외면하면서 누구와 비교하면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 삶은 얼마나 불행하고 우울할까?


지금부터라도 내 남은 삶을 평가하지 말고 살자.

어쩌다 꼭 평가를 해야 한다면 절대로 상대평가하지 말고 절대평가하면서 나 스스로를 옭아매지 말자.


... 이만하면 되었어.

enough..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듯이 나를 부러워하는 누군가도 분명 있을 터이니 ㆍㆍ


퇴직한 지 오래된 그제 밤

그때 무서웠던 지점장님 꿈을 꾸고 나서 문득 떠오른 은행평가방법이 생각이 나서 새삼 내 마음을 다듬었다.


상대평가는 은행에서 근무하였을 때까지로 끝내고

지금부터는 절대평가로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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