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 세계를 해석한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들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을 인식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태고의 생명이 외부 환경 변화에도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오랜 시간 스스로를 진화시켜 온 결과였다.
약 40억 년 전 지구. 바닷속 뜨거운 열수분출공(해저 지각 틈으로 뜨거운 물과 광물이 분출되는 굴뚝형 구멍)은 풍부한 화학 에너지와 다량의 금속 촉매를 끊임없이 뿜어냈고, 이는 천연 화학 합성 실험실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그 가혹한 환경의 연구실 안에서 생명이 움트기 시작했다.
최초의 생명으로 볼 수 있는 단세포 원핵생물은 그 뜨거운 바다에서 탄생했다. 단순한 형태의 생명이었지만 내부와 외부를 구분해 줄 수 있는 세포막을 갖추고 있었고, 이를 통해 극심한 환경 속에서도 내부의 유기 화합물을 화학적으로 안정화시키며 스스로의 몸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생명체에게 있어 그들의 존재 이유는 분명했다. 그것은 자신이 담고 있는 유전자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었다. 세포막이라는 경계를 통해 유전자가 화학적 손상을 입는 것을 막았고, 세포막 안의 세포질(세포 내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유전자 자체를 ‘살아 있는 상태’로 유지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유전자는 연약했고 쉽게 손상될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생명에게 있어 외부 환경과 내부를 분리시키는 일은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그렇기에 생명은 유전자를 보호하고 있는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명은 외부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스스로의 상태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반응해 나가게 되었다.
외부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는 작용인 자극에 따라 생명체는 반응하기 시작했고, 자극과 반응은 생명체에게 변화의 힘을 내재시켰다. 근본적으로 자극이 없는 세상, 즉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환경에서는 ‘변화의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체는 이러한 반응의 과정 속에서 급진적인 변화의 재료를 축적해 나갔다. 돌연변이, 곧 진화라 불리는 그것을 말이다. 반응 자체가 진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반응 과정에서 생존 여부가 갈렸고, 그 결과 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종이 나타나며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가 일어났다.
진화를 거듭해 감에 따라 생명이 외부 환경을 인식하는 방법은 다양해졌고, 그 능력도 점점 더 정교해졌다. 외부 자극에 더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하기 위해 신경계가 등장했고, 그 신경계는 점차 통합되어 뇌로 조직되었다. 뇌와 중추신경계, 그리고 몸 전체에 퍼져 있는 수많은 말초신경들은 더욱 많은 자극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곧 여러 감각기관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졌다.
그 진화의 길에 서 있는 생명 중 하나인 우리 인간은 크게 다섯 개의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 눈, 귀, 코, 혀, 그리고 피부.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 오감이라 불리는 감각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오감 중, 우리의 뇌가 가장 활발하게 처리하는 감각은 바로 시각이다.
하지만 진화하기 시작한 생명체가 가장 먼저 발달시킨 감각은 시각이 아니었다. 최초의 생명이 가장 먼저 발달시킨 감각은 ‘후각’과 ‘미각’의 기원이 되는,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능력이었다.
원시 바다,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열수분출공 주변에서는 ‘먹이(에너지)’와 ‘독성 분자’가 오직 화학적 형태로만 존재했다. 초기 생명은 이러한 화학적 환경 속에만 있었기에 빛을 감지할 필요도,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다시 말해, 초기 생명이 마주한 세계는 철저히 화학적 신호로만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감각이 가장 먼저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우연’은 언제나 큰 변곡점을 만든다. 광합성을 하는 단세포 생물 중 하나가 평소처럼 유전자를 복제하고 있었을 때, 그 과정에서 아주 작은 오류가 발생했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특이한 서열의 유전자가 탄생했고, 그것을 지닌 개체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종으로 나아갈 운명을 갖게 되었다.
그 생명체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단백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돌연변이로 만들어진 새로운 단백질은 이전과 성질이 다른 특이한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백질이 바로 '옵신(opsin)' 이었다.
옵신은 빛을 받으면 전기 신호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 생명체에게 ‘빛과 어둠’을 구분하는 능력을 제공한 것이다. 광합성을 하는 생물에게 이 능력은 커다란 이점이었다. 비록 그 신호는 아주 단순했지만, 이 돌연변이 개체는 빛이 더 많은 방향으로 몸을 돌리기만 해도 에너지 확보 면에서 기존 개체들보다 훨씬 더 유리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옵신을 가진 단세포 생물은 생존 경쟁에서 앞서 나갔고, 더 많이 살아남아 번성했다. 시간이 흐르며 이들의 수가 늘어나자, 옵신을 갖지 못한 개체들은 점점 밀려났다.
이것이 바로 진화의 작동 방식이며, 생명체가 최초로 시각의 기원을 얻는 순간이었다.
시각은 가장 늦게 등장한 감각이었지만, 그 역할은 그 어떤 감각보다도 중요해졌다. 시각은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빛이 제공하는 공간·거리·운동·형태에 대한 정보는 청각이나 촉각보다 훨씬 넓은 환경을 단숨에 파악하게 해주었다.
이 정보들은 생존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시각은 포식자를 탐지하고, 먹이를 찾고, 장애물(지형지물)을 피하는 데 필수적이었으며, 물체의 속도와 궤적을 실시간으로 계산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생존용 계산 장치’로 기능했다.
생명체는 이 놀라운 감각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더 높은 수준의 시각 정보를 가진 생명일수록 살아남기 쉬웠고, 그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뇌는 점점 더 정교하고 강력한 감각 처리 기관으로 진화해 나갔다. 그리고 이 상호발달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갔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만 년 전, 숲이 가득한 지역에는 한 순간에 수많은 시각 정보를 처리해야만 하는 종이 등장했다. 바로 유인원이었다.
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온통 장애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장애물을 손으로 움켜쥐며 이동해야 했다. 나뭇가지 간의 거리, 몸의 무게 중심, 착지 지점, 안정적인 지지점 등을 순식간에 계산하고 예측해야 했기에, 이들의 뇌는 자연스레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숲이 물러나자 이들은 지상으로 내려왔다. 지상 환경에서는 더 이상 나무 사이를 이동하던 시절처럼 순간적인 삼차원 계산 능력을 그대로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겉보기에는 그 복잡한 뇌가 퇴화할 듯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다.
그들은 뇌를 퇴화시키지 않았다. 그보다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다양한 방식으로 그 복잡한 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긴 진화의 흐름 끝에서, 마침내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이 ‘시각(Visual perception)’, 즉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는 무척이나 극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 시각 또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가 인간의 등장을 야기했다는 식의 논리적 비약으로 이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고등 인지 영역에서조차 시각 기반 사고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시각 정보는 다른 감각 정보보다 더 오래 기억되고, 공간적 형태나 패턴은 더 빠른 판단과 추론을 가능하게 만든다. 언어의 개념들조차 시각적 은유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는 점은, 우리 뇌가 시각 중심적 구조로 진화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니 ‘바라본다’는 감각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라본다는 감각이 특별한 이유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더욱 복잡한 뇌와 고등화된 사고 능력으로 더 많은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전의 어떤 생명체도 향하지 못했던 곳을 향하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