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인류를 위한 과학으로

# 2-8

by 더블윤
“In some sort of crude sense which no vulgarity, no humor, no overstatement can quite extinguish, the physicists have known sin; and this is a knowledge which they cannot lose.”
“물리학자들은 일종의 죄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유머로도, 어떤 과장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지식이며, 결코 잊을 수 없는 깨달음이다.”

- 로버트 오펜하이머




코스모스적 힘은 본래 인간이 함부로 다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그 힘이 전쟁을 종식시키리라 기대했지만, 핵연쇄반응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된 것은 파괴의 사슬이었다. 이 프로젝트로 탄생한 핵무기조차 재래식 전쟁을 사라지게 하지 못했고, 오히려 냉전이라는 새로운 갈등 구조 속에서 반세기 동안 지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핵무기는 이후 더욱 확산되어 여러 차례 새로운 전쟁 위기를 낳았다.

그러나 나는 이 파괴의 끝에서 또 하나의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말하고 싶다. 폭발의 버섯구름이 걷히자, 과학자들 마음속에서 전혀 다른 종류의 ‘반응’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오펜하이머는 1945년 10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폭격 직후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Mr. President, I feel I have blood on my hands.


트루먼은 “피를 묻힌 건 내 손”이라며 그의 말을 일축했고, 오펜하이머를 ‘아기처럼 징징대는 과학자’라 비난했지만, 그가 느낀 죄책감은 일시적인 감정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학이 느낀 최초의 죄책감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를 비롯한 모든 과학사를 통틀어 보아도, 오펜하이머만큼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힌 과학자가 있었는지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한 사람의 지성이 수십만 명의 생명을 단번에 앗아가는 결과로 이어졌던 사례는 찾아보기 드물 것이다.
오펜하이머의 발언은 개인적 죄의식의 표현을 넘어, 과학자가 ‘자신이 수행하는 과학’의 사회적 의미를 재검토하기 시작한 순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맨해튼 프로젝트의 일부 과학자들 역시 자신들이 만든 기술이 민간인 대량 사망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목격하며 깊은 책임감을 느꼈다. 리오 실라르드와 같은 인물은 전쟁 중에도 핵폭탄 사용에 반대했고, 이후 핵확산 방지 활동에 평생을 바쳤다.

물론 모든 과학자가 동일한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원자폭탄이 전쟁을 조기 종결시켜 결과적으로 더 많은 희생을 막았다고 보았고, 이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간주했다. 그들의 입장이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당시의 판단은 전시 상황과 전략적 고려에 크게 좌우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많은 과학자들이 이 사건을 통해 과학이 단순한 진리 탐구를 넘어 인류 전체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체감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 이후,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수행하는 연구의 윤리적·정치적 함의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원폭 투하 직후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맨해튼 프로젝트 과학자들은 핵무기 개발의 국제적 통제를 주장하며 모임을 조직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우리가 만든 무기는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했고, 핵 연구의 지속 여부와 책임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1955년 발표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확산시켰다. 이 선언은 1957년 이후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s)’로 이어졌고,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핵무기 폐기, 군축, 과학의 평화적 이용을 직접 논의하는 장이 열렸다. 과학이 초래한 파괴를 목격한 이들이 ‘과학자 윤리’와 ‘연구 책임’이라는 개념을 체계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발표하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리논리학자인 버트런드 러셀. 그는 "인간임을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잊으라."라 말하며 인간성 회복을 강조했다.


이 변화는 과학계 내부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20세기 과학은 사람들의 세계 인식을 근본적으로 흔들었고, 새로운 인식은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운동의 토대를 형성했다.



"Here, then, is the problem which we present to you, stark and dreadful and inescapable: Shall we put an end to the human race; or shall mankind renounce war?"
“그러니 이제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명백하며, 두렵고,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인류를 끝내 버릴 것인가, 아니면 인류가 전쟁을 포기할 것인가?”

- 버트런드 러셀





세계관의 변화


20세기 과학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루었다. 이번 도약은 엔진과 기계가 이끈 물질적 진화가 아니라, 세계 자체를 인식하는 방식을 뒤흔든 혁명이었다. 뉴턴이 정교한 법칙으로 시계장치 같은 세계를 세웠다면, 20세기의 과학은 그 틀을 넘어 불확실성과 새로운 질서가 공존하는 세계를 드러냈다. 그 출발점에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공간·질량·중력에 대한 기존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했다.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으로 구성된 뉴턴적 세계관은 관찰자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고, 중력은 ‘힘’이 아니라 시공간의 기하학적 변형이라는 사실 앞에서 완전히 재구성되었다. 이 이론은 GPS의 작동 원리에서부터 입자물리학, 현대 우주론까지 이어지는 과학적 기반을 마련했다.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아인슈타인이 밝혀낸 이 명제는 ‘객관적 현실’에 대한 기존 관념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낯섦은 양자역학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플랑크, 보어,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로 이어지는 양자역학의 전개는 미시세계의 법칙을 새롭게 정의하며, 자연이 근본적으로 확률적 구조를 갖는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파동함수, 확률 해석은 ‘세계는 충분한 정보를 모으면 완전히 예측할 수 있다’는 전통적 믿음을 무너뜨렸다.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이를 반박했지만, 양자역학을 통해 밝혀진 미시 세계 안에선 실제로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양자적 자연은 완전한 측정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며, 우연과 확률이 가장 근본적인 층위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전까지 축적된 과학적 확신을 뒤흔드는 결과였다.

양자 중첩과 측정의 의미를 설명하는 대표적 예시인 '슈뢰딩거의 고양이'. 양자역학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고실험이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토머스 쿤은 이 시기를 또 다른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바라보았다. 기존 이론들을 부분 수정한 것이 아닌, 근본부터 재구성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론의 변화뿐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었고, 시간이나 공간 등 변수라 여기지 않았던 문제들 까지도 이젠 새로운 관찰과 해석이 필요한 영역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인간은 처음으로, 세계가 단순한 논리나 직관적 질서로 설명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면했다. 그리고 그 낯섦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세계관의 변화가 가져온 시대의 전환


19세기 문명은 ‘과학의 세기’라 불릴 만큼 놀라운 과학적 성취가 이어진 시대였다. 전기 문명의 서막을 연 마이클 패러데이와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있었고, 멘델과 찰스 다윈은 유전과 진화라는 생물학의 비밀을 열었다.
이러한 성취 아래 인류는 ‘세계는 합리적 질서로 완전히 설명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과학적 낙관주의와 결정론적 세계관은 절정에 달했고, 이 믿음은 생명·문명·우주를 설명하는 중심축에 인간 이성이 존재한다는 인간 중심주의로 이어졌다.
사회 전반에 퍼진 극단적 인간 중심주의는 사회적 다윈주의, 우생학 등 ‘과학의 외형’을 빌린 폭력으로 확장되었다. 또한 과학적 합리주의는 과학기술 문명들에게 스스로의 우월성을 믿게 만드는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 과학은 이러한 시대의 믿음에 불편한 진실을 제시했다. 세계는 상대적이었고, 자연은 확률적으로만 이해될 수 있었으며, 지식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제한적이었다. 이는 정치·경제·철학 전반에서 절대주의·결정론·계몽주의적 낙관의 약화를 불러왔다.
빅뱅 우주론과 진화론, 그리고 DNA의 발견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생명 진화의 한 갈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인간의 이성 역시 ‘우주가 허용한 좁은 영역’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점도 명확해졌다.


이 변화는 사람들의 인식을 크게 흔들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관점이 재조명되었고,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생태적 전체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에 따라 우주 속 지구와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담론들이 등장했다. 종교와 신학은 창조와 우주의 목적에 대한 해석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고, 인간 중심적 형이상학은 약화되며 인간 조건에 대한 재사유가 시작되었다. 즉, 인간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은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의식 변화의 밑바탕에는 과학적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더 근본적인 요인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토머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 전환’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학 이론의 변화가 사회에 미친 영향이 적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불확실성·확률성·다층성을 말한 시기와, 사회가 인간의 복잡성과 다양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시기가 겹쳐 있다는 점 역시 우연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나아가 뉴턴적 세계관의 붕괴와 함께 과학이 새로운 틀을 맞이한 것, 그리고 이 시기가 근대와 현대의 경계로 읽힌다는 사회학·역사학적 해석이 겹친다는 사실은, 과학의 전환이 문명의 전환과 동반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국 20세기 과학은 인류에게 두 가지 영향을 가져왔다.

첫 번째 영향은, 과학의 힘이 초래한 파괴의 가능성이었다. 과학은 도시를 재건할 수 있었지만, 도시 하나쯤은 쉽게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핵폭탄의 파괴와 수소폭탄의 섬광 속에서 과학은 더 이상 순수한 진리 탐구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손에 쥐어진 가장 위태로운 선택지이자, 인류 전체를 삼킬 수도 있는 거대한 불확실성이 되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인 수소폭탄, '차르봄바'. 원자폭탄의 원리인 핵분열과 달리, 실제 별이 에너지를 내는 방식인 핵융합을 이용한 폭탄이다.


그러나 성찰을 시작한 과학은 또다시 진화하며 문명을 다른 길로 이끌기 시작했다. 성찰과 반성은 변화의 가능성이며 힘이었다. 과학은 이제 문명을 이끄는 동력이자, 동시에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되고자 했다. 과학자들의 입에서 ‘윤리’와 ‘책임’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한 순간, 과학은 학문의 영역이나 기술적 수단을 넘어선 더 넓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혼돈 속에서 다시 질서를 향한 열망, 파괴를 넘어 조화를 추구하려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확장된 것이다.


두 번째 영향은, 과학이 문명을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 앞에 세웠다는 점이었다. 아인슈타인 이후의 세계관은 세계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시선이 되었고, 그 시선과 함께 성장한 기술들(우주공학, 로켓기술 등)은 이전 시대가 상상하지 못했던 관점과 통합의 가능성을 열었다. 인류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되었고, 그 관점은 새로운 의식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광활한 어둠 속의 창백한 푸른 점, 그리고 그 위의 작고 미약한 존재들. 이 인식은 그 어떤 천문학적 관측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결국 과학은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는 지식이자 힘인 동시에, 우리를 인도하고 구원할 수도 있는 가능성의 상징이 되었다.
밤하늘의 별빛이 눈부신 이유는 그것이 어둠 속에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과학은 인류 문명의 어둠을 드러냈지만, 그 속에서도 다시 코스모스를 향해 나아가려는 희미하지만 확실한 빛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이 힘으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바로 이 질문에서, 과학은 다시금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인간의 길을 비추는 등불로서의 가능성을 얻기 시작했다.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의 사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 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