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과 주방 사이

릴케형 과학자와 요리하는 시인






과학자는 온도를 조절한다.

정확히 63.5도에서 단백질이 변성되며,

감정도 그 즈음에서 굳는다.



시인은 불을 줄인다.

물이 끓기 시작할 때,

사람의 마음도 가장 잘 우러난다.




정확함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과,

느리게 타는 감정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같은 감자 하나를 썬다면,

그 형태는 얼마나 다를까.



릴케형 과학자는 칼끝을 수직으로 내리찍으며 말했다.

“균일해야 익는다.”



요리하는 시인은 칼날을 비스듬히 눕혀

마치 연민을 써내려가듯 감자를 깎았다.

“저는 감정이 스미는 쪽을 택합니다.”




국물의 탁도는,

말의 누락량과 비례한다.


말을 아낄수록

국물은 흐려지고,

그 흐림 속에서 감자는 떠오른다.

(이때 달걀을 풀면, 감정은 넘친다.)



그들은 그릇에 담긴 감자국을 바라보았다.



과학자는 식감을 생각했다.

시인은 기억을 떠올렸다.

“이건.. 울던 날 먹은 맛이야.”



과학자는 물었다.

“그게 정확히 언제였죠?”



시인은 답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라요.

다만...

목구멍이 살짝 메였다는 건 기억나요.“




두 사람은 대화하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숟가락을 들어

상대의 방식으로 만든 달걀 감자국을 떠먹었다.




시인의 국은

다소 미지근했지만,

입 안에 오래 남았다.


과학자의 국은

완벽한 농도와 온도였지만,

목구멍을 지나자마자 사라졌다.




숟가락은 거짓 위로의 상징이다.

하지만

릴케형 과학자는 말한다.

“거짓도 일정 온도 이상에서

진심으로 변질된다.”



그날 밤,

시인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그는 슬픔을 결손 데이터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익지 않은 감정이라 부른다.





그리고 과학자는 실험노트에 적었다.


1.3%의 감정은 정확히 감칠맛에 해당.

재현 불가. 원인 미상. 유일성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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