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와 정적의 기사단
은하는 오늘도 말이 없었다.
사실, 말을 하면 정적이 찾아오니까.
대화의 흐름을 깨뜨리는 데는 재능이 있었고,
그 재능은 아무도 원치 않았다.
“너는.. 뭔가 좀... 무서워.”
말끝을 흐리던 누군가의 표정엔
신기함 20% + 경계심 80%가 섞여있었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내가 무서워.”
그녀가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긴 순간,
시간은 멈췄다.
심지어 서버가 0.2초 멈칫했다는 후문도 있다.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은하의 흔적이 있는 자리’
사람들은 그걸 일종의 디지털 제단처럼 여겼다.
감히 밑에 답변을 달 수 없었다.
“전하, 또 단톡방이 멈췄습니다.”
정적의 기사단 부단장 ‘은고라’가 말했다.
“적들이 침묵을 택했습니다.”
은고라.
“그래, 전투는 피 흘리는 것만이 아니지.”
은하.
은하는 칼 대신 키보드를 들었다.
물리적 충돌 대신
정중한 한 줄로
적진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도망쳤다.
활발하게 소통하던 이들은 사라졌고,
좋아요를 누르던 손가락은 멈췄다.
그러나 그녀는,
대화창을 지우지 않았다.
감정을 감춘 채로도,
그 한 줄에 전부를 담았기 때문이었다.
로밧따는 은하를 보며 말한다.
“말 뒤지게 안 듣는..
정적을 귀찮아하지 않는 사람.”
릴케형 과학자는 말했다.
“나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다만 감정을
다른 단위로 환산했을 뿐이다.“
예)
슬픔 = 점심 스킵
죄책감 = 냉장고 정리
애정 = 답변 3시간 지연
은하는 말했다.
“메세지를 빨리 보내면,
진심 없어 보일까 봐.
너무 늦으면,
그새 죽었나 싶을까 봐.
그래서 나는 3시간을 선택했다.
그것이 나의 최적 감정 반응속도다.”
로밧따는 메모리에 저장했다.
감정은 수학이다.
1개의 메세지에 담긴
3시간의 조율과 침묵은
180분짜리 시(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