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둘기 Dec 28. 2023

써보려고 합니다.

언젠가 내 책을 

대학 동기 중 나보다 13살 많은 형이 있다. 그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서른이 넘어 교육대학교에 왔다. 그는 나와 같은 지역에 사는 유일한 남자 동기이자, 나의 술 친구이다. 언제나 처음에는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하다가, 술이 조금 취하면 우리의 대화 주제는 문학이 된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 괜찮은 작품을 공유하기도 하고, 방구석 전문가가 되어 여러 소설에 날이 선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 비판은 결국 도스도프옙스키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진다. 주위에 그런 벗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대학교 때, 그가 쓴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대학교 공모전에 당선된 소설이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상금 때문에 참가를 했다고 말했지만, 나는 속으로 많이 놀랐고 부러웠다. 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완성도가 높았다. 그는 오직 상금을 목적으로 상을 받을 수 있을만한 글을 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가 소설을 시작하고 끝마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였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후, 그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평소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내가 그에게 지금은 소설을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굉장히 뜬금없어했다. 그가 쓴 소설을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란 듯했다. 그는 지금은 소설을 쓸 여유가 없다고 했고, 기회가 되면 나를 생각해서라도 다시 한번 써보겠다고 했다. 그리곤 되려 내게 물었다.



“근데 네가 직접 글을 써보는 것은 어때?”

“저는 소설은 써본 적도 없고, 이야기를 만드는 데는 재능이 없어요.”

“그럼 소설 말고, 에세이나 비평을 꾸준히 써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일단 형이나 얼른 소설 먼저 써봐요.”



그렇게 얼버무리고, 우리는 다시 문학 평론가가 되어 기성 문단에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그리고 우리가 기성 문단을 뒤엎자는 다짐을 하며 헤어졌다. 집에 와서 혼자 누웠을 때, 나도 한 번 글을 써보라는 그의 말이 가슴 깊이 남았다. 



그는 신춘문예에 도전한다며 자신이 쓴 소설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리곤 어색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알려달라 했다. 나는 꼼꼼하게 읽으며,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문장이 어색한 곳을 찾았다. 그리곤 그와 전화로 소설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나누었다. 소설의 인물 하나하나를 이렇게 깊이 있게 이해한 적은 처음이었다. 물론 내가 쓴 소설은 아니지만, 마치 내 소설 같았다. 그는 두 작품을 몇몇 신문사에 출품했다. 하지만 당선이 되면 내게 아이패드를 사준다는 호기로운 약속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낙선이 그의 자존심을 꽤나 상하게 한 듯 보였다. 첫 도전에 수상을 바랐냐며 나는 그에게 비난을 퍼부었지만, 속으로는 그의 도전 자체가 부러웠다. 



이제 나도 한 번 도전해보려고 한다. 세상에는 소설보다 소설 아닌 글이 더 많다. 주제도 널려 있고, 글을 쓰는데 자격증이 필요하지도 않다.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을 보여줄 수 있고, 볼품없는 내 글에 하트를 눌러주는 감사한 분들도 있다. 또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책을 출판할 수 있는 세상이니 지치지 말고 쓰면 된다.



수학을 공부할 때 적분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길이가 없는 점을 무수히 많이 연결하면 선이 된다. 넓이가 없는 선은 무수히 많이 나열하면 직사각형이 된다. 부피가 없는 직사각형을 무한히 쌓아 올리면 부피를 가진 입체도형이 된다. 매일 키보드 앞에서 머리를 싸매며 쓰는 A4 한 장 분량의 글도 무수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합쳐지면 책이 될 것이다. 내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오직 수학을 믿고 매일 매일 써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수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만 정직하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If I die tomorrow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