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관리 끝판왕, 이쁘고 건강한 게 국력이다. 루틴 잡힌 생활의 중요성
집 떠나 제일 서러울 때가 혼자 아플 때이다. 오랜 야근과 잦은 출장, 계속되는 마감과 미팅들 사이에서 병가나 결근을 피하려면 체력은 기본이다. 고등학교 시절 체력장 특급이 나올 정도로 몸이 튼튼했던 나는 발씨름, 발야구에 소질이 있을만큼 운동을 좋아하고 잘 먹고 건강했다. 타고난 체질이 좋아서였는지 20대 직장시절 내 책상 밑에는 야근 시 언제든 눈을 붙일 수 있는 침낭이 있었고 이것만 있으면 밤을 꼴딱 세어도 천하무적이었다. 운동을 좋아했기에 출근 전엔 집에서 가까운 허드슨강을 따라 가벼운 조깅을, 퇴근 후 수영이나 타바타 (뉴욕에서 유행은 극단의 인터벌 트레이닝)를 즐기며 체력을 기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30대 초반 까지도 'work hard, play hard'를 부르짖으며 야근 후 친구들과 새벽까지 놀고 다음날 헬스에 사우나를 갈 정도로 힘이 남아돌았다. 몸이 좀 허하다 싶으면 아침 해장으로 혼자 맨하튼 32번가에 있는 코리아타운에 가서 삼겹살 한번 구워 먹으면 회복 끝이었다.
하지만 파티는 여기 가지였다. 30대 후반, 런던에 오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회사 내 직위가 올라갈수록 업무량이 줄기는커녕 더 늘어났고 관리해야 할 인원과 프로젝트 규모만큼 스트레스도 많아졌다. 예전처럼 반나절이면 회복되는 몸의 피로는 이틀이 지나도 시원치 않았고 먹는 양에 구애받지 않던 몸무게는 나를 배신하기 시작했다. 회사 야근 시 나오는 야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짜고 기름진 런던 배달 음식에 중독되어 갔으며 운동은커녕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맘뿐이었다. 몸에 고장 신호가 제대로 온건 뉴욕과 런던을 오가는 출장길이었다. 중국 보험계 최고의 거물, 타이캉 보험회사의 베이징 신사옥 프로젝트건으로 런던과 뉴욕을 오가며 한 달에 두세 번,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해야만 했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레드 아이로 뉴욕에 도착, 택시에서부터 바로 시작되는 베이징과의 콘퍼런스 콜에 24시간 깨있으며 커피로 생명을 유지해 가는 날이 반복되었고 지나친 피로 누적에 급노화로 정신조차 피폐해져 갔다. 결국 6시간이 넘는 베이징과의 화상 회의 중 눈이 핑 돌더니 정신을 잃었다. 대륙을 넘나드는 무리한 출장 스케줄에 바이오리듬은 깨져 버렸고 물 마실 시간도 없이 뛰어다닌 결과 탈수에 겹친 스트레스레스로 쓰러진 것이다. 나중에서야 팀원들 사이에서 보험회사 클라이언트답게 YJ는 여기 생명 보험 들고 일한다는 우스갯소리 농담거리가 됐지만 아찔한 경험이었다.
이 날 뼈저리게 느낀 건강, 자기 관리의 중요성은 다시 한번 'health is wealth' [건강한 사람이 진짜 부자다]라는 미국 속담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중 영국의 유명한 가디언지에 실린 '잘 나가는 CEO들의 나만의 건강관리 비결' 기사가 생각났다. 장기적인 건강에 대한 투자와 모니터링이 그 어떤 투자보다 값진 것임을 강조하는 글이었는데 전문직 종사자, 리더십 포지션의 high stress/ high achiever 군의 사람일수록 음식과 운동으로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체력 고갈, 정신 노화 몇 배로 증폭된다는 것이었다. 그 후 나의 런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일단 짜고 기름진 야근음식을 피하고 도시락을 싸 다니자는 당돌한 계획을 세웠다. 주말이면 중국마켓이나 한인마트에 가서 나물이며 마른 어물들로 반찬을 만들었다. 만든 반찬들은 회사 냉장고에 모셔다 놓고 매일 아침밥과 국만 챙겨가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보온병에 싸가는 미역국, 김칫국, 순두부찌개는 내 당골 메뉴였고 런던브리지가 보이는 회사 책상에 앉아 먹는 더덕무침부터 멸치 볶음과 장조림, 어묵조림과 시금치나물은 꿀맛이었다. 아침은 케일, 셀러리, 초록사과, 파슬리, 키위를 갈아 넣은 초록 야채 주스와 쑥떡으로 정했다. 말이 주스이지 이건 풀독이 오를 것 같은 녹즙이었다. 어릴 쩍 엄마가 먹기 싫다는 날 힘(?)으로 제압하며 억지로 먹이셔야 했던 녹즙을 이제 내가 자진해서 챙겨 먹는구나. 나름 씁쓸하지만서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또한 매일 왕복 2시간을 지하철 덩치 깡패의 영국남자들 사이에 끼여 출퇴근하길 거부하고 자전거를 택했다. 처음엔 생소한 런던의 '좌측통행법'에 익숙하지 않아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지만 날이 지날수록 적응해 나갔다. 하이드파트 공원을 가로지르며 50분간 힘껏 페달을 밟는 매일 아침 출근길은 너무도 상쾌했고 늦은 밤 웨스트민스터 교회가 보이는 템스강을 따라 내려오는 퇴근길은 나에게 바쁜 생활 속 시간이 없는 나에게 안성맞춤인 운동이었다. 자전거에 올라 탄 순간 뿜어져 나오는 자유로움은 자전거 통근 군단만의 특권이였다.
이렇게 런던에서의 나만의 자기 관리 건강 루틴이 자리 잡게 되었다. 런던이라는 도시 자체가 질서와 루틴을 중요시하는 곳이라서 일까? 정해진 규칙대로 음식과 운동만 체계를 잡은 것뿐인데 그 후 나의 런던 라이프 콸리티는 훨씬 더 균형이 잡히고 회사 생활 또한 조화롭게 스트레스를 컨트롤할 수 있었다.
인생은 장거리이다. 난 남들에게 보여주기식의 표면적인 삶을 사는 화려해보이는 여자보다 몸과 마음, 내면이 건강한 관리 잘된 여자가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면서 건강도 잃지 않는, 그러려면 끊임없는 자기 관리에 대한 고민과 실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언제 가는 늙고 그 광채를 잃을 날이 오겠지만 젊게 살겠다 마음먹은 한, 삶은 우리에게 그만큼의 가치를 충분히 줄 거라고 본다.
내일은 복싱이나 한번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