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시골 <시골교회 달란트 시장>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살고있는 30대 시골사람

by 김혜지

달란트 시장을 아시나요?

교회 달란트 시장은 어린이들이 신앙 활동이나 교회 행사에 참여하며 쌓은 신앙의 경험과 봉사, 교제를 ‘달란트’라는 가상의 화폐로 적립하고, 이를 시장처럼 사용해 소소한 물건이나 간식을 나누는 행사였다. 교회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특히 주일학교를 경험했다면 한 번쯤은 익숙하게 떠올릴 장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마을에 있는 시골교회에서는 아이들 수가 점점 줄어들며 주일학교 달란트 시장도 어느새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교회도 달란트 시장을 하겠습니다. 어린이만 하는 게 아니라, 전 교인이 함께요.”

그날 이후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각자의 자리에서 달란트를 받기 시작했다. 예배에 성실히 참석하고, 봉사에 참여하고, 서로를 돌보는 작은 행동들이 하나둘 달란트로 쌓였다. 처음에는 다들 큰 관심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교인들은 은근히 달란트를 모으는 일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달란트 시장의 날이 다가왔다.


먼저 교회 청년들이 모여 회의를 했고, 업무를 나누었다. 그리고 시장에 내놓을 물건을 준비하기로 했다. 생필품 위주로 담아가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우리 교회는 시골이잖아! 농기구 사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려다 감이 오지 않아 직접 농자재 마트로 가기로 했다.

“아빠, 나 달란트 시장할 때 농기구를 사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해? 종류도 많고 괜찮은 데가 어디야?”

아빠는 또 무슨 일을 꾸미느냐는 표정으로

“함열역 근처에 두 군데가 있다. 둘 다 가봐.”

라고 알려주셨다.


시골에서는 인터넷 검색보다 동네 사람들에게 묻는 것이 훨씬 정확했다. 정말 그랬다.

농자재 마트에 도착해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저희 교회에서 달란트 시장을 하는데요. 거기에 내놓을 물건이 필요해요. 어떤 걸 사가면 좋을까요?”

사장님은 잠시 웃으시더니 “호미? 아니면 고추대 묶는 거?”라고 답하셨다.

농자재 마트에는 정말 별의별 물건이 다 있었다. 고추대 묶는 기계 하나에도 가격이 2만 원대부터 10만 원대까지 다양했다. 가격이 올라갈수록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능이 많아졌고, 마치 발명품을 구경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런 것까지 있나?’ 싶을 정도였다.

가격이 너무 높아 고추대 묶는 기계를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농부님이

“그럼 나 이거 하나 줘!”

라고 말하며 10만 원짜리를 덥석 집어 들었다. 엄청난 플렉스를 그저 구경만 한 채, 우리는 고추 담는 앞치마, 바퀴 달린 작업 의자, 밭에서 쓰는 의자, 모종 심는 기계, 물 주는 호스, 가지 다듬는 가위, 호미와 낫을 차례로 골랐다. 이름을 몰라 “밭에서 앉아서 일할 때 쓰는 거요”, “이거 심을 때 쓰는 거요”라며 쓰임새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름도 모르는 농기구를 잔뜩 사가는 우리 모습이 어쩐지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해가림 모자와 토시 세트까지 챙기고 나니, 정말 시골 교회다운 물품들이 한가득이었다.

드디어 달란트 시장 당일이 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매대에 올라온 물건들을 본 교인들은

“와, 이런 것도 사왔어?”

“진짜 시골 교회 달란트 시장답다!”라며 웃으며 이야기했다. 기획자로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다.

시골 교회 달란트 시장의 또 다른 꽃은 단연 음식이었다. 떡볶이와 어묵, 김밥까지 집사님들이 손수 준비해주셨다. 분명 달란트를 내고 먹는 음식 코너였지만, “어찌 그런 걸 받느냐”며 그냥 모두 나누어 주셨다. 그 앞에서 달란트는 별 의미가 없었다.

대신 교인들이 달란트를 가장 많이 사용한 곳은 ‘물풍선 던지기’ 코너였다. 그곳에는 목사님이 계셨다. 교인들은 달란트를 어디선가 또 모아 와 계속 도전했고, 물풍선은 끊임없이 날아갔다. 목사님께는 미안했지만, 모두가 웃고 있었다.

그날 시장에는 교인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왔다.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고, 구경하다가 웃고 돌아갔다. 누가 얼마를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달란트가 얼마나 남았는지도 아무도 묻지 않았다. 대신 ‘재밌었다’는 말만 여기저기 남았다.


농기구가 인기 상품이 되고,

계산은 흐릿해지고,

규칙은 인심 앞에서 사라지는 곳.

이곳은 아무튼 시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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