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배움의 기원(4)
지구의 시간을 다시 거꾸로 되돌려 6천5백만 년 전 백악기 말기로 돌아가보자.
우주를 가로질러 날아온 지름 10km가 넘는 거대한 크기의 소행성이 시속 7만 km로 지구를 강타했다. 그 충돌 에너지는 수십억 개 핵폭탄이 동시에 터진 것과 같았고 엄청난 열과 압력이 주변을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바다의 물은 드높게 치솟아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켰고, 수많은 먼지와 재, 유황 화합물이 대기로 퍼져 나가 태양빛을 차단했다. 이는 지구 전체가 오랜 시간 동안 어두운 겨울에 빠져들게 만들었으며, 그 기나긴 겨울은 어떠한 생물종도 생존을 위한 적응을 할 기회를 허락지 않았다.
결국 생명의 순환 사슬이 무너져 내리며 지구 생물종의 약 75%가 이 끔찍한 대재앙에 사라져 버렸다.
1억 6천만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구에 거대 파충류의 왕국이라는 세계를 건설한 공룡은, 그들의 진화를 거기서 끝내야만 했다.
그 이후 몇만 년 동안 지구는 예전모습을 되찾을 수 없었다. 폐허가 된 지구 위엔 그 어떤 생명도 더 이상 뿌리내리지 못할 듯 보였다. 하지만 지구의 전체를 덮고 있던 먼지가 가라앉자, 그 위엔 놀랍게도 초록색 대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숲이 사라진 광활한 빈 땅을 풀들이 채워나갔고 포자를 퍼트린 양치식물과 강인한 침엽수들은 새로운 숲을 형성해 갔다. 식물의 재등장은 곧 생태계의 재순환을 예고했다. 그리고 이전엔 어둠 속에서 작은 몸을 숨겨왔던 보잘것없는 종이 주인 없는 빈 땅을 점령해 나가기 시작했다.
포유류는 환경이 급격히 악화된 지구에서도 유연하고 영리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존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의 작은 몸집은 적은 식량 필요로 했고, 다양한 은신처에 숨을 수 있었다. 그들의 혈관에 흐르는 따뜻한 피는 기후 급변에도 내부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보잘것없는 능력이라 여겼던 그들의 생존전략은 파괴적인 대멸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고, 마침내 땅굴속에서 나와 광활한 땅을 하나씩 차지해 나갔다. 그리고 마음껏 번성하기 시작한 포유류들은 그들의 진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지구는 다시 다양한 자연환경을 회복해 나갔다. 그리고 5천500만 년 전 신생대, 숲이 풍부하게 발달한 지역 나무 위에서,
앞을 향한 두 눈과, 손발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졌고, 손가락 끝의 감각 발달 했으며, 놀랍도록 큰 뇌를 지닌 종이 활보하기 시작했다.
숲 속에서의 먹이확보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 생활하고자 했던 작은 포유류는 영장류라는 존재로 진화했고 장애물이 많은 나무 위 생활은 그들에게 공간 인식과, 재빠른 상황판단, 높은 수준의 기억력을 강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어떤 종보다도 커다란 뇌를 가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뇌는 세상을 이해하고 조작하는 능력으로 진화해 가기 시작했다.
약 400만 년 전, 오랜 진화의 시간 속에서, 지구의 환경은 숲이 물러나고 들판이 열리기 시작했다. 유인원은 더 이상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환경 속에서 한 갈래의 생명은 땅 위에 '두 발'을 디뎠다.
손을 자유롭게 하고, 눈을 들고, 넓은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작은 발자국이 바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고인류의 첫걸음이었다.
그들은 날카로운 발톱, 길고 뾰족한 송곳니, 두터운 가죽, 대지를 빠르게 질주할 수 있는 순발력, 이 모든 것 중 단 하나도 가지지 못한 채, 위험이 가득한 땅 위를 걷기 시작했다. 진정한 모험가이며 탐구자였던 것이다. 그들은 드넓은 땅을 탐험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배워나갔다.
무엇이 먹을 수 있는지, 어디가 위험한지, 어떤 돌이 단단하고 어떤 뼈가 부드러운지. 그들의 경험과 기억은 공유되고 쌓여가며, 위험천만한 대지 위에서도 종의 번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기억의 공유와 함께 그들의 공동체 유지 습성과 사회성을 더욱 크게 키워나갔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표정을 통해 감정과 의중을 읽고, 몸짓과 소리, 눈빛으로 뜻을 나누었다.
개개인의 신체적 능력은 보잘것없었지만, 협력은 그들로 하여금 대형 포식자들에게 맞설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었고, 서로를 보호하고 먹이를 나눌 수 있는 울타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히 본능에 따르지 않았다. 나뭇가지 하나, 돌멩이 하나를 손에 쥐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존재로 변해갔다. 그들에게 도구는 이전과 다른 진화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전의 생물들은 변해가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 또는 구조를 조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고인류의 도구는 자신의 신체적 특성에 맞춰 자연과 환경을 조정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그들은 눈에 띄는 커다란 신체 변화 없이, 뇌의 크기를 키우는 쪽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생명은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을 맞이했다. 세상을 받아들이던 존재에서, 세상을 '배우고 바꾸려는 존재'로.
지금으로부터 약 10만 년 전, 지구의 거의 대부분이 꽁꽁 얼어붙은 대지로 있었던 마지막 빙하기. 연약한 몸으로 먹이사슬의 정점에 등극한 지구상 최고의 포식자가 뾰족한 돌창을 들고 대형 포유류의 발자국을 추적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짐승의 털가죽을 뒤집어쓴 무리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는 어눌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사냥감이 가까이 있음을 알렸다. 그를 따르던 무리는 일제히 흩어져 늘상 연습했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사냥감은 자신의 천적이 근처에 있는 기척을 느낄 수 있었지만, 선천적인 위장이 아닌 경험과 지식의 축적으로 정교해진 포식자의 위장 때문에 그들의 존재를 알아챌 순 없었다.
고요한 순간이 계속되던 찰나, 우렁찬 함성소리와 함께 지구상 최고의 포식자가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직적이고 순간적인 기습에 사냥감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상 마지막 종이었던 이 대형 포유류는 무자비한 '인간종'의 사냥에 영영 그 자취를 감췄다.
이 이야기가 그 당시 늘상 벌어졌을, 인류의 이야기이다.
생명의 오랜 진화 속에서, '호모(Homo) 속' 즉, '인간종'의 출현은 하나의 거대한 전환이었다. 그들의 생존 능력은 이미 전 지구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탁월해져 있었다.
자신보다 몇 배나 큰 사냥감을 무리 지어 추적하고, 협력해서 사냥했다. 열매, 뿌리, 견과류 같은 자연 식량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해서 채집했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어디에 먹을 것이 있는지 기억할 수 있었다.
돌을 깨뜨려 만들던 도구는 점점 더 가공된 형태로 다듬어지기 시작했고,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엔 항상 모든 야생동물들의 두려움의 대상인 불이 피워져 있었다.
이는 몇 세대에 걸친 배움의 전이가 그들에게 축적되고 확장된 결과였다. 그리고 배움의 축적은 그들에게 더 큰 혁명을 가져다주게 된다.
진정한 현생 인류라 부를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약 7~8만 년 전에 남아프리카 블롬보스 동굴(Blombos Cave)에서 장신구 제작, 상징적 무늬 새기기, 의식적 행동을 행했다는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런 상징적 사고는 단순한 소리 이상의 '개념 전달', 즉 언어를 통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류는 소리로 단순한 감정만을 나누던 존재에서, 복잡한 생각과 기억, 꿈을 전하는 존재로 변모한 것이다.
소리를 조직하고 의미를 부여한 언어는,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는 새로운 통로를 열었다. 사냥의 기술, 별의 움직임, 위험한 동물의 위치까지, 이 모든 지식이, 말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되었다. 언어는 배움을 몸의 기억에서 머리의 개념으로 옮겨 놓았고, 지식은 점점 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되었다.
더 이상 배우기 위해 몸으로 표현하거나, 그 행동을 모방할 필요가 없어졌다. 직접 행동하며 보여주지 않아도 지식의 전달과 공유가 가능했고, 자유로운 생각을 나누며 의식을 확장할 수 있었다.
언어의 사용은 그 자체로 나비효과가 되었다. 언어를 통한 소통은 배움의 경지를 끌어올렸고, 정교해진 배움은 정교해진 도구사용으로 이어졌다. 정교하고 다양해진 도구는 그들에게 더 많은 에너지 축적을 가져다주었고 이는 뇌라는 거대한 발전소에 훌륭한 자원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단순한 용량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위대한 질문과 사유의 원천이 되었다.
언어야 말로 배움의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점이자, 인류가 인류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도구가 된 것이다.
언어라는 작은 불꽃이 하나, 인간의 입술 사이에서 피어나자, 세상 모든 만물에 이름이 생겨났고 그들의 이름이 후대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이제 눈앞의 나무와 돌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
별과, 시간과, 죽음과, 사랑까지 서로에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배움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흐르는 불멸의 강이 되었다.
이제 인간은 처음 만나는 세계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남긴 이야기를 듣고, 보지 못한 별을 상상하고, 한 번도 가본적 없는 길을 꿈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인간에게 시간을 넘게 했고,
공간을 건너게 했고,
죽음을 초월하게 했다.
언어는 세상을 바꾸고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언어를 통한 배움은 생명의 전환을 넘어서,
세상의 전환이 되기 시작한다.