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할의 오류 - 6월 1주차
최근 대한민국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이슈는 '루나 코인'이다. 루나 코인은 한때 시가 총액이 50조 원에 육박하여 세계 코인 시장에서 7위 규모를 자랑하였다. 특히 창업주가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었던 루나 코인의 가치는 수일 만에 99.9% 급락하며, 업비트 등 여러 코인 거래소로부터 상장폐지라는 미명 아래 형해화(形骸化)되었다. 여기서 더욱 충격적인 점은 루나 코인은 타 코인보다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Stable Coin이라는 점이다. 2017년 즈음 등장한 코인에 대한 경각심 강조가 다소간 침닉된 찰나 다시금 수면 위로 등장하였다. 실제로 루나 코인 사태 이후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코인들의 거래량도 현저히 줄어든 상태다.
루나 코인은 어떤 방식으로 성장의 동력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 우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보험 장치를 확보했음을 투자자에게 호소하였다. 개발사 측은 비트코인을 포함한 주요 암호화폐를 수조 원가량 보유하고 있음으로써 비정상적인 가격 변동이 있을 시에 언제든 보유 자산을 활용하여 변곡점을 생성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리고 루나 코인 개발사 측은 타 Stable Coin의 정형에서 벗어나, 현금 등의 담보를 지니고 있는 대신 '테라(UST)'라는 세트 상품을 개발하였다. 지속적으로 1달러 내외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테라 코인을 시스템상에서 루나 코인과 교환할 수 있도록 설정하여, 기본적인 수요-공급 법칙을 통해 루나 코인의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은 시장 투자자를 매혹하게끔 하였다. 마지막으로 개발사 측은 테라 혹은 루나 코인에 투자하면 연 최대 20%의 이자를 지급하였다. 즉 금융 서비스 차원의 움직임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위 3가지의 성장 동력은 루나 코인의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활약 한 번 없이 붕괴했다. 우선 개발사 측은 실제로 코인 가치 급락 위기에 처하자 보유 비트코인 등으로 테라 코인을 구매하였지만, 그 효과는 더디다 못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개발사 측의 대량의 테라 구매는 일종의 스노볼이 되었다. 보유하게 된 대량의 테라를 루나로 교환하자, 공급이 초급등한 루나 코인의 가치는 급락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투자자에게 제시한 연 20%의 이자는 오히려 회사의 수익 증대를 옥죄게 할 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는 아무런 방책을 제시하지 못한 정책이었다. 실제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심지어 세계 최고의 투자펀드조차 연 20%의 예치이자를 보장할 수 없다'며 코인 업계의 무책임한 정책에 분노를 표시하였다.
결국 루나 코인의 정당성은 오로지 '그럴듯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코인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객관적 실재로 판단한 오류로부터 개발사 테라폼랩스와 투자자는 피해를 보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명저 <사피엔스>에서 '가상의 실재'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우리 사피엔스는 강, 나무, 사자 등의 객관적 실재를 차치하고서라도 정신, 마음, 제도, 패턴, 가치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실재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 가상의 실재는 붕괴될 수도 있는데, 최근에 일어난 가상의 실재 폐기 사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제시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의 국소적 전쟁을 겪어왔음에도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평화적 시대를 구축해왔다. 이는 국제사회 혹은 국제기구라는 가상의 실재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일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다시금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을 예각화함으로써 국제사회, 평화라는 가상의 실재를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우리의 인식을 둘러싼 가상의 실재는 무수히 많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제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국가는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은 사람의 믿음으로 형성되어 있는 무언가 이다. 비판 없이 흡수된 가상의 실재는 사피엔스가 무한하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 유구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가상의 실재는 담지자(擔持者)의 신뢰가 무뎌지는 순간 제어 장치 없이 붕괴하고 만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치관, 제도는 관념론적 접근의 산물임을 유념하고, 이를 경계해야 한다. 루나 코인 사태는 단순히 시운(時運)이 따라주지 않은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 '상상력 사회'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아주 미세한 경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