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The unleashed power of the atom has changed everything, save our modes of thinking, and thus we drift toward unparalleled catastrophe.”
"원자의 힘은 모든 것을 바꾸었지만, 우리의 사고방식만은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전례 없는 재앙을 향해 떠밀리고 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학과 결합된 기술은 상호 자극 속에서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갔다. 쌓여가는 이론은 기술의 혁신을 낳았고, 발전된 기술은 더 정밀한 실험과 정교한 이론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과학과 기술은 서로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점점 더 강력한 동반자가 되어갔다.
1차 산업혁명기(약 1760~184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과학기술은 인류 문명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전지가 발명되었고, 전류에 의해 자기장이 형성된다는 사실이 발견 되었다. 그리고 1831년,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함으로, 인류는 발전기와 전동기라는 놀라운 기술을 사용하게 된다. 이후 ‘전기’라는 놀라운 에너지는 토머스 에디슨(전구, 발전소), 니콜라 테슬라(교류 송전)의 손에서 본격화되며, 오늘날까지 인류 문명의 핵심 동력이 된 '전력'이라는 힘으로 전환된다.
새로운 연료인 석유의 발견과 그것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의 개발은 새로운 운송 기술의 발달로 이어졌다. 기차는 더 빠른 속도로 대륙을 횡단하기 시작했고, 자동차, 비행기 등 새로운 운송수단이 등장하자, 인류 문명의 시공간은 더 넓고 빠르게 확장되었다.
통신 기술의 도약도 운송 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세계를 축소시키는데에 힘을 보탰다. 모스 전신기 발명은 정보 속도의 혁명을 가져왔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전화기는 편지와 직접 대화 중심의 소통을, 전기 신호를 타고 흐르는 실시간 음성 소통으로 전환시켰다.
화학 산업도 날로 발전하여 합성염료, 비료, 폭약 등 화학 합성기술이 급격히 발달했다.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의 암모니아 합성법(하버-보슈 공정)은 식량 생산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고 이는 인구 폭발로 연결되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지구의 인구는 약 9억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이후 200년 동안 인구는 약 9배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산업혁명기 이후에 등장한 기술들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이다.
이렇듯, 과학은 더 이상 이론에 머물지 않고 삶과 문명에 실질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기술과 과학이 결합된 '과학기술 문명'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이는 화학, 전기, 석유 및 철강 분야에서 기술 혁신을 이룬 2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다.
산업혁명은 인류의 생산력과 생활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지만, 그 대가로 전례 없는 규모의 자연 파괴와 환경 오염을 초래했다. 산업혁명 이후의 생산 방식은 ‘속도와 효율’을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자연의 순환과 회복 주기를 고려하지 않았다. 이는 단기적으로 경제적 성과를 높였지만, 장기적으로는 환경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현대 환경 문제의 근본적 기원은 이 시기 형성된 산업 체제에서 비롯되었다.
기술의 영향력은 점차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에서 벗어나, 자연을 통제하고 재구성하는 수단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향상된 기술을 바탕으로 강의 흐름을 바꾸고, 토지를 직선적 경계로 재편하며, 오랜 지질 과정으로 형성된 지형까지도 짧은 시간 안에 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철강·화학·기계 기술의 발전은 군함, 소총, 대포, 기관총 등의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혁명 이후의 국가들은 아시아·아프리카·태평양으로 진출해 식민지를 확보하는 경쟁에 돌입했다. ‘아프리카 분할(Scramble for Africa)’은 산업국들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동원해 대규모 영토 확장에 나선 대표적 사례였다.
식민지 보유는 국가의 ‘근대성’과 ‘위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국가 간 경쟁과 군비 확대를 더욱 자극했다. 이러한 흐름은 민족주의와 결합해 국제 질서 전체를 긴장시키며, 이후 세계대전의 구조적 기반이 되었다.
결국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문명의 등장은 환경 파괴뿐 아니라 전 지구적 충돌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과학기술은 전쟁에서 효율적 전투 수단이라는 성격이 강화되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살상력을 갖추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주력 무기는 소총이었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맥심 기관총과 같은 자동화기의 도입으로 전투 양상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분당 500~600발을 발사하는 기관총은 전장을 드넓은 죽음의 지대로 만들었고, 전통적인 돌격 전술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또한 당시 곡사포·야포는 사거리와 파괴력이 크게 향상되어 참호 속 병사들까지 위협했다. 실제로 1차 세계대전 사망자의 상당수는 포격에 의해 발생했다.
화학 기술의 발전은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1915년 이프르 전투에서 염소 가스가 처음 사용된 이후, 머스터드 가스와 포스겐 가스 등이 반복적으로 투입되었다. 가스는 참호 내부 깊숙이 침투해 호흡기·피부·눈을 공격했고, 사망률뿐 아니라 장기적 후유증을 남겼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많은 참전 군인들이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렸다.
1차 세계대전은 과학기술이 ‘인류 진보’가 아닌 ‘대량 살상의 효율화’에 동원된 최초의 총력전이었다. 기관총은 돌격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포격은 전장의 구조 자체를 붕괴시켰으며, 화학무기는 인간의 고통을 전례 없이 확장시켰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많은 것을 변화시켜 왔지만, 그 변화의 방향은 어느 순간부터 조화나 공존이 아니라 통제·지배·배제를 향하는 경향을 갖기 시작했다.
이 시기 과학은 그 잠재력을 가장 파괴적인 방식으로 드러냈고, 인간 문명은 기술의 힘이 어떻게 스스로를 위협할 수 있는지 처음으로 목격하게 되었다.
과학은 문명을 움직일 동력이 되었고, 그 문명은 파괴와 지배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문명의 모습이 과학 그 자체의 본질을 의미하진 않는다. 내가 한없이 사랑하는 과학은, 어떤 권위도 욕망도 갖지 않은 순수한 지식의 결정체이며, 질서와 조화의 원동력이 되어야만 하는 학문이다.
실제로 과학은 가능성의 문을 열어줄 뿐, 그중 어떤 길을 선택할지를 결정한 것은 문명, 그리고 인간이었다.
‘파괴의 과학’은 과학의 운명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선택의 결과였다. 그 선택이 반복되고 구조화되면서, 그것은 곧 표준이 되었고, 다른 길은 비효율로 여겨졌으며, 회의조차 허용되지 않는 흐름으로 굳어졌다. 아마 그 시대의 문명은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며 나아가야만 하는 필연적 길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문명은 그것을 ‘진보’라 불렀다.
그러나, 그 길은 정말 진보였을까?
과학은 진화했고, 문명의 진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진화가 인류를 어디로 데려온 것인지, 우리는 조용히 되물어야 했다.
그러나 실용성과 편리함에 갇힌 채, 과학은 계속 그 길을 걸었고, 문명은 결국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우리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고, 그 상상은 우리를 두렵게 하지. 하지만 저들은 그 위력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 무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테고, 그것들이 사용되지 않는 한 진정으로 실감하지 못할 걸세. 세상이 로스 엘러모스의 끔찍한 비밀을 알게 되는 날, 우리의 작품은 인류가 여태껏 보지 못한 평화를 가져올 걸세.”
- 영화 <오펜하이머> 中 오펜하이머가 필립 모리슨에게 한 말
1942년, 비밀리에 소집된 과학자들 앞에서, 미군 고위 관계자는 봉인된 문서를 내려놓았다. 그 안엔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실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
오펜하이머, 페르미, 파인만, 베테, 시라드.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하나둘씩 사막으로 모였다.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제 세상 모든 전쟁의 종식이라는 미명 아래 머리를 맞대고 지성을 모으기 시작했다.
날이 새도록 토론에 토론을 반복하는 회의는 매일 이어졌다. 복잡한 수식과 격렬한 논쟁 속에서, 그들은 핵분열의 연쇄 반응이 새롭게 만들어낼 폭탄의 핵심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핵 에너지. 별의 힘. 그들이 새로히 만들어낼 폭탄은 인류가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코스모스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우라늄-235와 플루토늄-239. 이들 중성자에 의해 쪼개지는 핵종은 한 번의 분열로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했다. 문제는 그 분열이 어떻게 연속적으로 이어지느냐는 것이었다. 충분한 양의 핵물질이 ‘임계질량’을 넘어서면, 방출된 중성자들이 인접 원자핵을 다시 쪼개며 지수 함수적으로 반응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이때 손실되는 질량은 에너지로 변환된다. 그것은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 공식, E=mc²의 실현이었다.
단 1그램의 질량 손실이 TNT 수천 톤에 해당하는 폭발 에너지로 바뀐다. 도시 하나를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별의 힘이, 인간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이론은 이제 실험을 요구했다. 적막한 로스 앨러모스 사막의 한복판에서, 핵연쇄반응의 설계가 차근차근 완성되어 갔다.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누군가가 먼저 만들겠지."
누군가는 그렇게 중얼댔다. 그러나 그것이 핑계라는 것을 다른 누군가는 알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신이 되려는 문턱에 서 있었다.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사막.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별의 심장’을 깨우게 되었다.
삼위일체를 뜻하는 '트리니티(Trinity)'라 명명된 이 실험을 통해 인류는 원자력시대를 개막하게 되었다.
실험을 위해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폭탄, 가젯(Gadget)은 지상 30m의 높은 철탑위에서 코스모스의 힘을 지상에 재현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폭발한 폭탄. 역속적인 핵분열.
그것은 하늘을 가르는 섬광과 지축을 뒤흔드는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하늘 높이 솟구치는 버섯 모양의 검은 구름은 마치 악마의 얼굴처럼 피어올랐다.
오펜하이머는 그 장면을 보며, 바가바드 기타의 문장을 떠올렸다.
나는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유난히 맑은 아침, 아이들은 학교로 걸어가고, 장터에는 장사 준비를 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그리고 그 머리위로 ‘리틀보이’가 떨어졌다,
한 줄기 섬광이 도심 한복판을 가르며 세상을 갈라놓았다. 하늘은 순식간에 하얗게 타올랐고, 그 빛이 사라질 때쯤 도시의 그림자는 이미 땅에 새겨진 채 사라지고 있었다.
폭풍 같은 열과 압력이 수천 도의 불길을 쏟아내며 집과 거리를 집어삼켰다. 사람의 피부는 옷감 무늬 그대로 화상으로 새겨졌고, 눈은 순간 증발해 사라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이었고, 불타는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물을 찾으며 강가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강물마저도 시뻘겋게 끓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고, 사흘 뒤 나가사키에서 두 번째 태양이 피어올랐다.
그날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것이 인류가 다시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이미 건넌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도시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무너진 콘크리트 기둥과, 바싹 타버린 나무 기둥, 그리고 주인 잃은 한 짝의 작은 신발뿐이었다.
하지만 참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이 사람들의 몸속에 스며들어 수년, 수십 년 뒤에도 암과 기형, 피를 토하는 고통을 안겼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폭탄은 여전히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반드시 알려줘야 하네. 이건 신무기가 아니라, 신세계라는 것을. 나는 밖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겠지만, 자네는 이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된 거야.
인류에게 스스로를 파괴할 힘을 건네준 바로 그 인물로서 자네는 사람들에게 추앙받을 것이고, 거기서부터 자네의 과업이 진정으로 시작되는 거야.”
- 영화 <오펜하이머> 中 닐스 보어가 오펜하이머에게 한 말
고대 그리스의 신은 인간에게 불을 내려주었고, 신이 된 인간은 같은 인간에게 불을 내려주었다. 하지만 그 불의 역할은 너무나도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과학은 대량학살자가 되어 전쟁사와 인류사 모두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