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전이

1-1. 배움의 기원(3)

by 더블윤

감각과 기억, 반응과 조절은 다세포 생물로 하여금 더 넓고, 더 복잡한 세계에 맞설 수 있게 만들었다.
진화가 거듭될수록 생물의 종은 다양해졌고, 그에 따라 새로운 먹잇감과 다양한 전략의 포식자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의 환경 역시 점점 더 복잡해졌고, 생존을 위한 생명의 진화는 필연적인 일이 되었다.

점점 더 많은 자극이 다양한 방향에서 동시에 밀려들었고,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감각은 생명의 한 지점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먹이를 먼저 감지하고, 방향을 판단하며, 위협을 빠르게 포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지점은 바로 ‘머리’라는 개념의 시작이었다.
감각이 모이고 정보가 축적되자, 그것을 처리할 ‘중심’이 필요해졌다.

그렇게 생명은 머리를 만들었고, 여러 감각 기관을 그 안에 담았으며, 그 중심에는 더욱 진화된 뇌가 자리 잡았다.




초기 생물의 뇌는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자극 이전의 판단’을 위한 구조였고, 배움의 방향을 통합하고 조절할 수 있는 최초의 중심이었다.
이 순간부터 생명은 정보를 ‘흘려보내는 존재’에서, 모으고 처리하며 선택하는 존재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선택을 시작한 생물의 뇌는 점차 정교해지고 발달해 갔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그 세계 안에서 배움은 개별 존재의 생존을 넘어, 집단과 세대에 걸쳐 확장되는 과정으로 진화해 갔다.




하이코우이크티스 / (이미지 출처 : BBC 다큐멘터리 'Walking with Monsters')

약 5억 년 전 캄브리아기, 무리를 지어 바닷속을 헤엄치던 '하이코우이크티스(Haikouichthys)'는 초기 척삭동물이자 어류의 조상이며, 최초의 척추동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포식자로부터 보호받고, 사냥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군집 행동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생존 경험은 행동을 바꾸고, 반복을 통해 습관화되었으며, 그 습관은 무리 속 행동의 일부가 되었다.
그들에게는 아직 ‘공유된 지식’은 없었지만, 공유된 반응의 흐름, 즉 ‘배움의 원초적 집단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 생존의 경험과 기억은 이후 등장한 수많은 척추동물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집단적 배움은 척추동물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약 1억 5천만 년 전, 일부 곤충은 왕, 여왕, 일개미, 병정 등 역할이 분화된 ‘진사회성 구조’를 진화시켰다.
이들은 개체보다 집단의 생존을 우선시했다.
여기서 처음으로 ‘개체를 넘어선 목적’, 즉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협동이라는 개념이 자연에 등장했다.
그러나 뇌를 충분히 발달시키지 못한 곤충의 사회 구성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 배움과 집단행동, 공동체적 행위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결정된 본능이었다. 즉, 경험이나 기억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거나 변형되지 못했다.
세대가 지나도 그들은 늘 같은 방식으로 일했고, 새로운 길을 묻지도, 다른 내일을 상상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들이 극한까지 진화시킨 공동체 조직화가, 오히려 그들의 진화를 멈추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반면, 척추동물은 뇌의 진화를 꾸준히 이어갔다.
약 6천만 년 전, 포유류가 다양화되면서 모성애, 가족 단위의 보호, 무리 사냥이 등장했다.
특히 영장류, 코끼리, 늑대, 돌고래 등 고등 포유류에게서는 사회적 유대와 집단 내 배움의 전이가 관찰된다.
복잡하게 발달한 뇌신경은 그들에게 공동체의 위계질서, 얼굴 인식, 동료의 감정 판단, 공동 양육 등을 가능하게 했다.
발달된 뇌와 집단행동은 그들 공동체의 풍요와 생존을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되었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진정한 '배움'이 시작되었다.




진화사 속에서 ‘배움’은 이제 단순한 개체의 적응이 아닌, 무리 전체 혹은 다음 세대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개체 또는 무리는 어떤 행위를 경험을 통해 습득했고, 그 행위는 관찰, 모방, 가르침 등을 통해 다른 개체에게 전달되었다.
그 배움은 집단 안에 축적되거나 세대 간에 전승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이며, 배움이 경험의 외부화와 전승으로 나아간 첫 출발점이었다.

무리를 지어 사는 습성은 공동체 배움의 전이에 효과적인 배경이 되었다.


1950년대 일본의 고지마섬.
영장류를 연구하던 학자들은 원숭이들에게 흙이 묻은 고구마를 나누어 주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원숭이들이 손으로 흙을 털거나 몸에 비벼 먹었다.
그때, 한 어린 암컷 원숭이 ‘이모’가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기 시작했다.
이 행동은 주변 원숭이들에게 모방을 통해 퍼져나갔고, 어린 원숭이들과 암컷 원숭이를 중심으로 고구마를 씻어 먹는 행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몇 년 뒤, 고지마섬의 모든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씻어 먹게 되었고, 어미가 새끼에게 그 방법을 가르치는 모습까지 관찰되었다.
‘이모 효과(100번째 원숭이 이론)’로도 잘 알려진 이 연구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생물의 개체 경험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세대 전승까지 이어지는 좋은 사례다.

이 외에도 동물군 내에서 모방과 가르침을 통한 배움의 전이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에서 관찰된다.
침팬지는 막대를 사용해 개미를 꺼내 먹고, 고래는 노래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늑대나 코끼리는 무리 안에서 역할과 규칙을 배운다.
뉴칼레도니아 까마귀(Corvus moneduloides)는 나뭇가지를 꺾어 굽히거나 갈고리 형태로 만들어 도구로 사용한다.
도구 제작 기술은 지역마다 다르고,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모방을 통해 전승된다.
즉, 까마귀 집단마다 고유한 ‘도구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의 핵심은 단순한 조건 반사나 유전적 본능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학습, 타 개체로부터의 모방, 상황 판단과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는 실로 놀라운 현상이다. 생명의 배움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움’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그 결과 일종의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성은 생명이 정보를 나누고, 경험을 전이하며,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이어온 역사다.
그것은 생명이 세계와 맺어온 가장 오래된 대화 방식이었고, 그 대화가 깊어질수록 생명은 더욱 유연하고 정교해졌으며, 마침내 ‘의미’와 ‘의도’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생명의 역사 속에서 배움이 ‘개인의 반응’에서 ‘공동체의 기억’으로 전환되는 순간, 그 생명은 문화를 지닌 존재, 즉 ‘문명 이전의 문명을 가진 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명은, 그렇게 시작된 ‘문명 이전의 문명’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진화와 함께 축적된 생명의 배움은 마침내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스스로를 가르치고, 다음 세대를 교육하며, 세계를 바꾸는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바로, 인간의 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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