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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Aug 09. 2023

수도꼭지 아빠


내 눈으로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내 눈에는 눈물샘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진료받은 안과에서 선생님이 눈물샘은 정상이라고 하였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까지 나는 내게 눈물샘이 아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내 기억으로 어렸을 적 나는 거의 울지 않았다.

뭐 거창하게 사나이 대장부는 태어나면서 한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한번, 나라가 망하였을 때 한번, 세 번만 울어라는 대의(大意)까지는 아니었고 더군다나 나에게 그런 대장부의 기질이 있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더 소심하였고 지질하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울지 않았던 것은 나의 할배 때문이었을 테다.

할배 때문에 나는 울지 않았다기보다 울지 못하였다.

어쩌다 울다가도 할배가 나타나시면 나는 울음을 뚝 그치고 애써 울지 않은 척하였다.

그런 나를 할배께서는 또 기가차게 알아보시고 " 쯧쯧 어설퍼 터진놈 " 하시며 눈으로 나를 꾸중하셨다.


내 기억으로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겪은 일 하나가 내 눈물샘을 바짝 마르게 하였고 그때부터  나는 울지 않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자랄 때 형제가 없었던 나는 거의 혼자 놀 때가 많았는데 그날도 혼자 강아지풀이 피어난 냇가에서 깜둥고무신으로 배를 만들어 놀다가 물 밖으로 나와 시냇가에 돌을 던지며  물에 젖은 고무신을 햇볕에 말렸다.


내가 던진 돌멩이가 만들어 낸 동그랗고 조그마한 원(圓)이 나에게는 동생이었고 형이었다.

내가 시냇가에 돌을 한 번씩 던질 때마다 나에게 형이 한 명 생기고 동생이 한 명 생겼다.


그렇게 10여분을 놀았을까?

마지막 돌을 던진 나는 일순간에 얼음으로 변하고 말았다.


던진 돌이 하필 씻어서 말리려고 개울강 밖에 둔 할배 요강으로 향하였고 그 돌은 어김없이 요강을 박살내고 말았다.

"쨍그랑~~!!"

요강은 수십 개의 조각으로 산산조각이 났고 하필 그곳을 지나시던 할배가 그 모습을 보고 말았다.


가뜩이나 얼어있는 나에게 할배는 당신의 목까지 기르신 수염을 달달 떨면서 추상과 같은 꾸지람을 하셨고 눈에서는 레이저 광선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무서운 할배 앞에서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저 허구많은 놀 장소를 놔뚜고 니는 와 하필 여기 거랑(냇가)에서 이카고 놀아서 이 사단을 맹그노?

요강하나에 돈이 얼만지 니 아나?

그라고 사나새끼가 울기는 또 와 우노?

니가 뭐 잘했다고 우노 이 말이다"


할배의 꾸지람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숨이 턱턱 막혔고 울지 말아야지 할수록 울음은 점점 두려움과 서러움이 어깨동무를 하고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시고 할배는 "사나 새끼, 사나 새끼 " 하면서 더 나를 꾸짖으셨고 나는 더 두렵고 더 서러워 급기야는 꺼이꺼이 하며 울었다.


마침 할배의 고함소리를 들으신 할매가 내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벗어났기 망정이지 그날 나는 그 자리에서 실신이라도 할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당신의 요강을 잃은 할배는 이직도 분(憤)을 삮히지 못하시고 나와 할매,엄마를 불러 앉혀 놓고 낮에 하셨던 꾸지람의 2막을 다시 하셨다.

낮에와는 다르게 내 옆에 우군(할매,엄마)이 포진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낮에 내었던 똑같은 꺼이꺼이 하는 소리로 울었고 급기야 그런 나에게 할배는 입에 물고 계셨던 담뱃대를 던지셨다.


마린보이 부메랑처럼 빙빙 돌며 나에게 날아온 담뱃대는 운 좋게 내 머리를 피해 어깨에 맞았고 퍽 소리와 함께 꺼이꺼이 하던 내 울음도 뚝 그쳤다.


내가 엄마의 손에 끌려 나온 할배 방에서 할배와 할매 싸우는 소리가 한참이나 들려왔다.

방에서는 '아이고 내 팔자야'하며 우는 할매의 가엾은 소리와 '열이 니는 앞으로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우는 소리를 내면 죽을 줄 알아라'하는 할배의 고함소리가 같이 배어 나왔다.


그날 이후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다.

울지 못하였다.


'그래 할배 말씀처럼 사나새끼가 이런 일로 울면 안 되지'하는 대승적인 깨달음이 있어서가 아니고 또다시 울다가는 분명 날아올 할배가 던지시는 담뱃대가 무서워서였다.


그런데 그런 추상과도 같았던 할배도, 꾸중듣는 나를 구해주시던 할매도 세월을 따라 떠나셨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울지 말아야 한다는 칩(chip)에 심어진 나의 뇌는 더 이상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았고 할배, 할매가 떠나실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아무리 슬픈 TV드라마도 내 눈물샘을 건드리지 못하였고 아무리 슬픈 일을 겪은 내 주변사람의 그 일도 나를 울게 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우는 사람들이 더 이상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흘려야 할 눈물의 양(量)이 정해져 있는가 보다.


내 나이 오십의 중반에 들었을 때쯤 어느 순간부터 내 눈물샘은 지나가는 바람에도 반응을 하며 눈물을 흘려

대더니 나를 하나도 움직이게 하지 못하였던 슬픈 TV드라마는 그 드라마에 비련의 주인공이 흘리는 눈물보다 내가 흘리는 눈물이 더 많아졌고 대중가수가 부르는 슬픈 노래에는 옛날 내가 할배 앞에서 울면서 내었던 꺼이꺼이라는 소리가 어김없이 나온다.


심지어 동물의 왕국에서 어미를 잃고 이리저리 어미를 찾아다니는 새끼물개의 모습에서 나는 또 운다.

길을 가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야생화의 연약함도 예사로 나를 울려댄다.


아마도 공채 오디션에서 우는 연기로 탤런트를 모집한다면 단연코 내가 뽑힐 것 같다.


왜 이럴까?

내가 왜 우리 애들한테 수도꼭지 아빠라고 불려야 할까?

내 살아온 세월이 그렇게 굴곡지고 서러운 삶도 아닌데 나는 요새 왜 자꾸 눈물이 날까?

이제 내가 떠날 때가 되어서 그럴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제 같이 밥을 먹으면서 친구 녀석이 나한테 그런다.

"그런 게 다 인자 우리가 늙어간다는 징조인기라.

사람이 늙으마 남자는 여성호르몬이 생겨나고 여자는 남성호르몬이 생기나가 남자들은 뻑하마 찔찔울고 여자들은 씩씩 하고 용감한 군인같이 된다 아이가"


모르겠다.


그저 내가 살아온 세월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추억이 뒤섞이고 내가 살아 있을 유한(有限)의 세월에 대한 감사와 아쉬움이 더해져 메말라 있던 내 눈물샘이 터졌을지 모르겠다.

세월이 만들어낸 지금껏 잘 살아온 나에 대한 대견함의 마음과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의 마음에 나는 꺼이꺼이 하는지도 모르겠다


휴가를 내서 잠시 집에 들른 둘째 딸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에게 한마디 한다.

"이 대목에서 수도꼭지 우리 아빠

또 수도꼭지 열어야지?"


그래

니들도 나중에 늙어봐라.

쉽게 열리는 수도꼭지가 되는지, 얼어서 동파가 된 수도꼭지가 되는지.............  


그래도 나는 울련다.

억지로 참고 나오는 눈물을 밀어 넣는 짓은 이제 하지 않으련다.

자주자주 꺼이꺼이 소리를 내면서도 나는 울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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