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혁명(1)

# 3-5(1)

by 더블윤
"대규모 협력은 공동의 신화를 믿는 능력에 기반한다.”

- 유발 하라리


2026년 3월 3일 촬영된 '개기월식'과 사자자리의 베타성 '데네볼라' (Photo by. 더블윤)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쫓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문명의 역사나 과학사, 철학사를 따라가 보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 발자취를 따라가며 우리가 잊었던 것, 잃어버렸던 것, 다시 되찾아야 할 것을 알아보고자 함이었고, 나아가 한 번도 얻어보지 못했던 것, 바라본 적 없었던 것을 깨닫기 위함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최초의 철학을 탐구했던 저변에는 코스모스를 이해하기 위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이해하기 위해 쌓아온 지혜는 더욱 근본적인 것,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인간의 윤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지혜가 바로 그들이 발전시켜 온 철학이었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우리의 삶에 즉각적인 실용적 지식을 더해주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를 안다고 하여 수학 문제를 더 잘 풀게 되는 것이 아니고, 칸트나 니체의 사유를 공부한다고 해서 경제학이나 물리학의 박사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철학에는 다른 학문에 담겨 있지 않은 지혜가 존재한다.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지혜이며,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이고, 타인과 나, 다시 말해 인류의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게 만드는 지혜이다.
이 세계,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 땅을 포함한 광활한 코스모스 속에서 오로지 지식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철학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만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눈부신 과학기술 문명을 이룩했지만, 이 문명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그것은 부유하거나 건강한 삶일 수도 있고, 명예나 존중과 같이 보이지 않는 가치로 가득한 삶일 수도 있다. 그 삶이 무엇이 되었든 나아지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역시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변화는 개인의 삶에 머물러 있지 않다. 나는 모든 인류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가기를 소망하며, 그 실현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작은 변화가 아닌, 커다랗고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혁명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


지구상의 모든 혁명은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의 삶을 변화시켜왔다. 그 가운데 보이지 않은 혁명이 있다 한다면, 유발 하라리가 제안했던 ‘인지혁명’이 될 것 같다.
이미 3장의 도입부에서 언급한 바가 있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이 보이지 않는 의식의 혁명은 꽤나 강력하게 작용했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공동체가 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일조했다.
과학혁명 시기의 인간의 의식 변화는 어떠한가. 과학혁명을 겪으며 사람들의 의식은 이성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의식의 전환이 탐구와 실험의 기반이 되었고,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다고 말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 인지혁명은 물질적인 혁명보다도 강력하게 작용한다. 먼 옛날, 고인류의 인지혁명이 농업혁명과 문명 창조의 기반이 되었고, 과학혁명과 함께 일어난 2차 인지혁명이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렸다고 생각한다면, 분명히 그러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에겐 변화가 필요하다. 인류의 발자취를 보아도, 과학사와 그것이 이끌었던 문명의 역사를 보아도, 현재의 우리는 분명한 붕괴의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전쟁, 기아 등의 문제나 사회적 갈등과 같은 현상에 머물러 있지 않다. 과학이 이끈 문명의 역사는, 우리를 포함한 지구 위의 생명을 모조리 말살시킬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해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위기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가족,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겪게 될 위기이며, 아직 만나보지 못한 미래의 인류가 처하게 될 위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의 이 세계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코스모스를 바라보던 인류의 역사는 우리를 끝으로 막을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치유의 기회는,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안에 내재되어 있으며, 변화가 가진 놀라운 힘이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가 겪을 또 다른 인지혁명을 통해 발현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변화가 무엇인지, 또 다른 인지혁명이란 무엇인지 탐구해 볼 차례다.
이전의 인지혁명이 가져다준, 고대로부터 이어진 상상력과 이성적 사고를 동원하여 또 다른 인지혁명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인지혁명에 대한 이해


인지(認知,Cognition)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대상을 분별하여 판단하여 아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인지혁명이란 무엇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유발하라리가 제안한 ‘인지혁명’에선 인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집단이 함께 믿으면 ‘현실처럼 작동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이라고 말한다.
문장의 의미가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유발하라리는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아주 기발한 예시를 들었다. 그가 들은 예시 중 하나는 바로 ‘코카콜라’였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이 책은 인지혁명에서 출발한 호모 사피엔스의 연대기 속에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코카콜라’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연계 어디에서도 우리가 코카콜라라고 부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소리일까?

코카콜라를 분해해 보면 두 층위가 있다. 설탕물과 향료, 그리고 카페인이 첨가된 음료라는 물리적 실체가 있고, 코카콜라라는 브랜드가 지닌 상징성이 있다. 하지만 코카콜라라는 브랜드의 상징성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는 코카콜라의 존재를 인식한다. 향료가 첨가된 검은색 탄산음료를 보며 우리는 “이건 설탕이 첨가된 탄산 음료다”라 말하지 않고 “이건 코카콜라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브랜드를 특별하다고 말하며 그 상징적 의미를 인식하고 공유한다.
다시말해, 코카콜라의 브랜드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코카콜라가 가진 의미를 공유하고 그 의미를 기준으로 구매하고 선호하는 등 실제 행동을 한다. 이것이 바로 유발 하라리가 말한 공유된 허구이며 인지혁명의 핵심이었다.

허구를 상상하고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은 신화와 종교가 되며 공동체의 대규모 협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것은 인간이 가진 인지력의 가장 급진적인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능력은 문명 탄생으로 이어지며 인간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당시 고인류가 어떻게 그렇게 갑작스러운 인지력 향상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과학혁명과 함께 일어난 2차 인지혁명에 관해서는 그 발생 원인과 과정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첫 번째 인지혁명의 핵심이 허구와 상상이었다면, 두 번째 인지혁명의 핵심은 논리와 이성이라 할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로 이어진 과학혁명의 시작과 함께, 사람들은 관측과 실험, 그리고 증명만이 이 세계를 오차 없이 설명해 줄 수 있음을 통감하게 되었다.
또한 프랜시스 베이컨이 완성시킨 귀납법은 관찰과 실험 해석을 ‘과학의 방법’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고, 사람들이 어떠한 현상을 바라볼 때 이성과 논리로 먼저 접근하게 되는 기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당시 유럽 곳곳의 고등교육기관(대학)들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들이 배우던 고대 그리스 철학과 그 안의 논리학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질문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원인을 모른 채로는 어떤 결과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지배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자연계가 작동하는 데에는 항상 뭔가 원인이 있다. 그것이 법칙이다.”

- 프랜시스 베이컨


내가 이것을 2차 인지혁명이라 부르고자 하는 이유는, 그 이후 인간이 해석적이고 분석적인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자연현상에서 규칙성을 볼 수 있는 인지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으며, 그 인지력의 향상이 인류 문명을 극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2차 인지혁명의 핵심적인 재료는 바로 과학이었다.

물론 2차 인지혁명이 한순간에 발생한 인지력 향상의 단계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과학혁명 안에는 경험주의, 수학화, 반증 가능성 등 수많은 층위의 요소들이 다양하게 결합했고, 인간은 분명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 다른 종류의 인지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왔다. 이성 중심의 사고를 말하는 2차 인지혁명이라는 구분은, 단지 그것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여러 사람들에게 공유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부 차용한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인지혁명’이라는 개념을 쉽게 놓지는 못하겠다. ‘혁명’이라는 단어에 담긴 뜻이 의미하는 바처럼, 우리에겐 근본적이고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그 변화의 근원에는 우리의 의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오늘날의 우리도 이 세상의 현상들을 해석하고 분석하며 이해할 수 있다. 이는 2차 인지혁명에서 이어진 우리의 인지력을 통해 이 자연계의 규칙들과 법칙들을 이성과 논리의 시선으로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는 과학을 통해 문명과 이 세상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