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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Jul 31. 2023

운명

'여자들의 수다'라는 말은 이제 옛 말이 된 듯싶다.

남자들, 그중에서도 나이 든 백수들의 수다는 여자들 그것 못지않게 수다스럽고 극성스러운 듯하다.

자신들 신세가 이제 중년의 나이이고 백수인데도 도무지 피해 가지를 않는 것이 세월이라며 어쩌지도 못하는 세월에다 대고 밉네, 곱네 하였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아 예순 하고도 한 살의 나이가 되었다가 올해 6월부터 시행한 신(新) 나이 계산법 덕분에 다시 50대의 나이가 되었다며 낄낄대며 친구들의 수다에 쓰윽 끼어들었다.


백수 셋이 주문한 커피를 받아 앉은 지 꼭 두 시간이 지났을 때쯤이었다.

친구 하나가 자신의 친구이야기라며 지금껏 떠들었던 두어 시간의 수다에 수다를 갖다 얹었다.

말인즉

얼마 전 그 친구의 친구가 자신의 오래된 죽마고우가 권하는 투자처에 꽤나 큰 금액의 돈을 밀어 넣었다고 하였다.

물론 그 죽마고우도 함께 투자를 하였단다.


그랬다가 처음 몇 달은 꽤나 솔솔 한 투자수익금이 그들의 손에 쥐어 줬다고 하였다.


그런데 투자라는 것이 이름 그대로 던질 투(投)字에 재물자(資)字가 아닌가?

그렇게 던져져 자신들의 손을 떠난 재물이 이후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재물을 던져 놓았으니 이제 그 재물이 다른 재물을 물고 오던지, 아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던지는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결국 그 친구는 자신의 죽마고우와 함께 투자한 돈 전부를 잃고 한 사람은 부인과 이혼을 하고 혼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또 한 사람은 거의 폐인이 되어 잠을 길에서 잔다고 하였다.

실제 잠을 길에서 자기야 하겠는가 만은 거의 노숙자신세를 그렇게 빚대어 말하는 듯 보였다.


이후 그 친구는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이러쿵저러쿵 한 시간여를 더 이야기하였고 우리는 만난 지 서너 시간을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하다 헤어졌다.


내가 말했다.

"지금 우리 나이에 뭐 하러 그런 위험한 곳에 투자를 해서 저런 불행을 자초했을까?

 우리 나이에는 마음 편한 게 최고인데 그냥 있는 돈 살살 써가면서 마음 편하게 살면 되었을 낀데 쯧쯧쯧...

 그라고 다른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익을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아이가?

 느그는 그래 생각 안하나?"

하였다.


내 말을 다 들은 또 한 친구는

"그게 다 운명인기라.

  자네 친구는 노후에 그렇게 살다가 가라카고 정해진 운명이다 이 말이다.

  그 운명은 어떤 누구도 우예 할 수가 없다는 말이지

  그 친구는 그런 투자가 아이라도 우예 말아먹어도 말아먹을 팔자인기라"


처음 말을 꺼낸 친구는 나와 친구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집에 돌아와 늦은 밤 잠을 청하려 누웠으나 쉬이 잠이 들지가 않았다.

낮에 우리 셋이 모여 한 친구의 친구 이야기가 자꾸 머리를 맴돌다 머리 가장자리에서 앉았다 일어섰다 하였다.


어제 이 시간의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을 텐데 오늘의 나는 친구의 친구가 하였다는 투자의 잘잘못 여부보다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그 운명은 정말 정해졌으며 우리는 그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고정이 되어 눈을 더욱 말똥이게 하였고 정신을 더 초롱하게 만들었다. 


내 머리 정수리에 앉은 상념은 결국 새벽의 여명을 보고서야 끝이 났다.

끝이 났다기보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였다.


사람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


얼굴이 잘 생긴 사람, 못생긴 사람

돈이 많은 집에 태어난 사람, 태어나면서 부터 가난을 안고 태어난 사람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 약골로 태어난 사람

재주가 많은 사람, 재주가 영 없는 사람 등

사람들의 다른 모습은 너무나 많다.


나는 여기까지가 타고난 운명이라 생각한다.

태어날 때 내가 좋은 점만 골라서 태어날 수가 없고 내가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운명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후의 삶은 운명이 아니다.

돈이 많은 집에 태어난 사람이 돈의 소중함을 모르고 흥청망청 돈을 탕진하며 산다면 그는 얼마가지 못해 가난의 굴레로 들어갈 것이고 결국 태어나면서 가난을 안고 태어난 사람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일지라도 열심히 일을 하고 알뜰히 돈을 모으면 그 사람은 돈이 많은 집에서 태어난 사람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된다.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선행도 많이 하면 그 사람은 금상첨화(錦上添花)의 삶을 살 것이지만 잘생긴 자신의 얼굴을 믿고 거들먹거리며 사람들을 업수이 여기면 그는 결국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신세가 될 것이다.


비록 내 얼굴이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못생기게 태어났지만 그가 겸손하고 학식이 높아 행동이 가볍지 않으면 그 사람은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뭇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결국 인생은 조금씩 다르게 태어난 자신들의 운명을 하나씩 채워가는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달리기를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늦게 뛰게 태어나도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먼저 골인점에 도착을 하였을지 언정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 결승점에 도착하면 그만인 것이다.

몇 초에 골인을 하였는가 보다 내가 결승점까지 가는 동안 얼마나 최선을 다하였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나를 달리기에 소질이 없게 태어나게 하신 절대권자가 주신 운명에 성실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 결승점을 통과하고야 마는 내 의지가 더해져 내 인생이 결정이 되는 것이다.


나중에 세월이 많이 흘러 나를 만들어 주신 절대권자의 부름에 내가 따라야 할 때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아 나 스스로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최선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나는 한치의 후회도 미련도 없다. 한평생 잘살다 간다'는 말을 남기고 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훨훨 떠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에게 박수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는 인생이 아닐까 싶다.


운명 + 의지(노력) = 인생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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