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기발행되었던 글을 수정 및 보완하여 재발행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을 위해 종교적 신념을 드러내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 신앙의 시작은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의 자장가는 어머니의 찬송가였고, 어머니의 사랑만큼이나 하나님과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나는 거짓말을 못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누군가 "하나님께 맹세할 수 있어?"라고 말하면,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 신앙의 선택지에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안의 공동체는 나에게 또 다른 학교였고 놀이터였으며, 나의 중심이 되는 사회 중 하나였다.
자라나기 시작하며 내가 가진 신앙에 대해 불편한 물음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랑의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고통과 시련을 주셨을까?"
그 물음의 시작은,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고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한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어머니는 가방에 유서를 품고 다녔고, 우리 집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3 수험생 시절, 어머니의 끙끙거리는 신음 소리 때문에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며 화를 냈던 그 기억은 내 인생 가장 비참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날 어머니의 보호자 신분으로 응급실 안의 수술실 앞에서 흘렸던 눈물은, 내게서 ‘신앙’이라는 단어를 지워냈다.
어머니와 나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철저히 짝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내린 결론은,
무신(無神)이었다.
종교의 근원과 본질은 무엇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전능한 존재’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 기대는 과연 바람직한가? 종교는 무언가를 염원하는 의식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일까?
종교의 기원을 찾는 여정은 어쩌면 발칙하고, 어쩌면 불확실하다. 그러나 여러 학자는 고대 인류에게 ‘종교’가 단순한 믿음 이상의 것을 선사했다고 말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시 베링은 언어의 기원을 연구하다가, 가십(험담, 쑥덕공론)이 “집단의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고 결론지었다. 현대인이 품위 없는 수다 정도로 여기는 가십을, 그는 고대 종교의 적용 기능의 핵심으로 제시한 것이다.
"베링의 논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집단의 규율을 위반할 기능성이 높은 사람이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바람이나 나무 위, 또는 하늘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상상하면 범법 행위를 자제하게 되고, 가십에 오르는 횟수가 줄어들고, 집단에서 추방될 가능성도 낮아진다. 따라서 그는 안전하게 후손을 낳을 수 있으며, 그 후손들도 신을 두려워하는 습성을 물려받아 규율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즉, 종교적 성향은 혈통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세대가 거듭될수록 종교에 더욱 심취하게 되고 인원수도 많아지는 것이다."
- 브라이언 그린, 《엔드 오브 타임》 7장 두뇌와 믿음 중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종교가 인류에게 행사한 영향력은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 종교 속의 신은 감시자였고, 인간을 옳은 길로 이끄는 나침반 같은 존재였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자 앞에서 행하는 ‘기복신앙’은 어쩌면 종교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그러니 내 신앙의 모습은 잘못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자라나기 시작하며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보단, 오직 내게 무언가를 베풀어 주기만을 바라며 수많은 기도를 올렸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종교의 절대자란 어떤 존재일까?
그 어떤 단어들을 찾아봐도 확실히 정의를 내릴 순 없겠지만, 내가 찾은, 내가 믿기로 한 절대자의 모습은 한 철학자에게서 힌트를 얻었었다.
네덜란드의 근대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포르투갈계 세파르디 유대인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망명한 유대인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유일신 '야훼'와 그들의 민족의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23세의 나이에 암스테르담 유대교 공동체로부터 공식적 파문을 당했다.
그가 품었던 철학적 사유와, 그가 신의 존재와 우주의 질서를 사랑하는 방식 때문에 말이다.
스피노자는 신을 초월적 존재가 아닌, 곧 자연 그 자체로 보았다.
"Deus sive Natura (신 또는 자연)"
이것이 그의 선언이자 신앙이었다.
그에게 신은 감정이나 의지를 가진 인격체가 아니었고, 우주 전체를 구성하는 불변의 법칙, 존재의 필연성 그 자체였다.
그는 신을 ‘모든 것의 존재 조건’이라 했고, 모든 것이 신 안에 존재하며, 신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주와 자연, 그것이 곧 신이었고, 우리는 그 일부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스피노자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믿는 신을 저버린 적 없었다.
그가 믿는 '자연'이라는 신은 유대 전통의 근본인 “하나 됨(에하드)”, 즉 모든 존재는 하나라는 관념과도 깊이 맞닿아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믿는 유일신 '야훼'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가장 근원적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 인간의 운명이나 행위에 간섭하는 신이 아니라,
이 세계의 조화로운 질서 속에 드러나는 신을.”
- 아인슈타인
스피노자와 당시 유대인 공동체 중 누가 옳았던 것일까?
거의 모든 종교에는 '경전'이 있기에, 답은 그 안에 담겨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요한 건, 나는 아직도 기독교를 믿는 신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신앙인이 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내가 만들어낸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스피노자가 믿는 신과 내가 믿는 신은 동일하다.
그 신은 우주 자체이자, 동시에 사랑과 관계 속에 존재한다.
코스모스의 질서를 만들었으며, 그 속에서 인간의 탄생을 유발했다.
밤하늘의 별을 통해 말을 걸고, 코스모스의 질서를 통해 책임을 보여주며, 진정한 신비를 향한 항해의 길을 열어준다.
자연을 통해 말하고, 인간의 내면을 향해 말하는 그 모든 것이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즉, 그 하나님은 우주의 근원이자 자연 그 자체일 뿐 아니라, 사랑과 책임, 눈물과 희망의 원리를 그 자연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광활하고 광막한 코스모스가 하나이듯, 나의 신앙은 일신론(一神論)이다.
그리고, 하나의 코스모스가 모두를 동일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듯, 코스모스의 원리는 결코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기도하는 이에게도, 기도하지 않는 이에게도, 모두에게 코스모스는 동일하다.
차이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며, 결과도 우리가 만들어낸다.
코스모스는 다만 보여 줄 뿐이다.
그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질서와 공존, 평화와 사랑을 꿈꾸는 자,
그저 땅을 바라보며 내 발걸음만 바라보는 자.
오늘날의 나는,
코스모스를 바라보기로 선택했다.
"너희는 눈을 들어 높은 곳을 보라
이것들을 창조한 자가 누구냐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 권세가 크고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 이사야 4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