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밖의 발견
쉬지 않고 전력질주를 하고 나니 땀이 비 오듯 한다.
쉴 곳이 마땅치 않아, 구석진 펜스에 몸을 기댔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땀을 닦는데,
보라머리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이쪽으로 오라 손짓을 했지만, 나는 손사래를 쳤다.
어차피 나의 목적은 저기에 없고,
돈 아까우니까 조금만 더 타고 갈 생각이다.
또 다시 코스를 돌던 중.
“어!”
“꺄!”
눈앞에서 펜스에 부딪히려는 여학생을 발견.
충돌 전, 겨우 잡아 세울 수 있었다.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빠.”
“아? 네~”
나는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언제 봤다고 오빠야?’
별일이 다 있다.
시계를 보니, 입장 후 1시간이 지났다.
그냥 조용히 빠져도 되나?
아니야, 인사 정도는 하고 가야지.
보라머리 친구에게 다가갔다.
“나 먼저 갈게~”
“뭐? 왜?”
“바쁘그등요. 어디 갈데도 있고.”
“아니 그래도 벌써 가냐 아쉽고로~”
“어차피 내일 볼거면서. 나 간다 잼나게 놀아.”
“야 그럼 인사라도 하고 가야지. 잠깐만, 애들아~”
“아 됐어. 간다~”
짝이 맞은 친구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고,
무척이나 바빠 보인다.
갈 사람은 빨리 가야지.
시내에서 편지지를 사고,서점에서 책을 읽었다.
집에 도착하니 누나는 TV를 보느라
나에겐 관심이 없다.
방문을 잠그고, 연습장과 편지지를 꺼냈다.
연습장에 엘리샤와의 통화를 떠올리며,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적었다.
“내 목소리가 좀 많이 걸걸하지 않았어?
나이 들어 보이는 목소리라고 하는 사람도 많던데.”
“내가 공부를 잘하긴 해도 약간 똘아이 같기도해.
웃기지? 크크.”
“누나가 많아서 좋은 점도 있는데, 가끔 짜증날 때가 많아.
특히 막내누나랑은 자주 싸우게 되더라고.
그래도 둘째누나가 젤 좋아. 아 그거 모르지?
나 둘째누나랑 완전 판박이다? 완전 똑같이 생겼어.”
“그 영화에서 살인범은 내 생각에도 안 죽은거 같던데?
혹시 몰라서 찾아봤는데, 다들 안죽은거라고 하더라고.
근데, 감독은 그냥 노코멘트 했대.”
통화로는 못했던 말들로 가득 찬 연습장.
뿌듯한 마음도 잠시.
고개를 숙였다.
머리를 긁어봤자 나오는건 비듬뿐.
이제라도 하고 싶은 말을 적었으니 됐지 뭐.
편지를 다 쓰고, 다이어리를 꺼냈다.
‘25일’란에 하트 하나를 그렸다.
다이어리를 닫으려다,
하트 두 개를 더 그려 넣었다.
그제서야 25일이 꽉 차 보였다.
다음 날.
조회가 끝나자마자 보라머리 친구가 뒤를 돌아 앉았다.
“야 너 어제 왜 그렇게 일찍 감?”
“그냥. 글고 내가 빠지니까 4대4 됐잖아?”
“아니거등. 형님이 그런 실수를 할리가 있냐?
5대5였는데 한 명이 늦게 와서.”
“아 몰라, 암튼. 끝나고 또 어디갔었냐?”
“앞에 놀이터. 시간도 애매하고 갈데도 없드라.”
“누구 성공한 애들은 좀 있고?”
“여친 말로는 두 명? 맘에 들어한다던데?”
그 와중에도 커플이?
참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종례를 기다리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집으로 갔다가 학원을 가?’
‘오늘 쯤 편지가 올건데?’
아, 어쩌지?
고민 하고 있는 내게 짝꿍이 해결책을 말해주었다.
“그냥 먼저 오는거 타셈.”
짝꿍, 멋있어 보인다.
벌써 이사 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오르막길은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니 다리가 무겁다.
우편함에는 오늘도 꽃이 피었다.
노란 국화꽃이.
역시 엘리샤다.
“이 편지를 받을 때 쯤에는, 우리가 이미 통화를 하고 난 뒤겠지?”
‘어. 맞아. 우리 어제 통화했어.’
“네 목소리가 궁금해서 먼저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만, 엄청 떨려.”
‘나는 여자랑 통화한게 처음이야. 내가 더 떨렸을걸?’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
‘!?’
저건 하트?
여자에게 처음으로 받아본 하트.
편지를 들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