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둘기 Dec 27. 2023

If I die tomorrow

십 년 전의 기록을 발견하다

요즘 나는 빈지노가 좋아졌어. 작년에 대부분 대학 축제에 왔던 빈지노였지만, 나는 관심조차 없었는데 말이야. 심지어 빈지노 노래 한 곡도 제대로 알지 못했지. 재지팩트 노래는 몇 번 들었어도 빈지노가 재지팩트 멤버인지도 몰랐어. 그런데 갑자기 빈지노에 빠져버렸어. 빈지노 콘서트를 뒤적거리게 되고 빈지노의 모든 노래들을 한곡 한곡 되풀이해 듣고 있어. 그러던 중 ‘If I die tomorrow’를 들었지.

 

요즘 노래 듣는 시간 중 절반 이상은 저 노래를 듣는 것 같아. 빈지노와 가장 잘 어울리는 비트, 빈지노의 자전적인 가사, 죽음이라는 신선한 소재. 모두 마음에 들었어. 특히 젊은 예술가 빈지노의 삶을 알게 된 후 더 빈지노에 빠져들게 되었지.

 

그러던 중 나도 생각에 빠졌어. If I die tomorrow,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담배를 한 대 피우지 않고는 안 될 것만 같아. 담배에 불을 붙였어. 담배는 거의 모두 타들어가고 있는데 그때까지 멍할 뿐이었어. 담뱃불을 끄고 꽁초는 친절하게 쓰레기통에 버렸어. 천천히 생각을 하니 이제 점점 죽음이 실감 나기 시작해.

 

내가 내일 죽는다면 과연 슬퍼할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 나를 위해 흘려줄 눈물이 아직 마르지 않았을까. 천천히 생각을 해봤어. 다행히 생각나는 사람들이 몇 명 있군. 나를 가장 자랑스러워하시고 믿어주신 부모님. 빈지노는 자식의 죽음이 부모님께는 도둑 같을 거라고 했어. 하지만 분명 우리 부모님은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질 거야. 또 누가 있을까. 서로 무심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정말 아껴주는 친구들, 적응하기 힘들었던 학교생활을 서로 격려하며 버텨 온 대학 동기들, 짧은 만남에도 나를 기억해줄 많은 사람들. 너무 많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군.

 

가끔 이런 생각을 해. 죽기 직전 ‘자신의 수염은 반역죄를 지은 적이 없다’며 ‘목은 쳐도 수염은 자르지 말라’는 병맛 개그를 날려주신 토머스 모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도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죄 많은 백성들을 구원하려했던 예수, 자신을 죽이려고 작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죽음을 찬양하며 당당함을 잃지 않은 소크라테스. 그들은 과연 자신의 죽음을 앞둔 순간에 정말로 두렵지 않았을까. 죽기 직전 ‘한번만 살려 주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 않았을까. 

 

만약 저승사자가 나에게 찾아오면, 어떻게 할까? 우선 암바를 걸려고 시도할거야. 내가 이 순간을 위해 하루에 10번씩 암바 연습을 했던가. 하지만 쉽지 않아보여. 설령 완벽하게 암바를 건다해도 저승사자가 아파할지 궁금하군. 이것도 정말 이상적인 이야기지. 아마 99.9% 얻어터지겠지.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겠지. 인정없는 저승사자는 가차 없이 나를 염라대왕에게 데려갈거야. 무서운 염라대왕 앞에서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겠지. 그런데 그때 염라대왕은 울고 있는 나를 꼭 끌어안고서 한마디를 던져. 

“후회 없이 살았느냐?”





나는 흐느끼며 대답해. 

“저는 후회되는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대로는 못 죽겠습니다. 정말 죽는다면 귀신이 되어 이승을 떠다닐 것입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웃으며 말할 거야. 

“너는 너무 아름다우니 다시 한 번 살아보라. 아직 저승에서 너가 할 일이 없구나.”

 

그렇게 나는 다시 그토록 바라던 이승으로 돌아와. 참 감사한 일이지. 운좋게 다시 내려온 이승.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새로운 삶에서는 이 한 몸 어디에 바쳐야 할 것인가?

 

첫 번째로 잠깐 동안의 억울함과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실의 목소리를 내는데 인생을 바칠 거야. 매일 매일 반성하며 목소리를 가다듬는다면 김동률같은 멋진 목소리가 아닐지라도, 김종서같은 높은 목소리가 아닐지라도 당당하고 힘 있는 나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야.

 

두 번째로 가진 것이 적어도 나눠주는 기쁨을 맛보며 행복해 할 줄 아는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겠어. “나물밥 먹고 물마시고 팔로 베개 삼아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나니 옳지 못한 부귀는 한낱 뜬구름과 같다.”고 하신 공자님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마음에 새겨야겠군.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이승은 정말 즐거웠노라고 말할 수 있도록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 거야. 마흔이 다 되는 나이에도 정신 못 차리고 노래하는 크라잉넛처럼 변함없이 철들지 않고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내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데 청춘을 바쳤다면 죽기 전에 내가 참 자랑스러울 것만 같아. 

 

아직 파릇파릇한 새싹인 20대에 내가 이런 고민을 하다니 이건 다 빈지노 때문이야. 공자님이 이 글을 읽으시면 내 뒤통수를 때리면서 “삶도 모르는 놈이 죽음을 논하느냐!” 하시겠군. 그렇지 나는 내 앞길도 모르는 철부지야. 당장 내일까지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지. 하지만 죽음이 있기에 삶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죽음이 있기에 나의 20대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만약 내가 영생한다면 지금 당장 꼭 해야 할 일들이 있을까? 어차피 평생 사는데 말이야. 또 청춘이라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죽음이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것 아닐까? 

 

너무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군. 역시 이런 깊은 생각은 나에게 무리야. 20대에 죽음을 생각하다니.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지.

“졸지 마라. 죽으면 평생 잔다.”

잠이나 자야겠어.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