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원해도 할 수 없다면 나는 무슨 선택을 해야
다시 돌아와, 중학교 3학년 말. 엄마에게 입시 미술 얘기를 꺼낸 뒤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빠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미술 선생님과의 입시상담은 계속됐다.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말씀을 드려보자고 조언하셨다. 선생님의 응원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부모님께 내 꿈에 대한 고집을 잘 피워본 적이 없었기에.
그때는 부모님께서 작은 공부방을 하고 있을 때였던지라 방과 후는 그곳으로 가 공부를 하곤 했다. 학생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야심한 저녁, 우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일상 얘기를 했다. 내가 안쪽 방에 있을 때, 부모님은 바깥쪽 거실에 계셨다. 언제 말할까, 속만 졸이던 그때, 엄마는 아빠에게 내가 입시 미술을 하고 싶어 한다며 말을 꺼냈다. 아빠는 놀란 표정으로 몇 번이고 되묻더니 안쪽 방문 사이로 얼굴을 비추며 내게 이쪽으로 한번 와보라 말했다. 쭈뼛대며 아빠가 앉은 책상으로 가 맞은 편에 앉았다.
“너 진짜 입시 미술을 하고 싶어?”
“응.”
아빠는 내 대답을 듣고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그땐 안 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하고 싶다고 그래?”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온화했던 아빠 앞에서 그렇게 펑펑 울어본 건 간만이었다. 그제야 아빠의 반응이 달갑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빠가 이렇게까지 두려웠던 적이 있었나. 나도 멈출 수 없는 울음에 눈가가 빨개질 때까지 소매 끝으로 닦기를 반복했다.
“왜 울어? 아니, 왜 우는 거야.”
아빠는 휴지를 돌돌 말아 주며 나에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당연하다. 나는 그날의 일을 가족에게 말한 적 없다. 그게 얼마나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버렸는지 알리는 건 그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근데 이게 뭐야. 기껏 숨겨왔는데 아무런 소용도 없게 돼버렸잖아. 나는 그야말로 ‘이제 와서’ 하고 싶다고 재기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숨긴 마음을 토로해야만 했다.
나는 그때의 일을 말했다. 나는 미술 영재 시험이 트라우마가 됐다고. 내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그 시험을 보고 나서 그 수많은 얘들을 제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엄마 아빠가 교문 앞에서 나를 맞이하는데 그게 너무 쪽팔렸다고. 그리고 입시 미술 돈 많이 들어가는 거 알고 있는데, 그림도 못 그리는 내가 그런 돈을 지원받는다는 게 미안했다고. 아빠는 점점 내 말을 들으면서도 답답한 기색을 보였다.
“그럼, 왜 지금 다시 하고 싶은 거야?”
“시각디자인 쪽으로 가고 싶어서.”
“지금 우리 못 해줘. 알잖아. 아빠가 학원 해봐서 알잖아. 아는 미술원장한테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그거 보통이 아니야. 왜 그때 안 하고 지금 하겠다고 하는 거야.”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결국 안 되는 거구나. 눈이 부어가는 걸 느끼면서 아빠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아빠가 한마디했다.
“그럼 내가 그 원장한테 빌어볼게. 대신 네가 고1 3월 모의고사 영어 점수를 올리는 조건으로. 네가 점수를 그 정도까지 올리면 아빠가 원장한테 한번 부탁해서 다녀볼 수라도 있는지 빌어볼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안 되겠다 싶었다. 그때의 나는 모든 과목이 대체로 진도가 뒤처져 있어 개념이 제대로 잘 잡히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아빠가 제안한 점수는 단기간에 도달하기 힘든 점수였다. 게다가 점수를 만들어 둔다 해도 자존심 센 우리 아빠가 누군가에게 무리한 부탁을 한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부탁은 들어주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뻔히 어떻게 될지 보이는 상황에서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다. 입시 미술은 절대 안 되겠구나. 나는 실기 전형으로는 절대 못 가는구나. 어쩌면 나는 시각디자인과를 못 갈 수도 있겠구나. 그때 놓친 기회를 지금에서야 붙잡는 건 안 되는 일이었구나.
언제나처럼 미술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나를 보시고는 같은 미소를 지어주셨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안쪽 공간으로 데려가 차를 한 잔 내어주시고 상담을 시작했다.
“그래서 말씀드려봤어?”
“네, 근데 안 될 것 같아요. 모의고사 성적 올리면 아는 원장님께 부탁이라도 해보시겠다는데 솔직히 성적 올릴 자신이 없어요. 부탁한대도 받아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입시 미술 못할 것 같아요.”
글썽거리는 눈물이 내 뺨 위로 흘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창문 사이로 햇빛이 마침 들어왔는데, 선생님의 눈동자 색깔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강렬했다. 선생님은 내게 하나의 제안을 하셨다.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못 가는 건 아니야. 비실기 전형이 있어. 지금 우리 학교 도서관에 ‘미대입시’라는 잡지가 하나 있거든? 가서 하나씩 다 뒤져봐. 비실기 전형으로 어느 학교에 몇 명을 뽑는지. 그리고 선생님이랑 다시 얘길 해보자.”
비실기 전형이라니. 입시 미술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단 한 줄기의 희망과 같았다. 그 상담이 끝나고 나서 나는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월간 미대입시 잡지를 몇 권이나 쌓아놓고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지금의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기만 했다. 모집 인원이 바늘구멍에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높은 성적을 유지해야 가능성이 있던 거였다. 그렇구나. 나는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지 않았던 거였다. 지금 다니는 중등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고등 전문 영어학원으로 옮기는 것도 힘든 형편에 내가 어떻게 전 과목을 고득점으로 지낼 수 있을까.
나는 또다시 꿈을 잃어버렸다. 열정적으로 가던 부모님의 공부방마저 점차 가지 않는 날이 늘어갔다. 나는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막연한 불안감에 떨다가 입학하고야 말았다. 내 고집이라곤 모두 헤져버려서 그 무렵의 나는 내가 무얼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부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