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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화 Sep 20. 2022

         안개

인생 길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왔다. 배낭 메고 한라산에 오른다. 어제는 비가 내려 걱정했었다. 습기를 머금은 산은 매우 미끄러웠다. 깎아지른 절벽이 내려다보인다. 눈 아래 병풍바위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주변에는 오래된 구상나무가 껍질이 벗겨진 채 독특한 모양으로 듬성듬성 서 있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는 허리에 구름을 두르고 뽐낸다.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분다. 바람은 구름을 밀면서 달리고 있다. 순식간에 구름은 안개가 되어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눈앞에 있던 새신랑이 보이지 않았다. 발을 떼려는 순간 그가 “움직이지 마”라고 소리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습기처럼 냄새만 뿜어내고 있다. 한 십 분쯤 뒤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개는 밀려가서 저쪽 산허리에 구름이 되어 감긴다.

  또다시 안개를 만난 것은 결혼 후 일 년쯤이었다. 홑몸이 아니다. 늦은 저녁 시간, 낚시터에 남편만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밤길을 달리는 차는 안갯속을 지나고 있다. 점점 가시거리가 좁아졌다. 라이트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여우에게 홀린 것처럼 한자리만을 맴도는 느낌이다. 길을 잃었다. 멈추어 설 수도 없다. 가도 가도 희미한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검은 안개는 뜯어진 커튼처럼 나를 덮고 밤을 새웠다. 서서히 날이 밝아 오면서 안개는 걷혔다. 바로 옆에 강물이 흐르는 좁은 도로를 밤새 뱅뱅 돌고 있었다. 낯선 도로에서의 밤안개는 공포였다.

  삶은 안개처럼 더욱 짙어졌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두 사연이 되어 톡톡 터진다. 그날은 아침 알람 소리마저 이상했다. 작은방 문을 여는 순간 어둠이 아들 목을 조르고 있었다. 입술이 파랗게 변했다. 얼른 안아 올리니 다급한 흔적이 이불 위에 흥건하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지금, 아들은 숨이 곧 멈출 것 같다. 고통에 경직된 눈빛. 차마 울 수도 없는 얼굴로 쳐다만 볼 뿐이었다. 서른 해를 불편한 몸으로 살아온 아들을 보며, 난 항상 어두운 검은 안갯속을 헤매는 두려움으로 산다. 구급대원이 와서 응급조치하며 나의 살점을 떼어갔다. 가슴을 긁어내는 고통이 스며들면서 공포로 온몸이 저리다. 이 어둠 속에 홀로 남지 않기를 기도하며, 대충 옷을 걸치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먼저 실려 간 아들의 두 눈이 초롱초롱하다. 살아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지구촌을 강타한 감염 균의 충격으로 아들의 아픈 몸에 공황장애가 겹쳤다. 밤마다 무서운 꿈으로 가슴을 쥐고 헉헉거린다.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현실에서 아들을 업고 있다. 새카만 밤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다. 나를 잃어버렸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내가 걷는 이 길이 맞는 방향일까.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이 맞아? 망막한 그때, 가슴속에서 작은 반딧불이 날았다. 희미한 빛을 깜박이며 부드럽게 날아간다. 캄캄한 곳을 비추는 저 작은 빛은 내가 나아갈 길을 알려줄 것만 같다.

  많은 사람이 수천 가지 모습과 수만 가지 형상으로 살아간다. 그들 중에 어찌 내 아픔만 아프다고 할 수 있나. 옛말처럼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둘러본다.  타고 다니던 차에 경사로를 설치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아들을 태우고 여행 다닐 예정이다. 서로 힘든 시간을 먼지 털듯 탁탁 털고 행복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는 중이다.

  달빛이 밝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밤을 밝힌다. 어느 틈엔가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가수 현미의 밤안개를 부르고 있다. 구수한 노랫소리가 안개를 보고 싶게 만든다. 더 나이 들어 등산할 힘이 없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한라산에 올라가고 싶다. 신혼여행 갔던 그날처럼 아름다운 운무에 안겨볼 수 있으면 하고 기대해본다. 처음 만났을 때의 멋있는 산허리의 구름을 글로 그려보고 싶다. 지난날들을 글로 표현한다는 생각에 슬프고 어두웠던 밤들이 따뜻하고 밝은 은은한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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