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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Aug 16. 2023

문외한의 생각

법에 관한 한 나는 문외한(門外漢)이다.

나는 지금껏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당연히 법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다.


법에 관한 공부라야 은행에 재직하고 있었을 때 업무와 관련한 법 즉, 민법, 상법, 어음수표법, 상속에 관한 법 등에 관한 것만 공부를 하였고 이것마저 지극히 제한적이고 소량의 공부였다.

그것도 자격증 취득과 승진에 관한 시험을 위한 공부이어서 그 목적을 달성하고 이내 싹 다 잊어버렸다.


그러니 나는 법에 관한한은 문외한이 맞다.


그렇지만 나는 형법 제 몇 조 몇 항, 민법 제 몇 조 몇 항, 헌법의 전문 등은 외우지 못하지만 법에 관하여 확실하게 아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은 최소한 도덕의 밑에 있어야 하고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을 어겼을 때는 경중(輕重)에 따라 국가로부터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내가 철이 들고부터 따로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진작에부터 알고 있었다.


법(法)을 한자(漢字)로 보면 물 수(水) 자에 갈 거(去) 자로 구성되어 있다.

즉 법은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가야 한다고 옛 성현들은 미리 알고 있었을 터이다.

물은 흐름에 있어 자신이 흘러가는 곳 전부를 매우고서야 다음으로 나아가고 그 매움에 있어 천하고 귀하고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법도 그 법을 어긴 자에게 천한 자와 귀한 자를 구별하지 말아야 하며 범법을 한 사람은 전부 그에 따른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여야 하는 게 맞다.


법은 법을 잘 지킨 사람에게는 따로 포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은 그 법을 어긴 범법자에게는 그에 상당한 벌을 준다.

이것도 맞는 말이고 이것에는 예외가 없고 있을 수도 없다.


얼마 전 방영한 배우 조인성이 주인공을 맡은 '안시성(安市城)'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고구려를 침범한 당나라 황제 이세민이 안시성(성주:양만춘-조인성 배역)이 철옹성 같이 무너지지 않자 10만 군사를 시켜 안시성 보다 높은 토산(土山)을 쌓게 하였다.

토산을 쌓은 이유가 이것을 안시성의 높이 보다 더 높이 쌓아서 자국의 군사들이 입성(入城)을 할 때 성 안에 있는 고구려 군사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것을 해소하기 위함이었고 이는 실제 양만춘이 이끄는 고구려 군사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당나라 군사가 쌓고 있는 토산으로부터 불리해지지 않을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 성안 이곳저곳을 산책하던 성주 양만춘의 눈에 문득 모래 쌓기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아이들은 손 위에 모래를 얹어 모래성을 쌓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손을 빼버리자 일순간 모래성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이 모습을 보고 힌트를 얻은 성주 양만춘은 당나라 군사가 쌓아 놓은 토산의 밑으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 땅굴을 지지하고 있던 기둥을 허물어 안시성 보다 높이 쌓인 토산을 무너뜨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영화의 이 대목이 영화를 위한 각본인지 실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군사와 병법에 문외한인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모습을 보고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그 일 하고는 관련성이 전혀 없는 어떤 일 하나가 그 문제를 풀 단초가 되는 경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법에 관한 한 문외한인 내가 법에 대한 생각을 말해 보려 한다.

나 같은 문외한들이 보고 생각을 하였을 때 하나도 이상한 것이 없고 당연히 그래야지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 생각을 말해 보려 한다.


세상사람 전부가 세상이 정해놓은 원칙인 법과 도덕을 평생 잘 자키면서 살면 구태어 법이라는 제도가 우리 인간들에게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수시로 그런 원칙들은 무너지고 깨어진다.

법이 무너지고 도덕이 깨어진다.

그러니 역설적이게도 인간사에 있어서 법은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이 무너질 때에는 반드시 일을 그렇게 만든 가해자가 있을 것이고 또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피해자가 같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가해자는 법이 정해놓은 범위 내에서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고 피해자는 그에 합당한 보상과 구제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공평하고 법이 공평하다.


물이 자신이 흘러가는 돌틈 사이사이를 빠트리지 않고 전부 매우고서야 흘러가듯 법도 그것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빠트리지 않고 처벌과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범법자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보면 법에 관한 지식이 하나도 없는 내가 생각을 하여도 어떻게 이런 범법자들에게 이런 판결이 나올까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얼마 전 기사에서 이런 내용을 보았다.

대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두 남자가 같은 아파트 아래, 위층에서 살고 있었는데 평소에 층간 소음으로 자주 갈등을 겪었고 자주 다투었다고 하였다.

그중 한 사람은 60대의 남자였는데 평소 지병을 많이 가지고 있던 건강이 좋지 않은 남자였고 다른 남자는 30대였고 얼마 전까지 씨름선수를 하였는 신체가 건장한 남자였다.


사건이 발생하였던 그날

둘은 동네 마트 앞에서 소주를 사서 대화로 문제를 풀려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다시 말다툼이 났고 신체건강한 전직 씨름선수가 주먹을 휘둘러 60대 남성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화가 나서 1시간 동안 160여 차례 얼굴을 가격하였다고 진술했다.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다.

법원은 가해자인 전직 씨름선수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판결하였다.

선고의 변(辯)은 이랬다.

'둘이 술을 다 마시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집으로 데려다주면서 발생한 우발적인 사고였고 평소 피해자는 여러 가지 지병을 가지고 있었던 터이라 그날의 폭행이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이라 단정 짓기 어렵다'


이게 말이 되는 판결인가?  

내 생각이 편협되고 극단적 일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피해자인 남성이 평소에 많은 지병을 앓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전직 씨름선수에게 고작 징역 1년 6개월의 판결은 너무 사리에 맞지 않은 판결이라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급작스런 상황이 발생하면 자주 들어오던 말이 있다.

'노약자와 임산부, 어린아이들을 먼저 대피시켜라'라는........


여기에서 말한 노약자가 누구인가?

나이가 들어 노쇠한 사람과 병이 들어 몸이 허약한 사람들이 아닌가?


몸에 병이 있다고 해서 목숨을 타인들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라가 과연 올바른 법치국가인가?


또 얼마 전 온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경악케 한 이른바 '서현역 묻지 마 살인사건'의 범인에 대한 머그샷 촬영에 대한 사법기관의 판결도 국민의 한 사람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 머그샷 : 범인을 식별하기 위해 구금과정에서 촬영하는 얼굴사진

사법당국은 묻지 마 범인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하였지만 범인의 머그샷 촬영은 할 수 없었다.

범인이 머그샷 촬영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란다.


이것은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어떤 거래나 계약을 할 때 당사자간 동의는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분명히 맞다.


그러나 이번 서현역 사건은 거래나 계약이 아니지 않은가?


사법기관의 말대로라면 경찰이 범인을 체포할 때 범인의 동의를 받고 체포를 하였는가?

또 아침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곧 돌아오겠다 인사하고 집을 나선 60대 평범한 여성분은 범인에게 자신을 살해하여도 된다고 동의를 하였는가?


우리나라는 3권(입법, 사법, 행정)이 분립되어 운영되고 자유민주국가이다.

그렇게 분립된 3권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서로를 간섭하지 않으며 각자의 존재이유를 충실히 이행을 하여야지 어느 한 분야가 허술하고 무너지면 자유민주주의의 근간도 튼튼하다고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온 국민들을 경악하게 하고 불안에 떨게 하는 묻지 마 사건이 발생을 하였을 때 왜 우리나라 사법기관은 피해자의 억울함 보다 가해자의 입장과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지 아무리 이성(理性)과 평정심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생각을 하려 하여도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가해자가 그런 극단적인 사건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왜 사법당국이 기를 쓰고 그를 대변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해자는 어렸을 적부터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 사회성이 떨어졌고 늘 바빠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가족이 없어 마음의 상처가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그런 상처를 잊기 위해 병원에서 성형과 관련한 마약성 약품을 복용하여 그는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그런 범행을 저질렀으나 그는 초범이고 그의 행동으로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될 줄까지는 그는 몰랐다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는 지금 반성을 하고 있고 재판부에 A4용지 4장 분량의 반성문을 제출하였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은 개인 000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사회문제입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른 범인을 위해 사법당국과 언론은 앞다투어 그를 변호하기 바쁘고 국민들은 제발 오늘 나에게 저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기를 그날의 운세에 맡기고 집을 나선다.


흉악범에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고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은 피해자 가족들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서현역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이 피해자의 생적 사진을 공개하면서 한 말이 하도 가슴이 아파 법의 문외한인 제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글로 써보았습니다.


" 제 아내는 저의 첫사랑이었습니다.

제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던 그날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기절을 하였습니다.

왜 우리나라는 가해자만 조명을 하고 피해자는 조명하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범인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를 엄벌해 주십시오."  


이번에도 피해 당사자가 용서하지 않은 사람을 국가(사법당국)가 용서를 할지 지켜보겠습니다.


저는 범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법부의 목소리 보다 피해자 남편분의 절규가 더 크게 들립니다.


5천만 국민들의 목숨을 지키는 법이 우선하는지

자신의 처지를 이유로 소중하고 무고한 선량한 사람을 해(害) 한 한 사람의 범인 인권이 우선하는지 저는 지켜볼 것입니다.

아니

온 국민들이 지켜볼 것입니다.


인권은 소중합니다.

그러니 꼭 지켜주고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범인에게 인권이 있듯이 그의 손에 의해 아무 잘못 없이 피해를 본 피해자와 그의 가족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

인권이 소중한 만큼 법도 소중합니다.


법의 문외한도 그 정도는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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