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책책 지원신청서
사서 고생하는 사람
“어? 이 거리를 걷는다고?” 작년 한 해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군산에서 서울을 오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았습니다. 대학원에서 배운다는 사실도 저를 기쁘게 했지만,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용산역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시간! 용산역에 내려 학교까지 걸으면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립니다. 체력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렇게 걸었습니다. 그때마다 친구들이 했던 이야기 “어? 이 거리를 걷는다고?”. 중간엔 ‘괜히 걷기 시작했나?’ 싶다가도 골목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꽃, 길고양이, 건물 사이로 보이는 노을, 나무 사이로 보이는 낮달 등이 보이면 걷기 잘했다 싶습니다.
1년에 분기 1회는 오래 걷는 여행을 기획합니다. 5일 연휴가 있던 추석에는 10만 보 걷기 도전도 해보고, 여행 중에는 산, 동네길, 둘레길, 물가 길을 꼭 걷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부럽지 않은 허벅지 근육이 생겼습니다. 오래 즐겁게 걸으려 운동도 꾸준히 합니다. 빨리 걷거나 달리는 것은 어렵지만 꾸준히 걷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 남들은 사서 고생한다고 하지만, 이 정도 고생을 사서 제가 걸으면서 만나는 보물 같은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면 기꺼이 고생을 사겠습니다.
저녁이면 생기는 또 다른 힘
저는 자아가 두 개입니다. 사회복지사 혜지, 일상을 즐기는 혜지. 일단 가슴이 뛰고 재미있으면 해냅니다. 공부하고 고민하며 당사자를 위한 최선의 일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복지관에서 일하고 거의 파김치가 되어서 차에 올라탑니다. 퇴근 후 차에 올라타면 정체 모를 에너지가 다시 새로 생겨납니다.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 눈이 똥그래집니다. 그리고는 저녁 일정을 참여합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싶어서 입사와 함께 시작한 책모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하는 글쓰기 모임, 넉넉한 체력에서 나오는 여유를 갖고 싶어서 하는 태권도,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기에 놓칠 수 없는 가족·친구들과의 시간. 다행히 시간과 체력이 허락해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 시간을 누려 얻은 것을 가지고 두 개 자아의 균형을 맞추며 잘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힘들 때 웃는 사람이 일류
힘들면 웃습니다. 너털웃음이든 허탈한 웃음이든 일단 웃습니다. 웃다 보면 기분이 환기되고 해결 방법이 생각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합니다. 그 일이 잘 지나가면 그 일은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힘든 일이 ‘도대체 얼마나 잘 되려고, 기가 막힌 글 소재 하나 더 얻었다!’라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태생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해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도, 제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슬픈 이야기, 즐거운 이야기, 따뜻한 이야기, 의미 있는 이야기, 모험한 이야기, 성장한 이야기 등을 들으며 오만가지 감정도 느낍니다. 이런 생각 흐름은 인생이 절망적으로 느껴질 때 숨 쉴 틈을 만들어주고 그 틈으로 회복의 실마리가 들어오게 합니다.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고 하면 아무 곳에나 잘 앉습니다. 잘 눕기도 합니다. 눕거나 앉으면 그 공간이 저만의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잘 누립니다. 시골에서 자란 덕분인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다가 힘들면 바닥에 앉기도 하고, 비료 포대 위에 눕기도 합니다. 일하다가 길거리에서 새참도 먹습니다. 농사일은 힘들어서 싫지만 이런 풍경은 참 좋습니다. 마치 소풍 온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 여행을 갈 때도 작은 돗자리는 꼭 챙깁니다. 언제 어디서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고 싶은 풍경’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지도
“물어 물어 찾아갔당께요. 할무니가 사람이 지도람시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물응께요. 다 잘 가르쳐주고 이뻐 해주든디요.” 박노해 선생님의 수필 [눈물 꽃 소년]에 나오는 이야기다. 살다 보면 앞길이 꽉 막힌 채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주로 찾는 게 사람입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도구가 넘쳐나는 요즘에도 종이책을 즐겨 찾습니다. 그 종이책에서 얻은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또 그 사람 안에 있는 다양한 생각들로 또 배웁니다. 그리고 종이책과 사람 책에서 얻은 것을 산책하며 묵상하면 내 안에 생각들이 정리됩니다.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이 맑아지고, 지금 해야 할 일이 보이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찾게 됩니다. 그러니 어찌 사람을 안 좋아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지도’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