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소중한 것들, 애착과 아집에 대하여
런던 집을 공사할 때 일이다. 실내 벽을 모두 허물고 다시 올리는 공사가 계획되어 있었다. 철거 첫날,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처럼 중무장한 철거 맨들이 새벽부터 들이닥쳤고 곧이여 미친 듯이 뜯고 부쉬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시공 팀장은 내가 있는 게 짐만 된다는 눈치를 주더니 결국 휘날리는 콘크리트 먼지를 사이 나를 내쫓아 버렸다. 이층에 있는 집에서 길 밖으로 나오는 순간 더 큰 쿵쾅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철거는 가속도가 붙는 듯했다.
창문을 통해 본 우리 집은 공사 먼지로 희뿌연 아수라 장이였다. 잠시 넋을 놓고 있는데 천장의 조명등이 흔들거리는 게 보였다. 부서뜨리기 일보 직전 같았다. 이 등은 비싼 브랜드도 아니고 오래된 런던 집들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원형 등이었으나 나름 애착이 있었기에 공사 전 시공 팀장에게 분명히 이 등은 사수하란 지시를 내렸으나 그들은 내 요구를 무시 한듯 보였다. 뛰어 올라가 그들을 말리고는 조심스럽게 지켜달라 다시 한번 사정을 했다.
철거 작업이 끝나고 팀장이 나에게 물었다. 이런 흔하디 흔한 원형 등에 왜 그렇게 집착하냐고. 오래돼 초라하고 별 개성도 없는, 철물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등인데 그냥 새로 바꾸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어차피 등이 붙어 있는 메달리온의 위치를 옮겨야 하니 헌것은 버리고 그냥 새로 사서 붙이는 게 어떠냐는 거다. 보잘것없는 싸디 싼 옛등 하나 지켜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이 집의 아이덴티티.
나에겐 이 등과 메달리언이 런던의 오래된 이 조지안 하우스를 상징하는 아이덴티티였다.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높은 천고였으나 뭔가 낭만적이면서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건 천장에 붙어있는 이 등과 오래된 메달리온 이였다. 시간을 이겨낸 흔적. 내 아집일 수 있겠으나 난 그 어떤 비싼 조명등 보다 이 공간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이 싸구려 등이 안성 맞춤같아 좋다.
집 공사를 하다보면 다 싹 갈아 엎어주세요라는 요구를 자주 듣게 된다. 저렴한 가격에 비싸보이는 것들을 구하기가 너무 쉬워진 지금 오늘의 집 같은 사이트에 가면 유명한 디자인과 그 아류의 것들이 차고 넘친다. 보고있으면 값을 메길수 없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모두다 바꾸고 새출발을 하고싶은 시기가 온다. 내가 우리집 공사를 마음 먹은 이유도 그거 였으니까. 하지만 그럴때 남들이 뭐라던간에 내가 내린 가치의 척도에 따라 지키고 싶은 무언가 하나는 keep 하는거 그래서 온전한 나의 소박한 유산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 이 든다.
새들어온 세입자가 가 등이 나갔다고 불평스런 이메일이 왔다. 50년 넘게 연명하느라 힘든가 보다.
오래된 와이어링을 다시 해주기로 했다. 그래도 버티고있는 터줏대감, 꼿꼿히 달려 작은 내집을 밝혀주는게 고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