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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Dec 30. 2023

피천득 선생

마음 속 글쓰기 스승

 요즘 매일 한 편씩 글을 쓰는 것이 목표다. 내킬 때만 쓰던 글을 매일 쓰려다 보니 힘든 점이 많다.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도 매일 고민이 되고, 주제를 정한 뒤에도 글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한참을 고민한다. 글쓰기도 근육이 필요하다는데, 아직 나는 뼈 밖에 없는 상태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한글 2018’의 하얀 바탕에 검은색 커서가 깜빡거린다.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채 한참을 화면만 바라본다.  



 뭐라도 써보려고 몇 문장을 적었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지우기를 반복한다. 하루키는 매일 ‘오늘은 무엇을 써볼까?’ 생각을 할 때 정말로 행복하다는데 아직 나는 갈 길이 멀었나보다. 도무지 글이 더 나아가지를 않자. 글쟁이가 내 적성이 아닌가... 



잠시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책꽂이에서 제목들을 쓱 한 번 훑고 한 권을 꺼냈다. 피천득 작가의 수필집 ‘인연’이었다. 


 

책을 펴니 ‘수필’이라는 제목의 글이 가장 먼저 나왔다. 나도 따지고 보면 수필을 쓰고 있는 것이고, 수필을 쓰다가 이 책을 집어 들었기에, 어쩌면 이 글이 운명처럼 나에게 도움이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피천득 선생은 수필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내가 그동안 쓴 글은 수필이 아니었구나….’ 하는 좌절감과 '한국어가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하는 탄식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문장의 향연에 빠져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피천득 작가가 ‘엄마’에 관해 쓴 글에서는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서 자라나지 못한 때문이다.’
‘나는 엄마 같은 애인이 갖고 싶었다.
엄마 같은 아내를 얻고 싶었다.
이제와서는 서영이가 아빠의 엄마 같은 여성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간절한 희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매일 글을 쓰면, 나도 언젠가는 저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도무지 자신이 없다. 백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아름다운 글을 쓰지는 못할 것 같다. 피천득 선생이 아직 살아계신다면 그에게 찾아가서 비법이라도 묻고 싶지만, 그럴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피천득 선생은 이런 나를 위해 글쓰기 비법 한 가지를 전수해주셨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



받는 것보다 선뜻 내어주는 것을 진정한 ‘멋’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모든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늘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며 인격의 도야를 늦추지 않는 사람, 작고 여린 것을 사랑하는 사람, 우리말과 우리글을 아름답게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 피천득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다. 선생의 글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까닭은 단순한 문장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그의 글과 삶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문장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글이 좋은 글인가? 신경숙 작가의 글은 분명 아름답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한때 눈물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이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 신경숙 작가의 글은 나에게 어떤 울림도 주지 않는다. 심지어 짜증이 나기도 한다. 좋은 글은 단순히 좋은 문장의 나열이 아니다.



좋은 글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 좋은 삶을 살면 어떤 글을 써도 좋은 글이 된다. 매일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까 고민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일은 어떤 좋은 일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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