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가을이었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차창 밖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았다. 낙엽이 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낙엽은 위로 올라간다. 나비를 내 눈이 잘못 본 것이다. 살려달라는 듯 나비는 눈앞 유리창에 몸을 기댄다. 날개가 낡고 빛을 잃어버려 무슨 색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그냥 명줄을 놓아버린 낙엽 같았다. 얄밉게 바람이 획 끌고 간다. 나비는 다시 낙엽이 되어 도로를 굴러다닌다. 쯧! 저러다 어느 도로 모퉁이에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지나쳤었다.
일 년도 안 되는 짧은 삶이 저렇게 가는구나. 나비의 덧없는 일생을 함께 슬퍼했던 기억이다. 화려했던 추억은 간 곳 없고 병들어 바람에 치여 휩쓸려 다니는 연약한 곤충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온종일 내 머릿속을 굴러다녔다.
지난겨울 구운몽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현실 세계의 승려 성진이 꿈속에서 양소유라는 인물이 되어 여덟 명의 여성과 인연을 맺고 크게 출세하는 등 부귀공명(富貴功名)을 누리다가 꿈에서 깨어난 뒤 그것이 허망한 것임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인생이 덧없다는 것을 꿈을 통해 깨닫는 이야기이었는데 나는 생각을 달리한다. 감히 중이 꿈에서라도 하고 싶은 것 다 해봤으면 좋은 꿈을 꾼 것이 아닌가. 나도 종종 꿈을 꾸는데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꿈에서는 가능하다. 예를 들면 휠체어를 탄 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나와 함께 자전거를 탄다든가 하는. 감사하게도 꿈에서는 항상 신체 건강한 청년이다. 처음에는 꿈을 꾸고 나면 쓴웃음으로 마쳤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꿈을 꾼다. 생각도 점점 바뀌어 갔다. 이제는 건강한 아들과 함께한 꿈은 나에게 기쁨이다. 함께 할 수 없는 기쁨을 꿈에서나마 누릴 수 있으니 덧없다 할 수 없다. 꿈은 기도이고 기쁨이다. 잊어버리고 사는 것보다 자주 염원(念願)하면 좋은 쪽으로 한 걸음 더 나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온 세상이 깨어나는 계절. 꽃처럼 예쁜 빛깔을 자랑하려는 듯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나비. 작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내 눈앞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날고 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나풀거리다가 어디론가 춤추듯 팔랑팔랑 날아간다. 알 수 없는 신비감에 발길은 나비를 따라간다. 혹시 지난가을, 바람에 밀려 도로를 굴러다니던 그 나비가 환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는 얼굴 옆으로 날아오르며 나비 일생이 허무하고 불쌍한 것이 아니라고 한마디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열심히 날고 안전한 곳에 희망이라는 알을 보관해두고 자러 간 것이라고 덧붙인다.
겨울 동안 나비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하늘에 커다란 하얀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저 푹신한 구름 침대 위에서 아마 나비는 꿈을 꾸었을 듯하다.
지난번에는 노란 날개를 가지고 살았었는데, 이번에는 무슨 색의 날개를 달 수 있으려나. 민들레 씨앗은 어디까지 날아갔을까. 이번에는 주홍색 날개를 달고 민들레꽃을 찾아가야지. 달콤한 꿈은 나비를 춤추게 한다.
가슴이 뛰는 곳에서의 하루하루는 꿈속이든 현실이든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나비의 세계를 알 수 없어 마음대로 해석하듯이 나비가 보는 인간 세계도 그렇고 그럴 것이다. 나풀거리는 나비처럼 나도 춤을 추고 싶다. 천 가지 모습과 만 가지 형상으로 살아갈 우리들. 너무 바쁘게 살아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나를 둘러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느끼고 싶다. 세상은 돌고 나는 잠시 스쳐 지나갈 뿐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다. 그냥 자연의 순환 이치로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것이다. 많이 가지고 있어 근심만 늘고, 욕심부려 모아 봤자 내 것이 아니다. 그냥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이 최선이고 모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