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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유토피아란 없다

이직하고  꿈꾸는 그대,  무사가 되어 도장 깨기를 시작하라.

불만 가득한 직장인이라면 머릿속에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장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상사의 얼굴에 사직서 봉투를 집어던지고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모습이다. 뒷 배경으로는 퀸의 [I Want to Break Free] 음악이 흘러나올 듯 한 넘치는 스웨그로...  

자랑은 아니지만 뉴욕 월스트리트 한복판에서 그걸 해본 사람이 나다.  대기업 건축회사 시니어 디자이너로써 밤을 새워가며 온 힘을 다해 팀을 이끌던 나는, 고약한 프로젝트 매니저의 상습적인 사내정치와 중상모략으로 도를 넘은 그의 장난질과 제재를 하지 않는 회사에 결국 분을 못 참고 폭발해 버린 것이다. 사직서를 얼굴에 집어던지진 않았지만 클라이언트 미팅 중 혼자 자리를 박차고 나와 퇴사하겠노라 쿨내 진동하는 이메일을 보낸 사건은 회사 동료들에게 아직도 화자 될 만큼 드라마틱 한 사건이었다.  바로 다음 날 바로 인사과가 중재에 나서는 바람에 난 메니져의 사과를 받게 되었고 보기 좋게 징계까지 선물하게 되어 좋게 일단락이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최후의 퇴사/이직이라는 카드를 걸고 어린 동양인 여자로서 못된 백인 남자에게 덤벼 혼쭐 내준 나름 멋진 '베드에스' 일화로 내 기억 속에 남는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직장인들의 비애'를 충분히 이해한다.  외국에서의 환경이 다른 문화적 요건이라는 점에서 오는 차이점은 분명 있겠지만 각기 다른 사람이 모여 협동과 경쟁을 하는 공동체라는 면에서 해외도 별반 차이는 없다.  우린 모두 처음 회사를 다니기 시작할 때를 기억한다.  크나큰 포부와 새로운 환경에서의 또 다른 성장에 대한 기대로 희망찬 첫발을 내디며 출근한다. 하지만 그 조직과 문화에 나름 익숙해진 시점에 다다르면 언제부터인지 문제점들만 보이기 시작하고 나만의 내적 갈등에 괴로워한다. 이는 야망이 크고 원대한 포부를 갖고 사회생활을 하는 젊은이일수록 견디기 힘들며  웬만한 내성이 생기기까지의 시간은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누구보다 더 실력을 빨리 키우고 배우고 앞서나가고 싶은 마음에 회사의 비효율적인 계급조직에 반항도 해보고 욕심을 부리다 혼쭐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졸이다 결국은 '여긴 답이 없다, 떠나자' 이직만이 해답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나에게도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성 있는 다양한 회사들을 4번 퇴사/이직한 경험이 있다. 모두 다른 이유에서 내린 결정이었고 후회는 없다. 그러나 회사들을 거쳐가며 깨우친 진리는 하나 있다.  '옛 직장의 진정한 가치는 새 직장을 시작하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여기보다 못한 곳은 없을 것만 같은 지긋지긋한 회사에서도 배울 점은 분명 존재하고 뭘 배웠느냐는 나중에 밝혀진다는 것이다.

시카고 미대 졸업 후 첫 취업길에 올라 2년쯤 됐을 때  같은 일 반복적으로 시키는 업무가 시간낭비처럼 느껴졌고  배우는 건 하나도 없는 듯 한 직장생활의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직장을 탐색했고 이직에 성공했으며 다음 회사에서 난 다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열정을 불살를 수 있었다. 여기서 특이했던 점은 예전 직장에서 지긋지긋한 반복으로 인해 손에 익은 작업들이 나만의 노하우/테크닉이 되어 든든하고 화려한 갑옷으로 둔갑해 다른 동료들 사이에서 날 빛나게 해주는 것이다. 마치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가 1탄 게임을 이기고 손에 넣은 아이템으로 2탄에 들어서 천하무적이 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후로 매번 직장을 옮길 때마다 나는 지금 게임플레이 중이고 각 직장은 매번 레벨 업을 하기 위해 '도장 깨기'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회사에서 맡는 임무들 하나하나가 또 다른 무기를 장착하는 것 같이 보람 있었고 어려운 관문에 봉착했을 때도 내 주머니에 또 다른 스킬을 넣는 순간이구나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그 스킬은 다음 직장, 다음 업무에서 요긴하게 빼서 쓰는 무기가 되었다.



이직은 분명 좋은 선택이다.  백번 참고 '바를 정'자를 열녀비에 새겨가며 한 회사에 뼈를 묻어 파트너 트랙으로 직진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외국에서 나를 포한한 내 주변 지인들의 봤을 때 이직은 개인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레벨업 기회로 작용했다고 장담한다. 국제법 전문 로펌을 다니는 친구들, MD 쪽 일을 하는 친구들, 금융계에 있는 친구들 중 나름 잘 나가는 자들은 모두 또한 평균 4~5회 이직했고 이들은 연봉, 진급 면에서 앞서 나갔다.  다양한 회사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고 내공을 쌓은 커리어들이 성공적인 사회생활에 유리하다는 결론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직을 하기까지의 나의 준비 자세이다. 현재의 회사에서 장착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손에 익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중요하다. 장기적 시각으로 보명 결국 회사라는 건 내 수많은 성장일기 속 한 챕터일 뿐, 나만의 게임을 얼마나 흥미 있는 도전들로 채워나가느냐의 싸움인 것이다.  대학교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세스 고든 Purple Cow [퍼플 카우]라는 책이 있다. 고든은 이 책에서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지 않도록 안주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라고 한다. 한 회사에서 더 이상 챌린지 받지 못하고 나 자신의 업그레이드가 멈춰버린 느낌이 온다면 실패하더라도 다른 게임에 도전해 보는 마음가짐으로 이직을 결심하는 것이 어떨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게임 플레이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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