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할의 오류 - 5월 3주차
분할의 오류 - 6월 1주차분할의 오류 - 6월 1주차
윤석열 정부의 출발과 함께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의 집무실이자 거주 공간인 청와대는, 온전히 민중에게 개방되었다. 청와대 개방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사실은, 윤석열 정부가 용산구에 집무실을 위치시켰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단순히 집무실 이전 정도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한양의 기준을 사대문 내외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통치자의 집무실이 한양을 약 600여년 만에 벗어나는 것이다. 아관파천, 임진왜란 등 일시적 이동을 제외하고 말이다.
태조 이성계는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궁궐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은 경복궁, 즉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즉위 27일만의 일이다. 이후 수도를 옮기려는 시도는 수 차례 있었다.
광해군은 한양에 거주하는 기득권 세력의 해체를 꾀하며 교하(현 지명 파주)로의 천도를 의제로 표면화하였다. 하지만 대중과 신하의 지지를 받지 못해 결국 기초공사 중단 명령으로 교하천도는 막을 내렸다.
박정희,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각각 한양을 넘어 서울까지 떠나고자 하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울의 집적화를 분산시키고자 행정 수도 이전을 매우 관심있게 고려했다. 현재 밝혀진 바로는 ‘장기 지구’ (현재의 세종시를 포함한 공주시 일대)를 최종 수도 이전 후보지로 선정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인해 해당 계획은 무산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국가균형발전을 목표로 하는 세종시로의 수도 이전을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고, 실제로 이행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반쪽짜리 세종특별자치시가 구성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통치는 단순히 이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두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 것으로 추측된다. 역사와 전통의 한양을 벗어난 그들은 대한민국 통치 역사의 또다른 시발점이 될 수 있을지, 혹은 성급하게 한양에게 오명을 씌운 국치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