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분은 나의 외삼촌이다. 일정 부분 즉흥적이고 본능적으로 난 우리 외삼촌을 떠올리게 된 것 의외이긴 하지만 내 어머니 옆에서 우리 엄마를 가장 측근에서 돕고 어머니의 걱정은 외삼촌을 통하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키는 6척이 넘으시고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은 그레고리펙처럼 생긴 시골 촌부 아재라고 이야기하면 될 듯하다. 술을 워낙 좋아하셨고 성격도 좋아서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독차지하셨던 분이다. 그 당시 시골에 경운기도 흔치 않은 시절에 외삼촌은 경운기로 할 수 있는 로터리 치기 밭 갈기 논 갈기 땔감을 이동하는 등 참으로 많은 좋은 일들을 몸소 해주시던 분이다.
삼촌은 우리 집의 모든 일이 우선이셨고 혼자 사는 누나 우리 어머니의 모든 일들을 해주셨고 적지 않은 누나의 논과 밭 어머니의 잡화점 가게 모든 일들을 도맡아서 해주셨다. 그러다 보니 아마도 외숙모와 힘들게 사는 누나 사이에서 집도 담을 같이 쓸 만큼 가까웠으니 외삼촌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셨을 것이다. 거기에 외삼촌네 5 식구와 우리 6 식구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으니 얼마나 많이 힘드셨을지는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내가 식구를 꾸리고 내 자식을 키워보면서 왜 나이가 들고 그때가 되어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일까? 나는 인간의 본능의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믿게 된다.
삼촌은 멀리 동네 초입에 들어오실 때 거의 술에 취해 계셨고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을 내가 어깨동무를 하고 누나들이 뒤에서 밀고 다니며 내려오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노래도 몇 곡 하시고 수양버들이 하늘 거리던 길
해가 뉘엿 뉘엿 지던 그 황혼의 언덕이 생각이 난다. 외삼촌이 흥얼거리시던 그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외삼촌은 말도 별로 없없고 어머니가 힘드셨을 때 항상 어머니 옆에 계셨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그때 알게 되었다. 거의 산 벙어리 같았는데 이 말은 내가 만든 말인데 너무나 큰걸 표현할 때 산이란 너무 크다는 걸 표현하는 접두사로 말 못 하는 벙어리 치고는 너무 크고 묵직해서 우리 외삼촌을 표현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외숙모와 어머니사이에서 외삼촌이 힘들어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외숙모는 너무 새침하셨고 대쪽 같았던 어머니와는 너무도 다른 캐릭터였고 그런 외숙모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그분도 쉽지 않았음을 이제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아마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누나가 혼자 6남매를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힘들었을지 누나 혼자 그 힘든 짐을 지고 가는 모습을 동생모습에서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지는 아마도...
참 그때 외삼촌은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계셨고 할머니 또한 어머니와 판박이 셨으니 외삼촌은 어머니 외할머니 외숙모 사이에서 보통 골머리를 썩지 않으셨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우열과 순위를 강요받으셨을 것이고 우선은 생계 즉 먹고사는 것이 항상 그 우선순위에 있다 보니 그 일순위의 어머니의 곁에서 많은 것들을 거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삶을 거드는 것이랑 누가 더 소중한지에 대한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은 인간이 겪는 가장 난처하고 어려운 시련인데 아마도 외삼촌이 그 시험에 항상 노출되신 것 같다. 우리 외삼촌은 아버지를 대신하였고 어머니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해야 했던 가족의 먹거리와 다른 모든 것들...
그 어려운 시절에 가장 소중함은 다름 아닌 먹거리였던 때, 아마 지금은 이해할 수 없던 하루하루 굶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최선의 가치고 미덕이던 시절에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던 사람들
아마도 나의 외삼촌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새벽부터 해지기 전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바닥까지 태우셨다. 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들을 한 것이다. 그 삶의 가치는 내가 존경해 마지않은 위인보다 나라를 구한 열사의사만큼 의미 있는 행동인 것이다. 왜 나이가 들어야만 이러한 삶의 궤적과 그 발자국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인가?
가족의 구성원과 그 역할을 이해하는 것마저도 이리도 큰데 나는 밖에만 몰두하고 내 안에 있거나 넘 가까이 존재하는 이 위대함을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족이라는 것 그 공동체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 그 엄청난 여정을 한 우리 외삼촌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