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라고 살고있는 30대 여성 일기
나는 이 들판이 없었으면 정말 속 좁은 사람이 됐을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너른 들판이 있다. 한평생 농부로 살며 온 가족을 먹여 살린 아빠가 터를 잡은 곳이다. 아빠가 일군 곳이니 이 너른 들판은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태어날 때부터 거대한 들판을 상속받았다. 등기부등본에는 내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지 않지만, 내 유년의 모든 달리기와 숨바꼭질이 거기서 일어났으니 그건 분명 나의 들판이었다.
어릴 땐 세상 모든 동네가 다 이렇게 탁 트인 줄 알았다. 지평선이 너무 당연해서, 어떤 이들이 이 고요함을 견디지 못해 다이내믹한 도시로 탈출을 꿈꿀 때도 나는 의아했다. 나에게 이 '지루한 풍경'은 권태가 아니라 평안이었다. 시야를 가로막는 빌딩 숲 대신, 아무것도 가로막지 않는 텅 빈 공간이 주는 너그러움이 좋았다. 이 너른 들판이 없었더라면, 아마 내 마음은 지금보다 훨씬 좁고 뾰족해졌을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눈이 좋다. 평생 먼 곳을 바라보며 일해온 근육이 눈에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유전자가 나에게도 오길 바랐지만, 볼 게 너무 많은 세상에 태어난 나는 중학교 때부터 안경을 썼다. 안경알 너머로 들판을 본다. 들판은 계절마다 성실하게 옷을 갈아입는다. 인공적인 조형물이 없으니 자연의 변화는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초록이었다가, 금빛이었다가, 이내 텅 빈 무채색이 되는 과정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단독 공연이다.
도시 친구들이 우리 동네에 오면 "독특한 감성이 있다"며 감탄하곤 한다. 그들에겐 여행의 목적지인 이곳이 우리에겐 치열한 일상의 터전이다. 이웃들은 논 사이 농로에서 조깅을 하고, 장화를 신고 일을 하고, 그 곁에서 돗자리를 펴고 참을 먹는다.
나는 그 모든 풍경 중에서도 내가 이 들판을 가장 잘 누리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지평선을 보고 자란 사람은 마음속에 선 하나를 간직하게 된다. 아무리 복잡한 일이 생겨도 결국 그 평평한 선으로 돌아가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힘. 아빠가 물려준 이 거대한 유산 덕분에, 나는 오늘도 속 좁은 사람이 되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