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
풀잎이 무성하게 돋아난 여름, 수능이 끝나고 봄까지 무아지경으로 만났던 친구들은 점차 각자 할 일에 몰두했다. 친구들을 만나며 놀아도 무언의 공허함에 휩싸였던 나는 혼자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뭘 하고 싶은가. 계속해서 물은 질문이지만 이렇다 할 행동 방안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
정확히 말하면 디자인 툴이 아니라 디자인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이론과 철학을 배우고 싶었던 거다. 그런 걸 알려주는 곳은 학원이 아닌 학교였다. 하지만 이미 알아봤던 것처럼 서울에 있는 학교로 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입시 미술이 필요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 내가 번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나이니까 더 이상 꿈에 대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 불현듯 생각난 것이 있었다.
‘유럽 쪽 국가는 예술 계통 학교가 거의 무료라고 했었는데. 그러면 생활비랑 비행기표 값만 벌어두면 어느 정도 해볼 만한 거 아니야?’
찾아보니 독일과 프랑스가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성적이 안 좋은 나는 독일의 학교에는 서류로 지원할 수 없는 성적이 나올 게 뻔했다. 나는 프랑스를 목표로 하고 초기 비용이 어느 정도 들어가는지 찾기 시작했다. 대강 천만 원. 월급으로 백만 원조차 받아본 적 없지만 천만 원이라면 금방 모으지 않을까. 모아볼 만한 금액이 아닌가. 나는 그 생각에 프랑스 유학을 목표로 돈을 벌기로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 경력이 단기밖에 없던지라 장기 아르바이트로 지원을 넣어도 뽑아주는 곳이 없었다. 굴하지 않고 여러 곳을 지원하다 집 근처 카페 마감 아르바이트 자리에 붙었다. 한 달간 사장님과의 인수인계 이후 혼자 근무하게 됐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감이 훨씬 오래 걸렸다. 내 손이 느린 것도 한몫했다. 그런데 둘이 해서 제시간에 끝내던 일을 혼자 제시간에 어떻게 끝내겠나. 나는 매일 연장하면서 사장님 눈치를 봤다.
혼자 일하는 5시간이 너무 어렵고 벅찼다. 한 번에 주문이 들어올 때면 패닉 상태로 메뉴를 잘못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40분이나 기다리게 해 손님께 죄송하다고 연신 말씀을 드릴 정도였다. 사장님은 CCTV로 나를 보면서 내가 홀 주문을 받는 것이 벅찰 것 같으면 배달 주문을 실시간으로 막아주셨다. 그런데 그런 게 너무 민폐라 생각이 들었다. 그 죄책감에 잘못 만든 음료값만큼 사장님의 계좌로 송금하기도 했다. 사장님은 다시 돌려주시곤 했지만, 나는 그것조차 너무 죄송스러웠다.
사장님 앞에서 우는 날이 많아졌고, 토닥여주시는 등이 버거운 날이 늘어갔다. 나는 매일 일을 나가면서 울곤 했다. 오늘은 어떤 실수를 하고, 사장님께 얼마나 죄송해야 할까. 육아를 동반하는 사장님께서 마음 놓고 내게 일을 맡기셨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하지만 그게 따라주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사소한 주문 실수부터 유리잔을 종종 깨 먹기도 했다. 주변 직원분들과도 가까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일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을 잘 쉴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울며 지내는 바람에 그동안 내가 제일 크게 의지한 건 무료 상담 채팅 시스템이었다.
하루는 큰 실수를 했다. 원두가 바뀔 때마다 로스팅 기곗값 세팅을 바꾼 후 커피를 내줘야 하는데 주문이 밀린 나머지 깜빡하고 그러지 못했던 거다. 그러자 CCTV로 보던 사장님께서는 그 사실을 알고 전화를 하셨다.
“지금 원두 새로 뜯고 기계 세팅 다시 안 했어요?”
“아, 네. 죄송합니다. 깜빡했어요.”
“지금 무슨 커피를 손님들한테 내어준 거예요!”
“죄송합니”
사장님의 전화가 뚝 끊어지고서 몇 분 후에 사장님이 오셨다. 사장님은 말없이 세팅값을 맞히셨다. 그 후에 사장님은 주문을 도와주신 후 집으로 돌아가셨다. 남은 마감을 다 처리하는 데에 처음으로 1시간 동안 연장하게 됐다. 온 그릇을 다 꺼내 씻었을 정도였다. 사장님께서는 그렇게 다 꺼내 씻더라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을 거라 말씀하시며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았다. 그야 제시간에 마감을 끝낸 적이 손에 꼽았으니 말이다.
다음날, 나는 사장님께 퇴사 통보를 했다. 한 달만 일하고 그만두겠다는 말 뒤로 사장님은 그 전보다 훨씬 사무적으로 나를 대하셨다. 나는 그 이후로 백만 원 이상의 월급을 두 번 받은 채로 끝이 나버렸다. 그러니까 아르바이트라고는 단기밖에 할 수 없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천만 원을 모으겠다는 호기로운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갇혀 아예 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나는 그 모든 일의 원인을 모두 내 탓으로 돌리고 자기비난을 일삼았다. 내가 아직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너무 일찍 맡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그땐 하지 못했다.
그렇게 단기로 지내는 날이 늘어갔다. 프랑스 유학을 포기하려고 할 때쯤이었다. 그러기 싫었다. 어떻게 대면한 꿈인데 내가 포기를 할까. 하지만 유학원에 찾아가 상담을 받아볼 결심도 서질 않았다. 결국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할 테니까. 이 마음을 우리 가족 중 단 한 명이라도 지지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나는 언니에게 연락했다.
‘언니, 우리 만나서 술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