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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가 가진 잠재력은 항상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허구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도 대단하지만, 그 인지 능력이 더욱 발전해 나갔다는 사실을 보아도 그러하다. 분명, 우리가 가진 인지 능력(이하, 인지력)은 기존의 대상에 대한 이해를 훼손하지 않은 채로 다른 종류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인지력은 뇌의 성장과 함께 발달되어 간다. 유아기의 인간은 눈에 보이는 대상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성장기를 거쳐 가며 추상적인 대상에 대한 이해력이 깊어져 간다.
또한 인지력은 경험과 학습을 통해 강화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로, 경험이나 교육을 통해 감수성(어떠한 현상이나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향상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이처럼 인지력은 고정되어 있는 능력이 아니다. 인간의 인지력은 시기를 건너, 그리고 시대를 건너 점진적으로 나아지고 발전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더욱 구체적인 예로 ‘성인지 감수성’을 들어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여기서부터는 약간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대체로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능력을 뜻하는 말로, 주로 법·사회 관련된 용어로 사용된다.
이 용어가 생소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여성대회에서 사용된 용어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2018년 4월 대법원 판결에 이 용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 용어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니 말이다.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 대법원 2018.4.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회 모든 영역에서 법령, 정책, 관습 및 각종 제도 등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 능력을 증진시키는 교육(이하 “성인지 교육”이라 한다)을 전체 소속 공무원 등에게 실시하여야 한다.“ <개정 2018. 12. 18.>
- 양성평등기본법 제18조 1항
대법원 판례의 영향이었을까, 2018년 12월에 개정된 양성평등기본법에 의해 공공기관 근무자에 대한 성인지 교육이 의무화되었다.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군(軍) 조직에도 그 교육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반응은 다른 의미로 ‘폭발적’이었다.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불만의 대부분은 “남성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낙인찍어 남성혐오를 조장하고 성갈등을 부추긴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에도 바쁜 군인들에게 이러한 부적절한, 또는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교육을 강요하며, 그것을 듣지 않으면 인사상의 불이익이 가해진다는 사실 자체가 군인들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불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들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였었다.
여전히 지금도 매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이 교육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교육 이수에 대한 적극성과는 별개로, 성인지 교육의 필요성과 유익성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의견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변화는 소리 없이, 그리고 홀연히 조직 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성인지 교육이 처음 실시되었을 무렵 군내 대다수의 남성들은 여성들과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은 실수로라도 성희롱, 성폭력 관련 사건·사고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일명 ‘펜스룰(Pence Rule)’이라 불리는 행동 양식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펜스룰’이란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이 공화당 하원의원 시절 2022년 미국 의회 전문지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직장 내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을 위해 아내 외의 여성과는 단둘이서 식사도 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한 것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의중처럼, 군의 지휘관을 비롯한 대부분 남성들이 여성과의 접촉 자체를 분리하는 것을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은 효과적인 해결책이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는 “우리를 잠재적 가해자로 만들지 말라.”라고 했던 남성 스스로가 ‘잠재적 가해자인 것 마냥 도피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자신이 가진 이성과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불신하는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교육은 길을 만들어냈다. 햇수가 더해지고 성인지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군의 많은 조직원들은 ‘양성 평등’이 가진 의미를 더욱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성인지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엔 당연시 여겨졌던 것들을 문제로 만든다.”라거나 “젠더 갈등을 심화화시킨다.”라는 시선에서 벗어나, 조직과 위계 상황 속에서의 ‘약자’ 그 자체를 이해하는 시선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약자’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을 주목하기보다는, 상황과 맥락 자체에 대해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성인지 교육을 통해 “잠재적 행위자, 또는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이렇게 해야겠다.”를 배우려 하지 않았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개입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인식이 많아졌다.
또한 교육은 고정되어 있던 통념을 깨주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사례를 제시하여 조직 내 남성과 여성 근무자 모두의 공감을 이끌었으며, 이는 젠더 간 균형된 화합을 이루어주는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더불어 성인지 감수성이 향상되어 갔던 것은 피교육자뿐만이 아니었다. 성인지 교육을 실시하는 주체의 감수성도 나날이 향상되어 갔다.
내가 이것을 느꼈던 것은 우연한 계기로 성인지 교육 교관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성평등가족부(구 여성가족부) 산하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전문 강사 교육을 받았었는데, 그때 교관(강사)으로서의 주의점에 대한 교육도 함께 진행되었다. 그 교육의 대부분의 내용은 교관의 입을 통해 성차별적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남성들은 잠재적 행위자처럼 묘사하지 말아라.”, “행위자나 피해자는 이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주지 말아라.”, “남성 피해자나 동성 간 성폭력도 존재한다는 것은 명확하게 인지시켜라.”와 같은 것들이다.
실제로 이전에 행해져 왔던 성인지 교육에서 대부분 행위자를 남성으로 고정시켜 놓고 교육이 실시되었던 경향이 있었기에 많은 이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허나 시간이 지나며 수많은 전문 인력들이 교육 내용을 검토하고 매년 개정해 나갔고, 축적되는 통계 자료와 실제적인 법리 해석 자료들은 교육 내용을 보다 섬세하게 다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아마 아직도 양성 평등을 위한 성인지 교육은 완전하지 못할 것이다. 교육 내용도 더욱 발전해 나갈 여지가 있고, 아직까지도 이 사회에서는 수많은 성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속한 조직에서, 각 조직의 구성원들이 크고 작은 의식과 태도의 전환을 이루어 내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의식의 전환을 이끈 교육 자체도 스스로 감수성을 높여가는 모습도 목격했다.
그러니 나는 이 ‘성인지 교육’에 대해 더 이상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여전히 더 큰 변화를 이끌 가능성이 있는 교육으로 바라보고 있다.
(허나 이는 개인적인 의견이며, 글의 논지 자체가 인지력 향상의 영향을 말하고자 함이지 '성인지 교육'의 찬반에 대한 논의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이렇게 길게 개인의 경험과 성인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는 성인지 교육의 핵심 목표 또한 ‘성인지력’ 향상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경험한 인지력 향상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내 주장에 신빙성이라는 무게를 실어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확실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바,
인지력이 높아질수록, 우리의 의식과 태도는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성 관련 인지력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