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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흑과 백일 필요는 없어

샤넬

무채색인 흑과 백은 샤넬을 대표하는 브랜드 컬러이다.  그녀는 긴장, 애도, 죽음의 색인 '흑색'과 무한, 순수, 영생을 상징한 '백색' 이 상극의 대조 색을 활용하여 시대를 뛰어넘은 세련미를 만들어 냈다. 

극명의 대비되는 무채색 컬러 대비 만을 활용한다는 색채 차원에서 샤넬은 내게 어찌 보면 디자인하기 가장 쉬운 공간 중 하나였다. 흑백의 미학에 기반한 공간의 명확한 경계와 군더더기 없는 직선 형태의 가구 배치를 이용하여 간결하면서 절묘한 대비가 매력적인, 그녀의 샤넬 재킷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공간들을 디자인했다. 색은 두 개 더라도 유약, 브론즈, 석판, 알루미늄, 오일, 젯소 등의 다양한 소재와 질감으로 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건 피터 마리노 스튜디오만의 오하우였고 우리는 이 무채색이 주는 간결하지만 세련된 감성으로 강렬한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장식장, 쇼윈도, 벽 디스플레이 등 샤넬의 많은 공간 요소들을 디자인했지만 이중 내가 가장 즐겁게 작업한 것은 바로 파티션 스크린 작업이었다.  샤넬만의 DNA에서 따온 다양한 모티브로 2미터가 넘는 가리개 스크린을 여러 개 구상하였다. 여느 때처럼 오로지 흑과 백만을 사용해야 하는 법칙에 따라 여러 가지 옵션을 구상하고 제안했다.  하지만 색에 있어선 하얀색과 검은색, 항상 두 개만의 선택지에서 머무는  단순화의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렇게 한창 흑과 백만으로 공간을 꾸미는 작업을 하다 보니 어느 센가 나도 모르게 회사 밖 일상에서도 검은색과 흰색만에 만 집착하는 강박이 생겨 버린 것이다. 검은색 아니면 흰색으로만  단순화해 버리면서 판단 강박에 걸린 완벽주의자처럼 흑백논리에 기안해 세상을 흰색 아니면 검은색으로만 보려는  버릇이 생겨 버린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극단적인 흑백논리의 성격으로 까진 안 갔고 난 이 개념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하게 되었다.  




흑백논리란 선과 악, '옳음과 그르침', '강자와 약자', '거짓과 진실', 등으로  대립된 양극의 관점을 일컫는다.  이 논리는 어떤 상황을 두 가지의 이분법적 구도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를 수반하는데 이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양 극단으로만 구분하고 중립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 편중된 사고방식이나 논리로, 불합리하게 숨은 이점들을 간과하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 없는 단순화는 재앙임을 우리는 여러 사회적 이슈에서 볼 수 있다.




절대적, 극단적으로 치우친 시각으로 보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하지만 난 흑백 사고가 반드시 나쁜다고 생각 하진 않는다. 주변 세상을 보기 위해 사용하는 유일한 렌즈로만 쓰지 않는다면, 그 양극 사이의 갈로 길에서 너무 부정적인 편견에 진실을 왜곡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발란스 잡힌 흑백논리는 복잡한 삶을 단순화시키는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소 차가울 법한 흑백 추상화 같은 매장 곳곳에 중성을 띤 현대 미술작품을 배치하는 건 흑백만으로는 모자란 공간의 중성적인 예술적인 온도를 높이기 위함이라는 것, 샤넬 공간을 디자인하며 느낀 작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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