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We are not playthings of cosmic forces. We can use our knowledge to steer our future toward better outcomes.
The possibilities are unbounded. It’s the choices we make that matter.”
"우리는 우주의 힘에 휘둘리는 장난감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통해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가능성은 무한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 데이비드 도이치(양자 컴퓨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스라엘의 이론물리학자)
과학과 인류는 성찰을 시작했다. 과학이 핵을 쪼개고 세상에 죽음과 파괴의 잔혹함을 드러냈을 때, 인류는 처음으로 과학의 힘이 단지 생존과 진보를 위한 도구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세계의 질서를 바꾸고, 문명의 진로를 재편할 수 있는 힘이었다.
그렇다고 과학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과학은 더 깊이 파고들었고, 그에 기반한 기술은 세상 구석구석으로 확장되었다. 핵무기 이후에도 과학은 여전히 새로운 파괴 수단들을 만들어냈고, 인간은 그 힘을 경계하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과학이 기술과 만나 참전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문명은 과학의 힘으로 또 다른 경쟁을 시작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이 그것이었다. 두 나라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지성을 우주를 향해 쏟았고, 인류는 지구상 생명체 최초로 자신들의 고향행성 바깥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름다운 구슬처럼 빛나고 있는 이 작은 행성에서, 인류는 사상과 국가와 민족으로 나누어진 집단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의 지구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우주를 향한 꿈을 꾼 이 시기에, 과학은 국가 경쟁의 무기에서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묶어주는 의식의 촉매로 변모하고 있었다.
발달된 교통과 통신기술로 세계는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온 인류가 쉽게 왕래하고 소통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뜻하는 '지구촌'이라는 말처럼, 인류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소식을 알 수 있었고, 심지어는 소통도 가능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나 과학이 있었다.
20세기의 위대한 과학자를 떠올려보자. 수많은 이름이 떠오르겠지만, 이번에 소개할 인물들은 그 명단 안에 포함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다룰 내용은 앨런 튜링과 클로드 섀넌, 그리고 그들이 펼친 컴퓨터 과학의 세계이다.
매 순간 3명이 죽는 사상 최악의 위기에 처한 제 2차 세계대전. 절대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 ‘에니그마’로 인해 연합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결국 각 분야의 수재들을 모아 기밀 프로젝트 암호 해독팀을 가동한다.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은 암호 해독을 위한 특별한 기계를 발명하지만 24시간마다 바뀌는 완벽한 암호 체계 때문에 번번히 좌절하고 마는데... 과연, 앨런 튜링과 암호 해독팀은 암호를 풀고 전쟁의 승리를 끌어낼 수 있을까…?
-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시놉시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앨런 튜링의 독특한 성격과 행보, 그리고 나치 독일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그가 제작한 기계 장치를 떠올릴 것이다. 현대인의 눈에는 복잡한 장난감 퍼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전기·기계식 자동 컴퓨터의 가장 초기 형태였다. 튜링은 이 장치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논리 연산을 수행하는 자동화된 계산 기계로 활용해 암호를 해독하고자 했다.
케임브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그는 재학 시절 발표한 《결정문제에 적용하는 계산가능한 수에 관하여(1936)》에서 프로그래밍 언어와 알고리즘의 기반이 되는 ‘튜링 머신’ 개념을 제시했다. 이 논문은 이후 컴퓨터 공학 전체의 개념적 출발점이 된 역사적 전환점이되었다.
튜링은 컴퓨터 과학에 관한 많은 논문을 남겼지만, 그의 업적 가운데 핵심을 하나 꼽는다면, 컴퓨터를 단순 계산기가 아닌 ‘논리와 연산의 체계’로 규정하고 그 작동 원리를 수학적 언어로 정립했다는 점이다. 즉, 앨런 튜링은 컴퓨터의 개념을 제시한, 컴퓨터 과학계의 뉴턴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뉴턴과 같이 과학의 언어인 수학으로 설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암호 해독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이 튜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같은 시기, 미국의 전자공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클로드 섀넌은 벨 연구소에서 화기 제어 시스템과 암호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무렵 영국에서 암호 해석가로 일하던 튜링은 미국 암호 해석가들과 의견 교류를 위해 워싱턴을 방문했고, 그 자리에서 섀넌은 처음으로 튜링 머신 이론을 접하게 된다. 그는 즉시 자신의 연구와 튜링의 이론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당시 섀넌은 전기회로 설계, 스위치의 On·Off를 표현하는 이진수(0과 1), 그리고 그 조합을 이용한 연산 규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는 곧 디지털 논리회로를 정식화한 논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 클로드 섀넌은 이후 모든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가 따르게 되는 이론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 된다.
여기에 더해 클로드 섀넌은 ‘정보이론(Information Theory)’의 창시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정보이론 전체를 온전히 설명하려면 별도의 장이 필요할 만큼 방대한 내용이 필요하므로, 여기서는 핵심만 다루도록 하겠다.)
그 이전까지 ‘정보’라는 단어는 지식, 의미, 메시지처럼 측정할 수 없는 질적 개념이었다. 섀넌은 이를 ‘이진 숫자(Binary digit)’, 즉 ‘비트(bit)’로 정의함으로써 정보를 수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양적 개념으로 전환시켰다. 이로써 정보는 추상과 언어의 영역을 넘어, 과학적 분석이 가능한 독립된 개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수학은 원래 자연과학의 언어였다. 그렇다는 것은 수학화된 정보 역시 과학의 언어로서 통신, 컴퓨터, 물리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수학화된 정보가, 튜링이 설계한 컴퓨터라는 연산 장치와 결합하면서, 인류는 이전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전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튜링과 섀넌이 열어놓은 자동 정보처리장치, 즉 컴퓨터의 세계는 생각의 흐름을 외부 장치로 옮겨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세계였다. 이 세계에서 정보는 더 이상 무언가를 알려주는 ‘사실’에 머물지 않았다. 정보는 계산되고 저장되며, 점차 새로운 생태계를 구성하는 중심 소재가 되어갔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는 전자 회로 속에서 비트들로 반짝이며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망을 이루는 단계에 이른다. 바로, 인터넷의 도래다.
인터넷은 단순한 과학 기술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과학 이론들이 서로 교차하고 융합된 지식의 결정체였다.
정보를 수학적으로 정의하고 디지털화한 클로드 섀넌의 정보이론, 데이터를 블록 단위로 나누어 전달하는 패킷 교환 기술, 전자기 흐름을 다루는 전자공학, 계산의 구조를 설계한 전산학, 그리고 트랜지스터와 반도체를 가능케 한 양자역학과 물리학. 이 모든 과학들이 모여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인프라를 탄생시킨 것이다.
역사의 반복처럼, 인터넷 개발을 주도한 주체는 역시 군이었다. 냉전 시기 미국은 핵전쟁 상황에서도 끊김 없는 통신망이 필요했고, 그 결과 1969년 미국 고등방위연구계획국(ARPA)은 ‘ARPANET’이라는 패킷 교환 기반의 네트워크를 개발했다. 분산형 구조를 채택한 이 네트워크는 한 노드가 파괴되어도 전체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전쟁의 논리 속에서 태어난 이 기술은 놀라울 만큼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문명은 곧 이 기술을 다른 방향으로 선택했다. 과학자들과 연구자들은 ARPANET을 정보 공유와 협업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흐름은 학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개발한 World Wide Web(WWW)이 등장하면서 인터넷은 전 세계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3차 산업혁명. 바야흐로 정보화 시대의 개막이었다.
과학이 가져온 또 다른 산업혁명은, 또다시 문명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었다.
이번에 과학이 만들어준 세계는, 무기와 에너지가 아닌, 의식과 정보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제조업은 여전히 중요했지만, 부가가치의 핵심이 ‘물리적 생산’이 아니라 정보와 데이터에서 창출되기 시작했다. 여러 분야들이 디지털화되기 시작하며 금융, 소프트웨어, 컨설팅, 디자인, 미디어 산업들이 급성장했다. 또한 정보통신기술(ICT) 덕분에 생산, 유통, 관리가 전 세계적으로 실시간 연동됨에 따라 국가 간의 장벽을 허문, 다국적 기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맥도널드, 코카콜라, 애플, 나이키 같은 브랜드는 세계 어디서나 같은 로고·메뉴·상품을 제공했고, 이런 표준화된 소비 경험은 공통의 문화적 코드를 갖게 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문화는 민족이나 국가의 틀을 벗어나 활발하게 교류되기 시작했다. 한류, 할리우드, 일본 애니메이션 등 국가 간 문화 교류의 속도와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가며 사람들의 공감의 범위는 점차 넓어져갔다.
또한 전화, 팩스, 인터넷, 모바일 통신의 보급은 전 세계가 ‘즉시 연결’ 상태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시간·공간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실시간 소통·협업이 가능해졌고, 원격근무,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이 등장해, 해가 뜨면 일터에 나가고, 해가 지면 집에 들어온다는 고정적인 생활 패턴에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나 인터넷은 인류 문명에 이전에 없던 통합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인터넷이라는 하나의 ‘바다’ 속에서 함께 살아가며 온갖 정보들을 함께 공유하기 시작한 세상은 점점 더 좁아지기 시작했다.
좁아진 세상은 흩어져있는 지성과 의식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사람들은 모였고, 대화했으며, 논의하고 협의하고 합의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과학기술이 불러일으킨 놀라운 변화의 바람이었다.
이제 정보는 어디에나 넘쳐났다. 인터넷과 위성방송을 통해 누구나 전 세계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검열과 정보 독점이 약화되었다. 누구나 타국, 타 지역의 생활상이나 부조리들을 알 수 있었고 이는 시민운동과 국제연대를 가능케 했다.
인터넷은 사람들로 하여금 손쉽게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고, 그것은 사회적 선택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연결되었다. 이제 지식은 학교와 책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학습과 교육은 누군가와의 대면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인터넷은 사람들의 '선한 측면'과 '작은 노력'을 콘텐츠화 하여 제공할 수 있는 기술적 바탕이 되었다. 그러한 콘텐츠가 더 많이 공유될수록, 그러한 긍정적인 영향력은 사회적 약속이나 윤리, 규범 등이 발전해 나가는데 기여하기 시작했다.
또한 인터넷은 사회의 소수 계층에게만 허용되었던 표현과 행동을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는 창구가 되기도 했고, 올바른 정보활용을 통해 개인의 고유한 특성(개성, 지향성)을 발견해 내고 증폭시키는 데에 매우 유효적절한 기술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정보 공유의 세계 속에서 과학도 변하기 시작했다. 과학은 여전히 시한폭탄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하나 달라진 점이 있었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에 윤리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문명은 과학을 조심스럽게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좁아진 세계 덕분에, 예전처럼 과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던 시대는 끝났다. 인류는 하나의 바닷속에 함께 모여, 자신들을 이끌어온 과학의 방향을 다시 고민할 수 있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체결되고, 부분핵실험금지·전면핵실험금지 논의가 이어졌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간담 서늘한 기억과 체르노빌의 검은 구름은 과학이 통제 밖으로 흘러갈 때 무엇이 무너지는지 보여주었고, 인터넷은 그 사실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환경 회의와 기후 협약, 위험 평가와 윤리 심의, 공공 참여와 투명성 등 문명은 과학의 방향을 사회적으로 선택하기 위한 장치를 조금씩 만들어갔다.
과학기술은 또다시 문명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 기술 중 하나인 인터넷은 인간의 삶을 눈에 띄게 바꾸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한 편의성의 향상이 아니다. 과학기술이 가져온 새로운 시대와, 그 시대 속에서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보아야 한다. 인터넷은 본래 폐쇄된 군사용 통신 기술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인류는 그것을 정보 공유와 연결, 의식의 확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길을 선택했다.
인터넷은 단지 지식을 연결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고방식과 가치관, 사회 구조까지 변화시킨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정보와 지식은 국경을 넘기 시작했고, 시간과 공간의 경계는 무너졌으며, 사람들 사이의 왕래는 전례 없는 규모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인간은 처음으로, 전 세계가 하나의 문제를 동시에 고민하고 함께 꿈꿀 수 있는 통합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다양성에는 명과 암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는 동시에 새로운 어둠을 품고 있었다.
정보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진실을 덮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감시와 통제는 더욱 세밀하고 정교하게 진화해 갔고, 개인정보는 하나의 상품이 되었으며, 왜곡된 가치와 허위 정보가 빛보다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기술이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한 만큼, 또 다른 방식의 통제와 조작, 분열의 도구로도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쯤 되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며, 결국 인류의 선택이 문명의 방향을 결정한다.
우리는 지금,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또 한 번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공유할 것인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어떤 윤리를 따라야 하는가?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보다 깊은 질문,
정보보다 높은 사유,
시대보다 앞선 배움일 것이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정보들이 가득한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이 바다를 건너는 데 필요한 배는 과학기술과 지식이 마련해 주었지만, 이제는 단순히 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의미의 항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방향을 잡아줄 나침반이며, 공존과 조화의 질서—즉 코스모스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 이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 줄 모두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 과학은 기술과 함께 인간의 생각과 삶의 방식, 그리고 존재의 방식까지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는 분명하다.
코스모스의 회복. 아니, 어쩌면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코스모스의 건설.
과학은 앞으로도 그 길을 밝히는 첫 별빛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과학은,
그 본질부터 이미,
코스모스로부터 태어난 학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