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60대 부부 여행기
*2024.05.31.(금)
밤새 갈매기 소리에 잠을 설쳤다.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는 귓전에서 울리는 듯했는데 수 십 마리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지난밤 잠자리에 들 때까지만 해도 조용했는데 언제부터 갈매기들이 지붕 위에서 울기 시작했을까. 복기해 보니 자정이 지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무렵이 아닐까 싶다. 마치 배의 갑판 위에 누워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갈매기들의 움직임이 지척에서 느껴졌다.
밤새 이어지던 갈매기들의 소란은 희부연 여명이 시작되자 잦아들었다.
해가 있는 동안 바다에 머물다 해가 지면 둥지로 돌아간다는 갈매기. 그렇다면 숙소 지붕 위에 갈매기 둥지가 있다는 얘긴데 혹시나 싶어 숙소를 예약했던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갈매기 소리에 잠을 설쳤다는 글과 지붕 위에 갈매기 둥지가 있는 것 같다는 외국인들의 리뷰가 주르륵 달려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 보았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가 떠올랐다. 호러나 오컬트 영화가 수도 없이 세상에 나왔지만 가장 무서운 영화를 꼽으라면 히치콕의 영화 <새>를 첫 줄에 올린다. 작고 나약한 존재로 알고 있었던 새들이 어느 날 인간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은 어린 내게 강렬한 충격과 공포로 깊게 새겨졌다. 그 후 조류에 대한 두려움은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새는 멀리서 바라볼 때만 좋은 빈약한 친밀감만을 갖게 되었다.
새에 대하여 이러한 서사를 갖고 있음에도 예외인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읽었던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라면 또 다른 얘기다. 어느 여름날 해가 잘 드는 방의 창가에 앉아 읽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나 몰입하고 있었는지 겨우 글씨를 식별할 수 있을 만큼의 태양빛이 남아 있을 때까지 방에 불을 켜는 것도 잊은 채 책 속에 눈을 박고 있었다. 문장을 여러 번 되짚어 읽으며 갈매기 조나단에 매료되어 있었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순간의 공기와 공기의 빛깔까지도. 생애 처음 느껴보는 깊고 뜨거운 감동이었다.
빛 속으로 사라진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이 먼 타국 땅 숙소에서 밤잠을 설치고 일어나 앉아 까마득히 먼 기억을 소환할 줄이야.
피로도 풀 겸 느긋하게 아침을 보내고 숙소를 나섰다. 어시장이 있는 부둣가로 슬슬 걸어가 보기로 했다. 숙소 앞에는 작은 레코드 가게가 있었는데 간판에는 'we know music by heart'라고 쓰여 있었다. 국내에서는 황학시장 같이 오래된 물건을 파는 시장쯤 가야 겨우 볼 수 있는 레코드 가게가 유럽에서는 길을 걷다 보면 심심찮게 보였다.
부두로 내려가 내일 아침 송네피오르로 떠나는 배의 탑승 위치를 확인해 놓고 부둣가에 앉아 건너편의 브뤼겐지구와 베르겐 아이를 눈에 담았다. 한국은 벌써 더위가 찾아왔다는데 이곳은 이제 막 겨울을 벗어난 듯한 날씨라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두툼한 외투가 생각났다.
어시장은 U자 형태의 부두를 따라 서 있었다. 어시장의 빨간색 비닐천막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어시장 가판대에는 다양한 생선과 어패류가 진열되어 있었다. 노르웨이 하면 연어 아닌가. 시장을 둘러보다가 가판대 한 곳에서 회로 먹을 연어와 홍합찜을 주문하고 천막 안에 있는 테이블에 들어가 앉았다. 식전주로 맥주를 주문했는데 한 잔을 채 마시기도 전에 주문한 음식이 서빙되었다.
감기 후유증으로 미각이 돌아오지 않아 별 감흥 없이 연어를 먹고 있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매우 흡족해 보였다. 신선함의 정도가 비교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야말로 입에서 살살 녹는다나. 이 말인즉슨 이쯤으로 만족할 수 없으니 연어와 맥주를 추가하자는 뜻. 추가로 주문을 넣고 투명한 비닐 너머로 보이는 거리를 구경하며 천천히 맥주를 마셨다.
어시장을 나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건물 2층에 자리한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낮술의 취기를 달랬다.
부두를 따라 길게 형성된 브뤼겐지구를 둘러보기로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브뤼겐지구의 목조건물들은 14세기~16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한자동맹시대에 독일 상인들이 살았던 곳이라 했다. 건물 외벽에 덧댄 나무 판넬과 조금씩 다른 색으로 칠한 외벽, 그리고 박공 형태의 지붕이 퍽 인상적이었다. 목재로 지어진 건물들은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 화재가 발생하면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결국 1700년경 큰 화재를 겪은 이후로는 더 이상 이곳에서 불을 피울 수 없게 되었다고 가이드북은 적고 있었다.
좁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브뤼겐지구는 다양한 공예품과 체험공방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북유럽이지만 멕시코 난류의 영향으로 온화한 날씨라 목조건물로도 겨울나기가 가능했던 것일까. 연중 240여 일 비가 내리는 곳이니 목조건물은 이래저래 관리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목재를 사용한 이유가 궁금했다.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경량 패딩을 챙겨 입고 케이블카를 이용해 플뢰엔 산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이며 깊숙이 들어와 있는 바다와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빙하가 만든 피오르의 절경이 시작되는 도시 베르겐. 12세기~13세기에는 노르웨이의 수도였고 한자동맹의 중심이 되어 19세기까지 북유럽 최대의 상업도시로 번영을 누렸던 곳. 한국에서 지구의 반을 돌아 도착한 이곳에서 우리는 지금 도시의 틈을 파고든 북해를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다.
하염없이 도시와 바다를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솔베이지의 노래가 들려 오는 듯했다. 솔베이지의 노래로 잘 알려진 에드바르 그리그의 고향이 바로 이곳 베르겐. 작곡가 이자 연주자였던 그리그는 고향을 떠나 살다가 다시 베르겐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했다. 그가 살던 집 트롤하우겐과 그가 묻혀 있는 곳을 도시 뒤로 이어진 산이 따뜻하게 품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핫도그 푸드트럭 앞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얼마나 맛집이길래 싶어 우리도 순서를 기다려 핫도그를 포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