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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을 예찬하다.

by 이종열


그제와 같은 해가 떠올랐고 그제와 같은 바람이 불어왔다.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이 그제 보았던 나비와 벌이다.


그런데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그제는 4월이었고 오늘은 5월이다.

그제 떠 올랐던 태양과 그제 불었던 바람은 4월의 그것이고 오늘 떠오른 태양과 오늘 부는 바람은 5월의 그것이다.


어제 문득 내가 걷는 산책길에서 빨갛게 피어있는 장미를 보았다.

4월에는 보이지 않던 장미였다.


4월은 잔인한 달이었고 5월은 포근한 달이다.


가정의 달

장미의 계절

5월의 신부

계절의 여왕


5월의 수식어는 참으로 많기도 하고 하나같이 듣기만 하여도 따뜻하고 포근하다.

5월의 달력 속에는 가장 최신의 기능으로 업그레이드된 chip을 가득 머금은 가전제품 마냥 온갖 행복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건전하고 신성한 노동으로 자신과 가정, 직장과 국가를 풍요롭게 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절이 있고, 웃음소리와 눈동자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날이 있다.

얼마 전의 나는 그 어린이날에 내 딸과 아들들의 손을 잡고 꽃동산에 가고 놀이동산으로 갔었는데 오늘의 나는 내 손자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가야 한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버이의 날이 또 5월에 있다.

얼마 전에 내가 찾아가서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렸던 나의 부모님들은 이제 내가 들고 간 카네이션을 받아서 다실 가슴조차 없으시다.

내가 낳아 주시고 길러 주셔서 감사하다 말씀을 드리려 하여도 나의 말을 들을 귀 조차도 없으시다.


그저 한 줌의 재를 머금은 작은 항아리만이 당신이 몇 년도에 태어나서 몇 년도에 떠나셨다를 적어 나를 기다린다.

나는 매년 어버이날에 그 항아리를 머금은 작은 유리에 카네이션을 달아 놓고 그 앞에서 '보고 싶습니다'하는 작은 소리를 내었고 나의 그 작은 소리는 유리를 지나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내가 내 어머니, 아버지께 꽃을 달아 드리고 있을 때쯤에 멀리 객지에 있는 내 딸들과 아들들이 나에게 얼굴이 보이는 통화로 내가 부모님께 드렸던 똑같은 말들을 나한테 한다.

지들을 잘 길러 주어서 고맙고 감사하단다.


나는 오히려 잘 자라준 지들이 더 고마운데 말이다.

얼마 전의 어버이날은 내가 객(客)이었지만 지금의 어버이날은 내가 주(主)가 되어 버렸다.


올해의 어버이날은 자비와 가피로 온 중생들을 보살피시는 부처님이 오셨다.

어느 사찰에는 작은 줄에 매달려 입구부터 화려하게 흔들리는 연등의 행렬들이 아름답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요해지고 따뜻해진다.

부처님의 자비가 저절로 느껴진다.


임금님과 부모와 같이 존경받고 우러러야 할 스승님의 은혜를 돌아볼 수 있는 날도 5월에 있다.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을 만큼의 그 옛날의 권위에 비하면 지금의 교권은 조금 많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스승님은 늘 존경스럽다.


작년 어느 날에 만난 은사님께 들은 나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은 많이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내 앞가림이 바빴던 내가 선생님들은 늘 여여하고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시는 줄로만 알았다.

선생님들은 세월의 배에 타지 않으신 줄 알았다.


엄마, 아빠의 울타리 속에 갇혀 살아왔던 지금까지의 삶에서 이제는 나의 울타리를 만들어도 될, 아니 만들어야 될 어른이 되는 날이 5월에 있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성년의 날

마냥 좋아할 일도, 또 그렇다고 마냥 부담스러워할 일도 아닌 듯한 그날의 나는 기뻤다.


12년간 짧게 자르고 다녔던 머리를 기를 수 있어 좋았고 6년간 내 몸을 감고 있었던 교복을 벗을 수 있어 행복하였다.

지금 생각을 하면 머리를 짧게 하고 교복을 입었을 그때가 좋았는데 말이다.


나와 평생을 함께 할 나의 동반자를 위한 날도 5월의 chip속에 들어있다.


이제 막 서로와 함께 삶을 시작한 부부는 이렇게 서로에게 말을 할 것 같다.

'나와 함께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함께 한지 20년쯤 되었는 부부는 이렇게 말을 할 것 같다.

'나의 모자람을 잘 채워주고 우리 집을 잘 가꾸고 지켜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함께 반백년을 같이 산 노부부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하지 싶다.

'나와 함께 해주어서 고마웠소. 덕분에 함께 하는 내내 행복하였소'


5월은 늘 향기롭고 늘 포근하다.

내일쯤 나는 내 손자를 위해 선물을 사러 장난감 가게에 들러야겠다.

사흘 후로 다가온 어린이날 chip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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