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는 과학을 낳았고,
과학은 문명을 이끌었으며,
문명은 다시 코스모스를 향해 나아간다.
인류의 불완전함은 오늘날 우리의 의식 변화를 통해 완전함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앞서 살펴본 여정을 통해 우리는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 과학이라는 거대한 수레를 끌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수레는 아무도 멈추지 않았고, 멈출 수도 없었다. 과학이 담고 있는 지식은 생존을 담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 수레는 더 이상 바깥을 향해 달리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수레를 밀어온 ‘우리 자신’이 변화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과학은 수차례의 혁명을 이끌어내며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왔다. 고인류에게 코스모스를 관측하는 행위가 곧 과학이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문명의 토대를 놓았던 농업혁명 또한 과학이 낳은 혁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농업혁명 이전에도 호모 사피엔스는 이미 한 차례 놀라운 전환을 경험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규정한 ‘허구를 믿는 능력의 탄생’이라 불리는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이 그것이다.
인지혁명은 인류학과 진화심리학에서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일어난,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시기를 가리킨다. 그전까지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다른 인류 종과 기술이나 사회 구조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인지혁명 이후 인류는 복잡한 언어와 추상적 사고, 그리고 대규모 협력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이는 다른 종을 압도하는 결정적 우위를 부여했다.
허구를 상상하고 말하며 상징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인류는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 과거와 미래, 그리고 가상의 사건까지 설명하는 복잡한 문장을 구사하게 되었다. 이는 집단 내부의 정보 공유와 규범 형성을 가능하게 했고, 상징과 추상적 사고는 동굴 벽화, 조각, 장신구와 같은 예술품을 낳았다. 종교와 신화 같은 허구적 서사 역시 이 시기에 탄생해 공동의 믿음과 상상력을 형성했다.
이 능력은 고인류가 친족을 넘어 ‘공동 신념’과 ‘집단 정체성’을 기반으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었고, 결국 더 크고 복잡한 공동체, 곧 문명의 씨앗을 틔우게 했다.
거대한 의식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 인지혁명이 오래전에 있었던 한 차례의 사건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르네상스 시기 인류는 과학혁명을 통해 또 다른 의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나는 이 시기의 의식 전환을 인류의 ‘2차 인지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2차 인지혁명’은 학문적 용어가 아니라, 인류 의식의 역사적 전환을 설명하기 임의로 차용한 명칭이다.)
이성 중심의 세계관이 자리 잡으면서, 신 중심의 질서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처럼, 존재의 근거를 이성에 두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인류에게 자연은 더 이상 신의 신비가 아니라 이해·예측·통제 가능한 체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등이 ‘코스모스의 수학적 질서’를 발견했고, 이는 사회와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정치는 권위의 정당성이 전통에서 합리적 논증으로 이동했고, 경제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상업·산업 구조의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철학에서는 실증적 방법론이 윤리와 정치철학에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1차 인지혁명이 “무엇이 진리인가?”라는 질문을 신화와 이야기로 풀어냈다면, 2차 인지혁명은 “무엇이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실험과 수학으로 검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2차 인지혁명은 인간이 신의 언어로 쓰인 책을 읽는 시대에서, 자연의 언어로 쓰인 수학의 책을 읽는 시대로 나아간 순간이었다.
과학은 농업혁명과 네 차례의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과학은 2차 인지혁명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인류는 코스모스의 회복을 위해 또다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에 과학이 이끌어내야 할 혁명은, 문명이 맞이해야 할 혁명은 5차 산업혁명이 아닐 것 같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은 기술의 진보를 넘어 인류의 의식과 가치 체계가 근본적으로 전환되는 또 다른 혁명, 이른바 ‘3차 인지혁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이 담고자 했던 내용은 단순히 문명의 변화와 과학의 역사를 따라가는 기록이 아니었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코스모스를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였고, 그 코스모스를 되찾기 위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과학은 인간과 문명을 바꾸었다. 문명은 한때 길을 잃고 코스모스를 잊었지만, 이제 우리는 다시 그것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다. 그 목전에서 우리는 인류의 문명과 과학을 다시 돌이켜보았다.
이제 우리에게는 ‘과학기술’이라는, 이전에는 없었던 큰 힘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힘에 걸맞은 ‘성숙한 문명’을 향한 책임을 짊어져야 할 차례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인간이 과학과 문명을 이끌어야 할 차례이다. 보다 정밀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내면이 더욱 성숙해짐으로써 과학과 문명의 다음 방향을 이끌어야 한다.
진보는 언제나 쌍방향이었다. 우리가 도구를 만들었고, 그 도구가 우리를 바꾸었다.
그러나 긴 인류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의식이 깨어 있지 않으면 도구는 무기가 되고 진보는 파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앎이 단순한 지식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힘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그러니 3차 인지혁명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일으키는 것’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의식을 가진 존재인 우리가 의식적으로 변화를 위한 행동을 옮기는 것, 그것이 다음 혁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재료를 찾는다면, 이번에는 또 다른 코스모스의 학문을 소개해볼까 한다. 그것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우주와 자연, 다시 말해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터득해 온 학문이기도 하다.
3장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학문은 ‘인문’, 곧 인간의 문화이며, 그것의 뿌리인 철학이다. ‘지혜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가진 철학만큼 인간 내면의 성숙을 이끌 학문이 또 있을까 싶다. 인간의 존재를 깊이 사유하는 만큼, 그 사유는 코스모스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도 닮아 있다. 그러니 철학 속에는 분명 코스모스를 향한 열망을 실행할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과학의 성장을 막고 있지 않다.
과학 또한 우리를 통제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는 그것을 넘어, 서로를 이끌어야 할 차례이다.
내면의 변화가 이끌어낸 새로운 가치관과 인식은 또 다른 과학과 문명의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그 과학과 문명의 모습은 인류를 더 나은 존재로 인도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절벽 끝에 서 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장은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설계의 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설계란 단지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리고 그 설계를 위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돌아보며, 변화와 회복을 위한 힘을 스스로 내재시키려 한다.
우리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과학을, 문명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그렇게 해서 다시, 코스모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