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편
병인(病因)이 마음에 있으매,
은하는 스스로 진단하였다.
“이 병은... 예의 과잉으로 생긴 풍증이로구나.”
그리하여
그녀는 감정의 내복약을 짓기 위해
자신의 뇌를 약재 삼아
달이기로 하였다.
初卯(초묘),
새벽이 밝기도 전에
은하는 아궁이 앞에 나와 앉았다.
손에는
면포, 붓자루,
마음속에 곪아 있는 말의 잔해.
로밧따가 말하였다.
“오늘은 뇌 어느 부위를 쓰시렵니까.”
“전두엽과 편도체를 섞거라.
전자는 사회성을 잃은 자리요,
후자는 감정을 맺은 자리다.”
로밧따는 조용히 움직였다.
한때 로봇청소기였으나,
지금은 은하의 비서兼탕전사(兼湯煎師)로 전직하였다.
*주첩당(晝帖堂)엔 비서 겸 약 달이는 사람이 있었다.
글이 뜨면,
단골 서생(書生)의 안색을 살피고
그날의 감정탕을 맞춤으로 짓는다.
슬픔이 묽을 땐 인삼을 넣고,
분노가 넘칠 땐 감초를 빼야 했다.
*晝帖堂 (낮 주, 글 첩, 집 당)
낮에 글이 걸리는 집
은하는 면포를 펼쳐 뇌를 올렸다.
붉은 기운이 가라앉자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감정이 덩어리져 있었다.
은하는 전날 못다 쓴 문장 3줄,
사라진 좋아요에 대한 미련 한 줌,
그리고 밤새 앓은 자의식을 넣고 불을 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하는 ‘그 감정’을 꺼내 들었다.
마른 눈물과도 닮은 줄무늬.
어릴 적부터 안아보지 못한 것.
“호랑이 한 점, 대령이오.”
로밧따가 말했다.
은하는 대답 대신 조용히,
뜨거운 국물 한 바가지를 끼얹었다.
호랑이는 말없이 익어갔다.
# 동의보감 中曰
心氣不足하면 驚悸하고
思慮太過하면 精傷하니라.
(마음의 기운이 부족하면 놀라고,
지나친 생각은 정기를 상하게 한다.)
“...허면, 이 한약은..”
은하가 말끝을 흐린다.
로밧따가 받았다.
“예.
생각이 너무 많은 자들을 위한 처방이옵니다.
웃기되,
뼈를 간 후에야
비로소 삼킬 수 있는 맛일 것이온데...”
불은 밤새 탔다.
가마솥 위로 피어오른 김은
단순한 수증기가 아니라,
감정의 기화(氣化)였다.
그 즈음,
주첩당(晝帖堂) 어디에선가
또 한 명의 서생(書生)이 말을 토해냈다.
“...내가 졌구나.
결국 좋아요를 누르고야 말았다...
은하야,
네 글을 보면 왜 이리 마음이 아리는것이냐...”
“그건...
감정의 어혈 때문이옵니다.
가슴에 멍든 말들이,
눌러도 안 아프면 병이 깊어진것이지요.”
翌日(익일).
은하는 주첩당에 마음을 올렸다.
그녀는 그 글을 ’처방전‘이라 불렀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마을회관 어르신들께 한 사발씩 내어주었다.
할머니들 중 한 분이 말했다.
“은하야, 이 글..
뭔가 뇌맛이 나는거 같은디,
근디.. 개운혀.”
# 備考(비고)
此藥은 하루 한 편씩 복용토록 하며,
笑後에 哭이 따를 수 있음에 유의할 것.
錄之於心하고, 忘之於腦하라.
(마음에 새기되, 머리로는 잊어라.)
# 동의보감 외전曰
喜怒不泄則傷心이요,
笑感不記則潰肝이라.
기뻐도, 화나도,
표현하지 않으면 심장을 상하게 하며,
웃고 감동하고도 기록하지 않으면 간이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