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가 낳은 과학, 천문학

# 2-2

by 더블윤
“천문학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고, 인격을 형성하는 경험이다.
천문학은 단지 과학이 아니라, 하나의 관점이다”

- 칼 세이건



생명체에게 있어 주변을 인식하는 능력, 또는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였다. 그 능력은 개체의 생존과 직결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즉 인간의 주변을 인식하는 감각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다.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후각은 개과 동물들이 인간보다 수만 배 민감했고, 청력 역시 몸집이 작은 많은 동물들보다도 떨어졌다. 촉각이나 진동 감지 능력은 거미·곤충·뱀 등이 훨씬 정교했다. 심지어 전기감지나 자기장 감지를 수행하는 생명체도 존재하지만, 인간은 사실상 그러한 능력이 전무했다.

하지만 인간은 ‘보는 능력’에 특화된 생물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를 비롯한 호모속(인간종)에게는 정교한 손 사용과 시각 기반 도구 문화가 지속적으로 요구되었고, 이는 시각 분해능을 강화하는 선택압(자연선택을 유도하는 진화적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인간의 눈은 많은 포유류보다 뛰어난 주간 분해능을 갖게 되었다. 물론 해상도에 의존해 사물을 인식하기 때문에 동체시력과 넓은 영역에서의 추적능력은 떨어졌지만, 무언가를 정밀하게 ‘관찰’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반면 인간의 야간 분해능은 주간 시력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졌다. 주행성이었던 호모속은 밤에 적응할 필요가 거의 없었고, 원뿔세포 중심의 시각 구조는 어둠에 부적합했다. 그들에게 밤은 언제나 빛이 닿지 않는 두려움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한계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시력을 ‘특별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야간 분해능이 높은 동물들은 작은 점광원을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지지만, 주간 분해능이 뛰어난 동물은 중심와(망막 중심부의 함몰 부위)의 풍부한 원뿔세포 덕분에 아무리 작은 점광원이라도 빛 번짐 없이 분리해 관측할 수 있었다.

이 능력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바로 인간은 ‘별을 관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의 시력은 사물을 정밀하게 바라볼 수 있다. 이는 그들이 가진 뛰어난 분해능에서 비롯된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에서 ‘관찰’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포식자를 찾거나 위협을 피하는 수준의 단순한 시각적 인식이 아니라, 인간은 무언가를 세밀하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혁명과 함께, 관찰은 상상력과 결합했다. 관찰과 상상이 결합하면서 인간은 허구를 넘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만들어냈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세밀하고 정교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부터 학습했고, 그 시선이 곧 ‘학문(學問)’으로 이어졌다.

'학문'이라는 말이 등장했으니, 인류 최초의 학문이 무엇인지 한번 상상해 보자. 수학·의학 등의 학문은 고대 인류가 갖고 있던 선구적 지식 중 하나였다. 이는 그들의 생존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고인류에게 분배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행위였다. 그리고 인류는 그 분배를 위해 첫 수학을 시작했을 것이다.
또한 의학(본초학)의 경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랫동안 연구되었던 학문 중 하나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약초 분류·처방 등에 관한 기록들은 천문 기록만큼 오래됐다. ‘자연관찰과 실험’이라는 측면에선 오히려 의학이 고대 과학보다도 더 과학적으로 탐구되었다.
그렇다면 과학은 어땠을까?
고인류에게 수학과 의학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학문이었다면, 과학은 문명을 창조한 학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이란 '관측 천문학', 즉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행위'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기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 우리는 문명의 탄생이 비옥한 범람원이 있는 지역에서 인간이 정착과 농업 시작하게 됨으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농업에 대한 지식이 아닌 과학이 문명을 창조한 학문이라고 하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1만 2,000년 전, 혹독한 겨울만이 지속되었던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자 인류는 마침내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동굴 밖의 생활은 그들에게 이전에는 없던 풍부한 시각적 자극을 선사해 주었을 것이다.
들판의 소와 잘 익은 붉은 열매, 초록의 대지와 숲. 그 자연 속에서 인류는 활보했고, 그 모든 풍경을 눈에 담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무리의 남성들은 부락으로 돌아와 사냥한 짐승의 살점을 나누었다. 불 앞에 둘러앉은 공동체는 그 수에 따라 채집한 열매를 나누어 먹기도 했다. (아마 수학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늘은 그들에게 삶의 인도자였다. 태양은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었고,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을 가늠하게 해 주었다. 불가에 둘러앉아 올려다본 밤하늘은 계절의 변화를 예고했다. 은하수의 위치와 방향, 그들이 그린 별자리의 변동은 채집 가능한 열매의 종류가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었으며, 이동 시기를 고려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올려다본 하늘의 모든 천체, 코스모스는 인류의 미래를 그려냈다. 하늘은 인류가 ‘지금’이 아닌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하게 만들었고,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가능하게 했다.
그들이 농업과 정착을 정확히 왜, 그리고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기 어렵다. 다만 이 땅의 모든 자연이 그러했듯, 그들이 재배하기 시작한 농작물 역시 코스모스의 규칙을 따랐다. 코스모스의 운행을 이해하기 시작한 인류는 이 작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해 갔다.
즉, 코스모스를 바라보고 기억하고 기록했던 인간의 시선이 없었다면, 문명의 시작을 촉발한 농업혁명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인류가 ‘코스모스를 바라보던 시선’, 즉 관측 천문학은 당시 인류가 그것을 기록하고 패턴을 인식하며, 수학적 주기로 발전시켜 그 운행에서 보편적 법칙을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방법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달의 위상 변화를 관측하고 기록하며, 그것이 일정한 주기적 패턴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고, 이를 통해 각종 절기를 계산했다. 시간을 주기로 인식하기 시작하자 인간은 그것을 계산하고 수치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하루를 24등분했고,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시간과 분을 60등분해 계산했다.
정밀한 계산은 오차의 발견과 그 수정·보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달의 주기인 약 28.5일은 태양의 연주기에서 비롯되는 계절 변화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는 이를 ‘헬리아칼 상승(Heliacal rising)’(매년 특정 시점에 시리우스가 새벽 하늘에 처음 떠오르는 현상) 을 기준으로 삼아 1년을 365일로 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는 단순한 관측이 아니라 정확한 측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와 같이 문명은 천체 주기를 설명하기 위해 기하·산술을 사용하며, 수학이 자연의 언어임을 그 시작부터 증명해 나갔다.

나일강의 범람 주기와 정확히 일치했던 '헬리아칼 상승'. 태양과 함께 밤하늘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가 떠오르고 있다.


나아가 천문학은 인류의 시선을 단순한 경외감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인간은 그 고대의 과학을 통해 코스모스를 동경하며 기록했고, 그 규칙성을 삶에 적용했다. 모든 인류는 고개를 들어 같은 코스모스를 바라볼 수 있었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은 공동체적 유대감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 유대감은 공동체의 신념이 되고, 질서의 기준이 되었으며, 각자의 인격 형성과 조화를 지향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기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곳을 지향하는 그 마음들, 나는 그것이 인간이라는 개체를 공동체 단위로 묶어주는 의식이자, 문명 시작의 상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의 과학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과학과는 달랐다. 그것은 실험과 이론의 체계가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첫 번째 시도였다. 천체의 움직임, 별자리의 변화, 달의 주기를 통해 인간은 자연의 질서를 해석하고자 했다. 이는 과학의 첫걸음이었으며, 문명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처럼 고대 문명에서 시작된 과학은 인간의 본능적 호기심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천문학, 수학, 자연을 이해하려는 욕망은 인류 문명의 초석이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지구에서 얻은 지식의 출발점이 되었다.

따라서 과학은 처음부터 거대한 실험실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작은 시선, 그리고 그 안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이 시기 인간에게 과학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코스모스를 읽으려는 문자의 탄생이었다.
과학은 단지 계산과 실험이 아니라, 인간이 코스모스와 맺어온 가장 깊고 오래된 대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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