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연금 예찬론자이다.

by 이종열

아침 8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다.


세수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에서 "띵동"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자메시지가 수신되었다는 소리 ㆍㆍ


요즘 나의 휴대폰에 오는 문자메시지라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는 코로나 지역별 감염자 수를 알려주는 메시지와 前직장 동우회 회원들의 경조사, 광고성 메시지가 전부이라 또 그러려니 마음에 두지 않았다.


외출 준비를 끝내고 조금 전에 온 문자메시지를 확인하여 보았다.

"XX연금에서 ㅇㅇㅇ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라는 뜻밖의 메시지~~


늘 오던 메시지가 아니었다는 의외에서 오는 반가움과 내 계좌에서 출금이 아닌 입금이 되었다는 횡재 같은 반가움이 동시에 들어왔다.

'백수 계좌에 입금이라니~~ 후훗'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가에 가는 주름이 생겼다.

기분이 좋아졌다.

꼭 돈이 생겨 기분이 up 된 것만은 아니다.


2017년도에 35년을 넘게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을 하였을 무렵 직장인으로 있었을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 여러 가지 일 중에 하나가 살림살이의 변수였다.

매월 정해진 날짜에 맞춰 들어오던 월급이 딱 끊기고 그때부터 살림살이의 통로였던 내 계좌에 돈이 들어오는 일은 거의 사라지고 빠져나가는 일만 생겼다.

일을 하지 않으니까 월급이 끊어지는 것이야 어쩌면 당연하였지만 그 당연히 막상 내 눈앞에 닥쳐 있으니까 적잖이 당황이 되었다.


지금부터는 내 재산이 줄어들 일만 남았지 늘어 날일은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한 현실이 또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로또 복권에 당첨이 되지 않은 다음에야~~'


나는 35년 은행원 생활의 거의 절반을 VM업무를 담당하였다.

(VM : VIP manager의 약자로 은행의 VIP 고객님들 자산을 care 하는 업무를 하는 직책)

그때 15~16년 가까이를 은행 VIP 고객분들과 가까이에서 지내면서 보고 느낀 것이 하나가 있었다.


자영업을 하던, 봉급생활자를 하던, 임대료 따위를 받던 매월 꾸준한 소득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현직에서 은퇴를 하여 정해진 소득이 없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가장 안정적이고 happy 한 부류의 사람들이 연금수급권자 들이었다.


그분들은 생활에서 큰 변수 없이 매월, 매년을 같은 모습으로 나와 만났다.

삶의 일부분에서 큰 변수가 없으니 걱정도 없어 보였고 다른 고민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저 지금의 현실에서 재미있게 지내는 방법만을 생각하고 그것에서 삶의 행복과 재미를 추구하는 듯 보였다.

늘 여여 하셨다.


어느 퇴직 교사한 분이 생각이 난다.

그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우리나라가 온통 월드컵으로 들떠 있었을 2002년 여름 무렵이었다.

내 방에 노크를 하시고 조심스레 두 노부부가 들어오셨는데 첫인상이 두 분 다 참으로 단아하고 정갈해 보이셨다.

참 잘 늙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내가 근무하던 지점 거래 고객이 아닌 분이고 오늘 처음 뵌 분이라 약간은 의아하였는데 내가 권한 자리에 앉으신 두 분 중 남자분이 나에게 조용히 말씀을 하셨다.

올해 연말 즈음에 퇴직을 계획하고 있는데 퇴직금으로 무엇을 하였으면 좋겠느냐며 은행 상품을 소개하고 설명하여 달라고 하셨다.

퇴직금이 3억 원이 조금 넘는다고 하셨다.

슬하의 자녀 셋도 모두 결혼을 하여 각자 가정을 이루고 있고 세명 모두 직업들이 좋아 부모인 자신들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까지 해 주셨다.


은행에서 판매를 하는 금융상품은 여러 가지가 있다.

순수 은행 상품인 예, 적금 상품이 있고 주가의 등락에 따라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 신탁상품도 있다.

또 2003년부터는 보험사에서만 판매하던 보험상품도 방카슈랑스라는 이름으로 은행에서도 판매를 하고 있다.


솔직히 은행의 입장에서는 예, 적금 상품보다는 펀드나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은행 수익의 측면에서는 훨씬 도움이 되었다.

두 분 노부부는 내가 권유하는 데로 상품을 가입하실 것 같이 보였다.


두 분은 이미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을 하시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 계신 듯 보였다.

하기사 2002년 그때 1년제 정기예금 금리가 연 6%대였으니까 그렇게 결심을 하신 것이 큰 무리는 아니었다.

1억 원을 1년 정기예금으로 가입을 하면 세전 연 6백만 원이 나오니까 3억 정도만 예금을 하여도 1년에 1천8백만 원이 이자로 나오는 셈이다.

지금 연 1%대를 조금 넘는 지금의 예금금리에 비하면 6배 정도가 높은 것이다.


일을 하지도 않고 매월 150만 원이 나오니까 그 노부부의 선택이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내 생각은 달랐다.

연 6%대의 예금금리가 언제까지 유지가 된다는 보장도 없고 또 펀드나 신탁상품이 변함이 없이 고객들의 수익을 보장하여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지 말고 연금으로 수령하실 것을 제안드렸다.


두 분은 의아해하시면서 말씀을 하셨다.

사실 여러 은행을 같은 주제로 다니면서 상담을 해 보고 가장 금리가 높은 은행, 가장 수익률이 좋은 은행을 쇼핑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다닌 은행 직원들 모두가 자행으로의 거래를 희망하면서 자신 은행의 상품을 권유하기 바빴는데 왜 당신은 퇴직금을 학교에 두라고 하는가 물으셨다.


누구에게 돈이 소중하고 귀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돈이 매월 정기적 수입으로 들어오는 젊고 현직에 있을 때가 아닌 이제 더 이상은 수입이 없고 그 돈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수익보다 안전을 1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철학이었다.


내 생각을 두 분 노부부께 꽤 긴 시간을 할애하여 말씀을 드렸고 설득을 해드렸다.

퇴직금을 굴린다고만 생각을 하였지 연금으로 수령을 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며 오늘 집에 가서 생각을 해보고 내일 다시 오겠노라 하고 그날은 돌아가셨다.


다음날 노부부께서 내 방으로 다시 들어오셨다.

손에는 음료수 한 박스가 들려 있었다.


어제 집으로 가셔서 두 분이 의논도 해보고 주변 사람들한테도 물어보았는데 하나같이 나와 같은 생각이라 말을 하더라며 고맙다는 마음으로 음료수를 사주고 가셨다.

이후 꽤 오랜 기간 그 노부부와 친분을 가지고 만나서 같이 식사도 하고 차도 같이 마셨다.


만나면서 들은 말로는 그때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은 동료 선생님들 대부분이 후회를 하더라고 하셨다.

평생을 교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학자의 삶을 살아온 선생님들 수중에 어느 날 갑자기 큰돈이 들어왔는데 이재에 밝지도 않고 재테크의 지식도 거의 없이 그냥 돈을 곁에 두고 있다가 어떤 분은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에, 또 어떤 분들은 좋은 투자처가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큰 금액을 날리고 건강까지 잃었다고 하셨다.


또 어떤 분들은 평소 자신들을 소원하게 대하던 자식들이 찾아와 요즈음 사업이 어렵다며 부모님의 퇴직금을 빌려가서 끝내 갚지를 못하고 종국에는 자식과 돈을 한꺼번에 잃기도 했다고 하셨다.

교단에 있을 때 선배 퇴직 선생님들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퇴직금은 절대 자식들에게 주면 안 된다는 말이 막상 내 눈앞에 울상을 지으며 나타난 자식들을 보니까 사전에 들은 공부가 도로아미타불이 되더라는 말도 하셨다.


반면 퇴직금을 연금으로 받고 있는 자신은 물론 주변 선생님들 자식들 모두 부모님의 퇴직금이 연금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누구 하나 손을 벌리는 사람이 없더라고 하셨다.


부모님이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는 자식들은 모두 불효자들이고 연금으로 받는 자식들은 모두 효자일까?


그때 나는 그 선생님의 일을 보고 들으면서 연금에 대한 확신이 들었고 지금은 연금 예찬론자가 되었다.

물론 나 또한 퇴직금이 나오는 그다음 날 내가 다녔던 은행에 가서 최소의 금액을 남기고 전부를 연금상품에 가입을 하였다.


그 덕분에 오늘 아침에 처럼 실업자인 나의 계좌에 입금을 알리는 벨소리가 들려오고 내 자식 셋 모두가 내 퇴직금을 노리지(?) 않는 효자, 효녀들이 되었다.


어느 아침 방송에 나온 재테크의 강사 말이 생각이 난다.

" 목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돈을 관리하여야 하지만 연금을 가진 사람은 돈이 자신을 관리하여 준다"


나는 연금 예찬론자이다.


** 이는 어디까지 저 혼자만의 생각이고 저와 생각이 다른 분이 계시다면 그분의 생각이 맞습니다 **

keyword
작가의 이전글5월을 예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