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해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사무실까지 걸어오는데 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어른 걸음수로 50보 정도이면 충분히 후문까지 도착을 할 수 있는 거리였다.
출근길의 그 50 보도되지 않는 짧은 거리가 나는 늘 50km도 넘게 느껴졌다.
그 짧은 거리를 걸어오는 내내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 하루 내가 해야 할 업무적인 일 생각들이다.
세팅 당번 김 차장이 내가 누른 초인종 소리에 문틈으로 빼꼼히 내다보며 나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 주면서 인사를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간 사무실은 아직 직원들 대부분이 출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세팅 당번 김 차장과 청소 아주머니만이 넓은 사무실 공간에서 조그맣게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겨울 날씨라 그런지 사무실이 크고 넓어서 그런지 어쩌면 을씨년 스럽기까지 하였다.
"안녕하세요?"
"그래, 김 차장, 좋은 아침"
인사가 무겁다.
인사를 하는 김 차장이나 인사를 받는 내가 입으로는 서로에게 인사를 하였지만 얼굴에 표정이 없다.
둘의 인사에 영혼은 없고 의례적, 일상적만 있었다.
거의 매일을 보는 사이라 딱히 할 다른 인사말도 없으려니와 직원 간에 무슨 반가움이 있으랴 싶다.
세팅 당번 김 차장의 아침 경비 역할은 청경(청원경찰)이 출근하면 끝이 난다.
이후부터는 청경이 출입문의 통제를 한다.
은행은 업무시간 이외에는 출입자 통제를 엄격히 한다.
금고에 수억 원의 현금들이 들어 있으니 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비하여 옛날부터 경비 규정을 만들어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청경이 복장을 갖추고 출입구에 자리를 하자 김 차장이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녀는 자리로 들어가면서 탕비실에서 셀프로 커피를 한잔 태워서 자신의 의자를 살포시 당겨 얌전히 앉는 듯하였으나 내가 뒤에서 보기에는 털썩 힘없이 주저앉는 듯 보인다.
아직 은행 문이 올라 갈려면 20여분이나 남았다.
내가 출근하였을 때 없었던 직원들 전부가 이제 출근을 하고 자리에 앉아 고객맞이 업무 준비를 하고 있다.
"김 차장, 권차장
저기 박 대리, 임 대리~
잠깐 나 좀 볼까?"
그들보다 뒤에 앉은 내가 방금 셀프로 태워 앉아 아직 커피가 반이나 남은 김 차장과 네 명의 팀원 들을 불렀다.
돌아보지도 않고 '네'하고 답은 하였지만 일그러진 그들의 얼굴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아침부터 또 왜 우리를 불러 세운담'할 것이 뻔하다는 것도 저절로 느껴지는 비디오였다.
손에 커피를 들고, 핸드크림을 비벼 바르면서 김 차장부터 임 대리까지 4명이 내 앞에 선다.
하나같이 얼굴이 무겁고 표정이 어둡다.
"잘 들 쉬었어?
오늘부터 신용카드 증가 프로모션 기간이야. 알고 있지?
각자 오늘 하루에 최소 3좌 이상은 신규를 하고 퇴근을 하도록 하자.
그리고 지난달 우리 지점 고객만족도 조사가 관내에서 하위의 성적을 내었으니까 고객님들 오시면 얼굴 표정을 밝게 하고 맞이, 배웅인사는 크게 하도록 해줘
친절한 업무처리는 기본이고..........."
내 말이 끝나자 네 명의 얼굴이 조금 전 보다 더 무겁고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무겁고 어두운 이들의 얼굴을 본 나도 마음이 무겁고 어둡기는 매일반이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는 네 명의 팀원이나 그들의 얼굴을 어둡고 마음을 무겁게 말한 나
우리는 하루를 이렇게 시작을 하였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였던가?
어둡고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하루는 하루 종일 그 마음으로 갔다.
이래서 무겁고 딱딱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사무적이라 하는가 보다.
이래서 직장이라는 것이 직장인들에게는 그렇게 무겁게 다가오는가 보다.
하기사 대통령도 1년에 한 번씩은 휴가를 가지 않는가?
언젠가 직장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였을 때 가족이나 연인들끼리 휴가를 갔을 때 휴가지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대상 1위가 직장동료라는 말이 실감이 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우리는 다음날도 그곳으로 출근으로 하고 그곳에서 퇴근을 하였다.
그다음 날도 나는 50보 걸음의 거리를 50km를 가듯 무겁게 갔고 그런 나에게 문을 열어주는 세팅 당번의 무겁고 어둡게 영혼 없이 하는 아침인사는 그다음 날도 어제와 똑같았다.
그러기를 1년.
그렇게 늘 무겁고 딱딱하게 마주 하였던 우리 다섯이 한날한시에 퇴직을 하였다.
은행업무가 점차 전산화가 되고 젊은 층 고객들이 그 전산화를 이용함에 따라 은행 인력운영 방침을 점차 감원의 추세로 하고 있은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해 대규모의 명퇴(명예퇴직)가 단행이 되었다.
나는 나이가 차서 퇴직을 하였고 김 차장, 권차장은 매일 해야 하는 실적에 몸서리가 쳐졌다고 하였다.
박 대리, 임 대리는 아직 어려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들, 딸을 care 한다고 퇴직을 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퇴직 동기가 되었다.
퇴직을 하는 날 우리 다섯이 사무실에서 꽤 먼 거리에 있는 한정식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하였다.
그리고 보니 우리 다섯 명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점심을 먹어 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았다.
전체 회식 두어 번 때를 제외하고 마음 편히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밥을 먹어 보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우리 한 달에 한 번은 같이 모여 오늘처럼 점심을 먹자고 그날 결의를 하였다.
그 점심을 먹는 날은 한 달 중 은행이 가장 바쁜 25일을 즈음해서 먹자고 약속도 하였다.
그동안 한 달 중 가장 바빴던 25일에 대한 무언(無言)의 시위였다.
실제 그렇게 하였다.
점심도 같이 먹고 인근 교외로 드라이브도 같이 하였다.
대낮의 시간에 영화도 보고, 카페에서 커피도 같이 마시는 것은 얼마 전 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1년이 조금 지났을 때쯤부터 젊은 박 대리와 임 대리에게 자주 불참의 사유들이 생겼다.
아직 엄마의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아이들 문제였다.
아이들 학교 문제와 학모들 모임의 일들이 수시로 박 대리와 임 대리, 이 둘은 25일이 불러 내었다.
나중에 아이들의 다 자라서 낮의 시간이 자유로워질 때 독수리 오 형제가 다시 모이기로 하고 그때까지는 독수리 삼 형제가 대신 지구를 지키기로 하였다.
젊은 엄마 둘은 편하게 일을 보게 하고 나이대가 비슷한 나와 김 차장, 권차장만 모였다.
어제도 우리 셋이 만나 점심을 같이 하였다.
만남의 장소로 가는 길이 주차장에서 사무실로 가는 거리보다 훨씬 멀었지만 꼭 50보를 걸어가는 듯 가깝게 느껴졌다.
약속시간에 1분도 어김없이 나타난 우 리셋의 얼굴 그 어디에도 그때 느껴졌던 무겁고 어두운 마음의 흔적은 눈을 닦고 찾아봐도 없다.
"안녕하셨어요 형부?
그래 두, 처제들~
잘들 지냈지?"
우 리셋이 만나 하는 인사에 영혼이 가득하였다.
얼굴 표정은 영락없는 이산가족 상봉의 그것이었다.
김 차장과 권차장 둘은 같이 여자라 서로 부둥켜안고 반가워한다.
점심을 먹는 내내 우리의 수다는 끝이 없다.
시댁 이야기
남편 이야기
자식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때에는 흥분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듣는 사람들이 더 흥분하기도 한다.
아침 10시 즈음에 만나 근처 맛집을 검색해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맛있는 카페를 검색해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는 내내 우리 중년의 수다는 10대의 그것 만큼이나 시끄럽고 분주하였다.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인데 여자 셋이고 남자 셋이었다.
사람이 늙으면 몸의 모든 양기가 입으로 간다고 하였던가?
그때 서로를 불렀던 팀장님, 김 차장, 권차장은 이날은 없었다.
영주야
영애야
형부라 부르고 불렸다.
벌써 오후 5시가 넘는다.
우리가 만난 지 1시간이 지났을 것 같은데 벌써 7시간이 넘었다.
내가 이제 남편 퇴근시간이 다 되어 가니 오늘은 그만 집으로 가자고 말을 하지 않았으면 수다를 계속 이어 나갈 요랑처럼 보였다.
`우리 다음 달은 그때가 꽃게 철인데 영덕에 꽃게 먹으러 가요`
영애의 제안으로 다음 달 오늘 영덕에서 오늘 못다 한 중년의 수다를 마저 떨기로 하고 오늘은 헤어졌다.
내 생각으로는 다음 달에도 수다를 좀 남겨 놓고 헤어지지 싶다.
출근을 해서 목에 직원 신분증을 걸고 참으로 어둡고 무겁게 만났던 그때 그 사람들을 오늘은 참으로 밝고 가볍게 만났다.
아, 그리고 보니 오늘 우리 목에 아무것도 걸려 있지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