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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남의 넋두리

by 이종열

솔직히 어렸을 적부터 나는 대인배는 아니었다.

결단력이 호쾌하고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담대하지 못하였다.

아니다.

결단을 하는 것이 우유부단하였고 사물을 보는 관점은 작았고 소심하였다.


그래도 불의에 정정당당하고 호쾌하게 맞서 싸우지는 못하였지만 그 불의의 편에 서서 나의 일신 영달만을 추구하는 소인배는 아니었다고는 자부할 수 있다.


그저 매사에 생각이 많고 무슨 일을 결정을 할 때 그 결정이 담대하고 시원하지 못한 소심남이었다.


어떤 이가 생각 없이 나에게 한말을 두고 나는 수없이 그 사람의 말을 곱씹고 되새기며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말한 의도를 생각하고 분석을 하여왔다.

그리고는 그렇게 말을 한 그 사람의 의도와 너무나 동떨어진 나의 생각만을 가지고 나는 그 사람을 대하였고 그 사람을 평가해 버렸다.

그러나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보면 내가 생각을 하고 분석을 한 결과가 맞았을 때보다 내 생각이 틀리고 오해였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후에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한 그 사람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고 또 어떤 때 그 사람은 고양이라 말을 하였는데 나는 호랑이라 생각을 하여왔다.


내가 어렸을 적 시골에서 자랐을 때 일이 생각이 난다.

계절이 동지를 지나고 소한, 대한을 지날 때쯤의 그때 내가 살던 시골은 그렇게나 추웠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였다.


지금처럼 마땅히 난방시설이 없었던 그때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구들목에 이불을 깔고 가만히 있으면 될 텐데 한참 뛰어 놀 힘이 넘치는 그 나이에 그렇게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또래 아이들은 산과 들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나뭇조각들을 주워 불을 피우고 그 불속에 고구마, 감자, 콩 등을 넣어 구워 먹으면서 추위와 허기를 동시에 해결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놀고 아이들은 하루 종일 온기를 빌려준 불을 대충 발로 비벼 끄고 이내 각자의 집으로 가버린다.


그때 짧은 겨울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지펴져 있던 모닥불도 꺼진 아무도 없는 바람만이 조금 전 아이들이 놀던 황량한 들판을 휘휘 지날 때 꼭 혼자 남은 아이가 하나 있었다.

혹여 아이들이 끄고 간 자리에 잔불이 남아 크게 번질까 걱정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나였다.


끝까지 남아 타다 남은 나무를 이리저리 뒤엎으며 살피고 연기라도 남아 있으면 그 연기가 나지 않을 때까지 불을 껐다.


어느 날은 그렇게 놀다가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고 방에 있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혼자 낮에 아이들과 놀았던 곳으로 가 보았다.


그날따라 밤바람이 그렇게나 세차게 불어 대었다.


낮에 완벽하게 잔불 정리를 한다고는 하였는데 혹여 이 거센 바람에 불씨가 다시 살아나 온 마을과 온 산을 다 태우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서였다.


전기가 아예 들어오지 않은 산골에서 어두운 밤에 어린 내가 혼자 가 보기에는 너무 무서웠지만 마을과 산이 불에 타는 것이 그때의 나는 더 무서웠다.

그곳에서 나는 산 밑에서 나풀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는 도깨비불을 보고 거의 실신을 하기도 하였다.

** 실제 도깨비불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바람이 거센 어두운 겨울의 들판에서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그동안 어른들께 수없이 들어왔던 도깨비불이 환영이 되어 실제처럼 나타났던 것이었다. **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태어난 문중(門中)의 모임에 회장이 다시 선임이 되었는데 그 회장님이 갑자기 나에게 총무일을 좀 해달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지금 맡고 있는 총무가 5개나 있다.


이상하게 내가 몸담고 있는 모임은 조금의 시간만 지나면 나한테 총무일을 맡기곤 하였는데 나의 소심한 성격 탓에 나는 또 총무일을 하겠다고 하여 버렸다.

물론 처음 회장님이 제안을 하셨을 때에는 지금 맡고 있는 총무만 해도 내 능력의 범주를 넘어서 더 이상은 곤란하다 완곡히 거절을 하였으나 나에게 부탁을 하는 회장님의 부탁이 더 완곡하여 내가 거절을 못한 것이었다.


덕분에 나의 총무직은 6개가 되어 버렸고 내 능력이 이것을 소화해낼지 여부는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총무직 수락의 과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내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 전부는 ' 못한다고 하면 될 일인데 왜 그 말을 못 해?' 하며 이해하지 못한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속으로 그 사람들한테 대꾸를 한다.

'나도 그 말을 할 줄 안다고요

그 말이 발음이 되지 않아서 안 하는 것이 아니고 차마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를 않아서 못하는 것이라고요'


저녁에 식탁에서 마주 앉은 아내에게 오늘 이야기를 하였다.

아내도 내 주변의 사람들 말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못한다, 아니하지 않겠다고 하면 될 일인데' 하며~~


내가 아내에게 말을 하였다.

그래도 당신은 소심한 나를 만나서 크게 잘 살지는 못하였지만 크게 마음고생은 하지 않고 살았다고 하였다.

소심하고 치밀한 사람들은 거의 그 성격이 자기 자신을 괴롭힐 수는 있지만 그래도 주변의 사람들은 크게 괴롭히고 낭패에 빠트리지는 않는다고 내가 넋두리를 하였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빈 그릇을 싱크대로 들고 가면서 "그것과 오늘 맡았다는 문중 총무일과 무슨 관 계람?" 하며 긴 한숨을 내 쉰다.


나는 또 이 말을 아내에게 괜히 말했나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내 좁은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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