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2)
미래 세대, 미래의 존재를 위한 책임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담과 부당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힘과 책임이 서로 비례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부당함이 아니라 마땅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자. 과거의 세대는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쳐 왔을까.
과거의 세대가 가진 힘이 작았을 때, 그들이 다음 세대에 미친 영향 역시 제한적이었다. 예컨대 윤리가 막 형성되기 시작했던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그들이 가진 기술이 다음 세대를 위협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 사회가 후대에 남길 수 있었던 영향은 정치, 사회, 질서와 같은 비교적 제한된 영역에 머물렀다. 그러니 그들이 짊어져야 할 윤리적 책임 또한 그 범위 안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과거의 세대가 충분한 책임 없이 남긴 결과가 다음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원자폭탄의 사용은 전쟁의 참상과 그 후유증을 당사자들뿐 아니라 후대에도 남겼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경우도 떠올려 보자. 대한민국을 잿더미로 만들었던 6·25 전쟁 이후, 세계 최빈국의 지위를 감당해야 했던 이들은 전쟁을 일으킨 세대만이 아니라, 그 이후를 살아가야 했던 세대였다.
이제 우리가 가진 힘은 불과 수십 년 전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우리는 대량살상의 능력을 넘어, 기후를 변화시키고, 생태계를 뒤흔들며, 나아가 존재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힘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만약 그러한 힘이 현실에서 파괴적으로 작동하게 된다면,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할 존재는 우리가 아니라 미래의 세대, 즉 우리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이 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인류의 미래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인식은 더 이상 추상적인 경고가 아니라, 낙관을 허용하지 않는 분명한 공포로써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힘에 대해 다시 성찰하고, 그것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나는 인간에게 두 가지 종류의 힘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첫째는, 여전히 우리가 놓지 못하고 있는 파괴적인 힘이다.
과학, 기술과 결합한 형태로 드러나는 이 힘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손에 쥐어져 있었으며, 편의와 효율, 합리성이라는 이유 아래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힘이다.
둘째는,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힘이다.
이 힘은 철학과 윤리의 형태로 우리 가까이에 존재해 왔으며, 그 자체로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요구하는 불편함 때문에 종종 외면되어 온 힘이다.
첫 번째 힘은 우리가 성찰해야 할 힘이고,
두 번째 힘은 우리가 다시 발견해야 할 힘이다.
첫 번째 힘은 우리 외부에 작용하는 힘이며,
두 번째 힘은 우리 내면에 잠재된 힘이다.
첫 번째 힘이 물질적 혁명을 이끌어 왔다면,
두 번째 힘은 우리가 맞이해야 할 ‘3차 인지혁명’을 가능하게 할 기반이 될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향해 “왜 그렇게 행동해서 오늘의 세계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라고 따져 물을 수 없다. 미래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우리에게 어떠한 요구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불공정한 관계 속에 놓이게 된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그리고 미래는 우리가 남긴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연장선 위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그 가능성을 사유할 수 있는 존재다. 그렇기에 우리는 책임의 주체이자, 동시에 행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바로 앞서 말한 두 번째 힘이다.
그것이 바로 철학이며, 윤리이다.
한스 요나스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대신 우리에게 책임이 작동해야 할 원리와, 윤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행위해야 하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간이 스스로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던 니체의 철학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창조해낸 가치가 우리를, 그리고 이 세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가?”
아마 니체가 요나스와 함께 이 시대의 윤리를 말한다면,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위 질문은 다시 코스모스로 이어진다.
코스모스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질서이자 조화였으며, 수많은 존재가 공존하는 구조였다. 인간이 그 질서를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그 질서에 개입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동시에 그것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존재가 되었다.
코스모스에서 비롯된 존재이자, 코스모스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 우리는 이 질서를 지키고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니 코스모스적 질서에서 벗어나고 있는 우리는, 다시 그 질서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연과 우주를 상징하는 코스모스를 지킨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곧 공존과 조화의 질서를 따르는, 보다 보편적이고 확장된 윤리로 나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간, 과학, 윤리는 이제 하나의 완벽한 삼각 관계를 이루었다.
코스모스의 일부인 인간, 그 코스모스를 이해하기 위해 발전해 온 과학, 그리고 그 과학의 방향을 결정하는 윤리.
인류의 문명은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발전해 왔다. 그러나 그 도구가 향하는 방향은 윤리가 결정하며, 그 윤리의 방향은 요나스가 말한 ‘책임’에 의해 규정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실제로 실행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이 세 가지가 맞물릴 때, 우리는 온전히 코스모스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철학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가치의 창조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창조가 나아가야 할 방향 또한 제시받았다.
그렇다면 인류가 코스모스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모두 갖추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방향성 있는 창조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코스모스의 회복을 위해, 인류와 문명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말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코스모스를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설계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