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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
- 임마누엘 칸트
지금까지 인류는 다양한 가치를 중심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개인주의, 더 많은 성취와 풍요를 추구하는 물질적 가치, 그리고 효율과 속도를 중심으로 한 합리성의 가치가 그것이다.
이러한 가치들은 분명 문명을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 가치들은 하나의 공통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기준이 인간 내부의 욕망과 단기적 결과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반드시 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더 빠르고 멀리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방향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떠오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만들어낸 이 문명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가”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옳은 길로 가고 있는가”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점검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성찰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코스모스적 윤리의 출발점이 된다.
코스모스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요소가 상호작용하며 유지되는 하나의 체계이며, 그 체계는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모든 천체는 서로의 계를 침범하지 않은 채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고, 어느 행성은 그 균형을 유지한 채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명체를 품어냈다.
이러한 질서는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존재가 지속되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윤리는 더 이상 “도덕적으로 지키면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의미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를 지속시키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윤리는 규범이 아니라 존재의 가능성을 유지하는 설계 원리가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윤리적 의식을 들여다보자.
“과연 우리는 우리의 존재 가능성을 유지시킬 수 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가 가진 윤리적 가치관은 비교적 어릴 때부터 학습되고 설계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장 과정에서 “친구들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 기본적인 윤리관을 교육받고 배우기 시작한다. 또한 규칙과 규범 속에서 생활하며, 법치사회에 대해 이해해 나감과 동시에 특정 질서를 어지럽히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하지만 이런 윤리에 대한 교육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학교 교육에서는 비인기 선택 과목으로 밀려나고, 실생활에서 거의 쓸모가 없는(또는 알아봤자 걸림돌이 되는) 학문으로 여겨지기 일쑤이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윤리적 가치관은 어릴 적 형성되었던 것, 또는 사회 경험이나 미디어 등을 통해 습득한 단편적인 가치관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벼운 윤리’는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가르쳐 줄 힘이 부족하며, 우리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 내가 가진 윤리적 가치관이 너무나 가벼워 나를 제어할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개개인이 가진 윤리적 가치관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 된다는 점에서 ‘양심(良心)’이라는 용어로 쓰이곤 한다. 한자어를 풀이하면 ‘착하고 좋은 마음씨’이니 스스로를 “나는 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과감하게 ‘비양심(非良心) 사회’라고 말하고자 한다. 보다 엄밀히 표현하면, 우리 사회는 우리의 존재를 지속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착하지는 않은’ 사회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가벼운 윤리’에서 시작된다.
이 사회 안에서 우리는 어릴 적 형성된 기본적 윤리관에 머물러, 나와 타자, 눈앞에 있거나 일정 집단 안에 속한 사람들 간의 관계에 집중된 윤리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에 대해서는 나의 ‘양심’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법과 규율 등이 사회적 강압인 ‘처벌’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심리적 반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정 질서를 유지하는 이유가 개인의 윤리적 가치관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처벌받지 않기 위한 선택에 가까워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의 부재와 배움의 상실을 통해 더욱 심화된다. 우리는 때때로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인성이다.”라고 말하곤 하지만, 정작 그것을 진지하게 교육하려 하거나 스스로 배우고 내면화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의 물질적 성취와 눈에 보이는 사회적 이미지일 뿐, 우리 내면이 우리라는 존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이 가벼운 윤리만으로도 충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윤리는 코스모스가 결여되어 있으며, 우리라는 존재의 지속성을 유지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가 외면하는 수많은 문제들(전쟁, 기아, 빈부격차, 기후 위기, 생물종의 멸종 등)을 떠올려 보면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우리가 이 사회를 이루고 있으니,
어떻게 이 사회를 ‘양심적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