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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15. 2024

4. 이준, 스피노자 그리고 팔레스타인

'쫄지않고 뚜벅뚜벅'-60대 부부의 세계 여행기


지하 50m의 메트로역인 비젤그라흐트역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설치미술인가 싶은 이색적인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비스듬한 천장에 암스테르담의 지하철노선이 차례로 그려지며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는데 이 지역 출신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이자 배우인 람세스 샤피의 얼굴이라고 한다.  함께 오래 기억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구나 싶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헤이그행 기차에 올랐다. 헤이그까지는 편도 약 2시간. 티켓머신을 이용하면 종이티켓이 나오는데 1장당 1유로가 추가됐다. 환경 보호를 위해 종이티켓 대신 어플 사용을 권장하고 있었다. 국내에서야 어플을 용하지만 물설고 말설은 외국에서는 경우에 따라 어플과 종이티켓을 사용하는데 추가 요금이 붙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네덜란드의 행정수도인 헤이그 센트랄역에 내리니 암스테르담과는 달리 깔끔하고 모던함이 느껴졌다. 헤이그는 1907년 당시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곳으로 고종의 특사로 왔던 세 분 중 이준 열사의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헤이그 센트랄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이준열사 기념관

  기념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신 벨을 눌러달라는 작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벨을 누르자 소리는 났는데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남편과 힘껏 밀고서야 들어설 수 있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념관에는 관리자로 보이는 노부부가 계셨다. 문 얘기를 하니 기념관이 있는 건물은 400년 가까이 된 건물이라 보전건물로 지정돼 있어 여러 불편함이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 1907년 당시 이 건물은 특사 세 분이 묵었던 호텔이었고 이준 열사가 순국하신 장소이기도 하다.          

이준열사 기념관

  일제에 의해 강제 체결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먼 이곳까지 왔으나 일제의 방해와 강대국들의 무관심으로 만국평화회의장의 문턱도 넘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방해와 무관심에도 매일 회의장 앞으로 나가 을사늑약의 무효를 알리길 멈추지 않았던 당시의 간절함과 울분을 헤아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했다.            

  기념관을 나서는데 근처에 스피노자의 무덤이 있는데 알고 있냐고, 시간이 되면 한 번 들러봐도 좋을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헤이그에 온 또 하나의 목적인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들러보기로 했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자전거와 사람들이 뒤엉켜 위험하고 복잡했다.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은 일반 미술관과는 달리 마우리츠 백작의 저택이었던 곳으로 전시된 작품들과 더불어 화려한 실내장식도 함께 볼 수 있었다. 미술관 창밖으로 보이는 호수는 마치 프레임 안의 또 다른 작품을 보는 듯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일 것이다. 이 작품에 마음을 두게 된 것은 수년 전 동명의 영화를 통해서였다. 베르메르로 분한 콜린 퍼스와 작품의 모델이 된 스칼렛 요한슨. 갓 스무 살의 스칼렛 요한슨은 그림 속 모델로 완벽해 보였다.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존재하고 기다려 온 사람처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베르메르


  베르메르의 작품에 마음이 닿는 이유는 화가의 시선에 있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베르메르의 시선과 마음이 가만히 느껴졌다. 어릴 적 바닷가에서 모래 장난을 하다가 파도에 깎인 마음에 쏙 드는 예쁜 조개껍데기를 발견했을 때 반짝하고 마음에 불이 들어오던 작고 따스한 느낌. 일상이 쌓여 삶이 되는 것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이 있는 그의 작품이 좋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고 당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음에도 11명의 자녀를 두었던 베르메르는 곤궁한 형편과 가장으로서의 무게로 쉽지 않은 삶을 이어 갔으리라 짐작된다. 생활을 위해 다른 직업도 갖고 있었던 베르메르는 36점의 작품만 남기고 43년의 생을 마감했다.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렘브란트
<노인이 노래할때 담배를 피는 젊은이들> 얀 스테인

  미술관에는 렘브란트의 작품을 비롯해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풍속화가인 얀 스테인과 자연을 주로 담은 파울루스 포테르의 작품들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누적되는 피로 없이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적당한 작품 수의 전시가 흡족했다.     


  미술관 인근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으며 듀벨맥주를 주문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한 번씩 현타가 오곤 하는데 이때도 내가 지금 어디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건가 싶어 픽 웃음이 났다. 책으로만 만났던 헤이그 아니던가.        


  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피노자의 무덤을 찾았다. 그는 신교회의 한쪽 뜰에 누워 있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로 잘 알려진 스피노자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신을 모독했다는 죄로 파문당해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파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다 간 스피노자에게 술 한 잔을 따르고 싶었다.     

신교회 뜰에 있는 스피노자의 무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센트랄역 방향으로 걷는데 인근 라이덴대학교 앞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깃발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멈추라는 시위로 보였다. 이준 열사와 스피노자, 그리고 팔레스타인이라.. 이 묘한 교집합에 발걸음을 멈추고 시위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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