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명을 이끌다

# 2

by 더블윤
오리온 자리 분자운(성간구름) 내부에 위치한 밝게 빛나는 원시 별


태고의 인간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광막한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별들, 계절을 예고하던 별자리, 질서 정연한 천체의 움직임. 인간은 거기서 단순한 빛의 궤적만을 본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을 느꼈다.
질서, 조화, 리듬. 바로 그 자체로 완전한 세계, 코스모스였다.
문명의 첫걸음은 그 하늘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인류는 별의 규칙을 읽으며 시간을 세었고, 계절의 순환 속에서 삶의 질서를 배웠다. 코스모스는 단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의 본보기였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그 질서를 모방했고, 문명은 조화와 균형을 닮으려는 시도 속에서 성숙해 갔다.
그러나 문명이 성장할수록 그 시선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하늘은 이해의 대상에서 권위의 언어로 변했고, 질서는 질문이 아닌 교리로 고정되었다. 코스모스는 계산되고 해석되었지만, 더 이상 경청되지 않았다. 권위와 욕망, ‘진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려 들었고, 그 과정에서 문명은 자신이 닮고자 했던 조화로부터 멀어졌다.
과학과 이성은 인간에게 막대한 힘을 안겨주었지만, 윤리와 성찰이 뒤따르지 않을 때 그 힘은 파괴로 기울었다. 산업과 전쟁, 효율과 속도는 문명을 팽창시켰으나, 인간의 내면과 자연의 균형은 함께 무너져 내렸다. 우리는 풍요를 얻었지만 방향을 잃었고, 진보를 말했지만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인류는 완전히 하늘을 잃지는 않았다. 폐허 위에서 다시 우주를 올려다본 순간, 인간은 지구가 하나의 집이며 코스모스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시선은 분열을 넘어 연대를, 지배를 넘어 공존을 상상하게 했다.
오늘날 이 문명이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는 우리가 완전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항해의 길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문명과 오늘날의 문명을 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점검을 위해 이렇게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문명은 진보했고, 진보하고 있으며, 진보할 것인가?”


문명의 진보 수준과 성숙도를 판별하기 위한 지표는 무척 다양하다. 문명의 경제력, 문맹률, 실업률, 기대수명 등 여러 지표가 그 문명의 진보 수준을 수치화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지표를 최대한 단순화하고 싶다. 아마 꽤 모호하고 작위적인 지표라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문명의 진보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이 아니다. 인간이 코스모스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 왔는지, 그 과정을 곱씹어 보면 이 시선이 의미하는 바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우리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무엇을 발전시켜 왔고, 무엇을 통해 코스모스를 이해하게 되었을까?
그 답은 바로 ‘과학’이다.

고대로부터 문명의 성숙도와 발달 수준에 대한 평가는, 그 문명이 자연 현상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설명하는가에 따라 판단되곤 했다.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자연철학은 문명의 중심축이었고, 이들이 주변 부족사회보다 ‘고등한’ 문명으로 인식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과학적 사유 때문이었다.
이슬람 황금기(8~13세기),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에서는 천문학·수학·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문명이 절정기를 맞았다. 이후 이 과학적 자산은 유럽 르네상스의 토대가 되었다.
중세 말 유럽에서 시작된 과학혁명은 기존의 신학 중심 질서를 해체하고, 근대 이성 중심 사회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로 인해 산업, 의학, 정치 등 문명의 거의 전 영역이 근본적 변화를 맞이했다. 나아가 산업혁명 시기 과학기술의 공학적 응용은 대량생산, 도시화, 교통혁신을 촉발하며 문명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인류 문명의 전환점이나 황금기에는 언제나 ‘과학’이라는 단어가 숨어 있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문명이 가진 과학기술의 경쟁력은 선진국의 필수 조건 중 하나가 되었고,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 수준은 경제력·국방력·복지 등 거의 모든 문명 요소와 직결되며, 국제 사회에서 ‘문명국’으로 인정받는 주요 기준이기도 하다.

인류 문명은 과학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다. 과학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을 넘어,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문명 전반의 변화를 촉진해 왔다.
문명의 진보는 과학이 이끌었고, 과학적 성취는 곧 문명 진보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었다. 실상이 이러하니 “과학이 문명을 이끈다”라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문명을 나아가게 하는 엔진은,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터득한 지식인 과학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학이라는 엔진의 시작과 끝에는 항상 코스모스가 담겨 있을 것이다.

과학은 인간이 우주와 다시 연결되기 위한 언어이자, 우리를 이끌어 온 유일한 동력이 되어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과학은 세상을 위협하는 무기로도 변모하기도 했다. 과학은 본래 코스모스를 이해하려는 탐구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이 ‘기술’로 전환되는 순간 사회적·정치적 목적에 따라 활용되며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파괴하는 ‘힘’이 되었다.
일례로 핵무기는 과학이 인류 문명을 위협하는 무기가 된 대표적 사례이다. 생명공학은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의료 혁신을 이루는 한편, 치명적 병원균을 설계하는 생물무기로 전용되기도 했다. 그렇게 과학은 어느 순간 생명을 바라보는 눈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손이 되었다.
또한 과학은 국가 권력이나 기업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방향으로 ‘설계’되기도 하고, 지배의 도구·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인류는 그 힘으로 지구의 주인이 되었고, 마침내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제 그 힘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성찰하지 않는다면, 과학은 인류를 진보가 아닌 파멸로 이끌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과학은 그 본질을 잃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코스모스에서 비롯된 지식을 통해, 다시 그 코스모스를 향한 로켓을 쏘아 올리고 있다.
인류는 다시 하늘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항해는 단지 인류의 발자취를 우주로 확장하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코스모스’, 즉 질서와 조화의 세계를 되찾기 위한 내면의 항해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2장에서는 인류의 과학사를 따라가고자 한다. 그 과학의 이야기를 통해 코스모스가 어떤 지식을 인류에게 선사했는지 들여다보고, 그 지식이 인류 문명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이 다시 코스모스를 향한 항해를 시작하기까지의 그 찬란한 여정을 되짚을 것이다.
1장에서 우리는 문명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발자국 속에서 코스모스가 어떻게 길을 내주었는지,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빛을 내려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어쩌면 이번 2장 역시 문명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조명하려는 것은 문명을 이끌어 온 ‘동력’, 과학이다. 왜냐하면 인류 문명의 발전에서 과학의 역할은 떼어놓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2장을 통해 문명이 걸어온 길, 그리고 과학이 이끌어 온 길을 되돌아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그 속에는 우리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으며, 무엇을 오해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담겨 있다.
인간은 과학을 이끌었고, 과학은 인류 문명을 형성했다. 그 상호작용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미래를 위한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그 해답을 향한 여정을 열어보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과학은 언제부터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되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코스모스를 꿈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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